나는 이 분야에 전혀 관심이 없었으니, 사주를 본다는 게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한다는 건지조차 아는 게 없었다. 아내가 사주를 보러 간다고 했을 때도 내가 태어난 연월일시를 준 것밖에 없었고(태어난 시간은 제대로 알지도 못했다), 그거로 사주 전문가가 뭘 어떤 시스템으로 나의 운명에 대해 왈가왈부를 한다는 건지 알지 못했고 관심이 없었으니, 다녀와서 열심히 얘기해준 아내에게 미안하다. 게다가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왔으니 더욱 미안하다.
이제부터라도 사주팔자라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알아보기로 했다.
이 세상에 한 번이라도(?)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태어났을 때의 정확한 시점이 있다. 태어난 연도와 태어난 월, 태어난 일, 태어난 시간이다. 일종의 주민등록번호 같은 것이겠고 바코드 같은 거라고도 할 수 있겠다. 태어난 연, 월, 일, 시의 네 가지 시점을 ‘천간’이라 부르는 10개의 한자와 ‘지지’라고 부르는 12개의 한자를 놓고 조합을 하여 연도에 2글자, 월에 2글자, 일에 2글자, 시에 2글자로 해서 총 여덟 글자가 나오는데 이게 바로 8자, 팔자다.
국가대표 축구팀의 정원인 23명을 놓고 경기장에 선발로 나서는 선수는 11명일 수밖에 없는 것처럼, 사주팔자는 22개의 글자 중 8개의 글자가 선택이 되는 것이다.
그럼 사주는 뭔가. 한자는 세로 쓰기를 하기에 2개의 한자를 위아래로 쓰는데, 이게 마치 기둥을 세우는 것 같다 하여 ‘기둥 주(柱)’에 연, 월, 일, 시를 각각 붙여 연주, 월주, 일주, 시주라는 4개의 기둥이 되니 그게 바로 4주, 사주다. 이렇게 네 개의 기둥과 여덟 개의 글자가 곧 4주 8자, 즉 사주팔자다. 참 쉽다.
근데 참 이상하기도 하고 희한하기도 했다. 태어난 연, 월, 일, 시로 8개의 한자가 나온다는 것까진 그럴 수 있다 치는데, 이 8개의 글자를 가지고 그 사람의 길흉화복과 성격, 개성, 직업, 돈, 인간관계 등 인생 전반에 대해 풀이를 하고 조심스럽지만 예측도 한다는 거다. 이게 바로 사주팔자로 인간의 운명을 해석한다는 학문이 사주명리학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사주명리학처럼 특정한 틀을 가지고 성격을 진단하거나 운명을 해석 또는 점쳐본다는 포맷들은 꽤 있다. 첫째, 서양에서 발전한 점성학 혹은 점성술이 있다. 별을 메인 아이템으로 운명을 풀어본다는 포맷이다. 그 옛날 동방의 박사 세 분이 아기 예수가 태어난 마구간까지 오게 한 건 하늘의 별을 해석한 힘이었다. 아직 읽어보진 못했는데, 한 방송작가가 점성학을 공부하여 책을 냈다는 귀동냥은 했다.
둘째, 거리를 지나다 심심치 않게 보이는 타로점이 있다. 카드를 가지고 하는 건데, 총 몇 장의 카드로 하는 건지도 모를 정도로 그쪽에도 문외한이다. 유튜버 너덜트의 영상 중 타로를 다룬 내용을 봤는데 수십 장의 카드를 늘어놓은 다음 상담을 하러 온 사람이 석 장 정도를 뽑으면, 그 카드에 대해 전문가가 해석을 하는 포맷으로 보인다.
또 어떤 게 있을까. 아, 나도 초‧중‧고등학교 때부터 지겹게 엮여온 포맷이 있다. ‘혈액형’이다. 정말이지 무식하면 용감하다던가. 고작 4가지 유형을 놓고 우리는 그 얼마나 많은 논쟁을 벌였던가. 심지어 내 남자 친구는 B형이라는 걸 대놓고 메인 스토리로 내세운 영화도 있었고 <개그콘서트>에서도 가슴에 혈액형 이름표를 대문짝만 하게 붙이고 나와 웃겼던 코너도 있었다.
혈액형 하면 떠오르는 나의 경험도 피식 웃음부터 나온다. 나는 A형이다. 지인들과 혈액형에 대해 얘기를 할 때면 나는 A형 같다고 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내가, 고등학교 3학년까지는 O형이었다. 그때는 많은 이들이 나는 딱 O형 남자라고 했다. 어찌 된 건가. 고등학교 졸업 기념으로 부모님이 피를 싹 새 거로 교환해주셨던가.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재수 시절의 어느 날, 서울역 광장을 지나가다 헌혈을 하면 초코파이 등을 준다는 꼬드김에 넘어갔다. 잠시 후, 하얀색 헌혈 버스 안에서 나의 혈액형은 O형에서 A형이 되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초등학교 시절의 오진. 그때는 그랬다. 아마 내가 B형이었다면 B형 같다 했을 거고 AB형 인간이라 해도 수긍할 이들 적지 않았을 거다. 경이로운 건 2022년 현재도 혈액형 담론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 단, 어마어마한 강적이 나타나서 혈액형론은 기를 못 펴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MBTI’다.
몇 년 전부터라고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이다지도 나는 이런 분야에 관심 무였다. 소위 MZ세대 중심으로 MBTI MBTI 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방송 콘텐츠를 기획하는 자리에서도 젊은 친구들이 특히 자주 거론했다. 페이스북을 들어가기라도 하면 자주 출몰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최소한 뭔지 정도는 알아야 말이라도 섞을 수 있었으니까. 나의 MBTI는 뭘 지 체크해봤다.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성격이나 가치관 등을 가늠해볼 수 있는 수십 문항의 질문에 답을 해나가면 최종 결과로 지수가 나왔다. 나의 MBTI 유형을 캡처해두긴 했는데 못 찾겠다. 무슨 중재자 비슷한 거였는데.
MBTI는 16개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혈액형보다 4배나 다양하다. 깊게 파보지 않아서 잘 모르긴 하는데, 그냥 당신의 성격은 무슨 무슨 유형이다, 당신은 어떤 유형과 잘 맞는다, 정도인 것 같다.
그 밖에 수천 년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주역>을 들 수 있겠다. 도올 김용옥의 표현에 의하면 주역은 정말 ‘점을 치는’ 거란다. 총 364개의 유형이 있는데, 단순히 점을 쳐본다는 게 단순하기보다는 그 과정에 삶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고 한다. 사주명리도 이제 막 관심 갖기 시작한 내가 무슨 수로 주역을 알겠는가. 패스한다.
그렇다면 8개의 한자로 구성되는 사주명리에서는 몇 개의 유형이 나올까. 51만 8,400개가 나온다고 하니 이 정도면 무지하게 많다. 그것도 같은 사주팔자를 가지고 있을 확률이 그렇다는 거고, 예를 들어 쌍둥이는 같은 사주팔자를 가지고 태어난다. 하지만 부모만 같은 사람일 뿐, 자라면서 만나는 이들이 다르고 직업이 다르다. 그러니 같은 팔자라도 삶은 달라진다.
이렇게 보면 사주명리가 경우의 수에 있어서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다. 수천 년간 각각의 사주팔자를 가진 사람들의 삶의 궤적을 살펴보며 세월이 흐르며 쌓이고 쌓이고 쌓이며 내용들이 정교하게 가다듬어지지 않았나 싶다. 이런 이유로 사주명리도 엄연한 통계학이라 할 수 있을 게다.
난 방송작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내용 이전에 형식에 관심이 많다. 그걸 유식한 말로 포맷이라고 한다. 방송 프로그램은 어떤 포맷을 개발하느냐에 따라 프로그램의 재미가 천당에서 지옥을 왔다 갔다 한다. 주인공 가수가 자신과 함께 듀엣을 할 파트너를 찾아야 하는데 비주얼만 보고 노래를 잘하는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해야 하는 포맷이 있다. 그렇다. <너의 목소리가 보여>다. 이런 게 포맷이다. 가면을 쓰고 노래하는 가수가 누구인지 맞혀야 한다? <복면가왕>이다. 유명한 할아버지들이 배낭여행을 떠나고 젊은 짐꾼과 함께 하는 포맷? <꽃보다 할배>다.
포맷은 일종의 메인 형식이다. 이러한 형식이 탄탄하게 구성이 되면 거기에 출연자들만 바꾸면 되는 거라 제작하기가 용이해지고, 해외 방송사에 판매하기도 한다. 이른바 검증이 된 형식이라는 거다. 리메이크를 생각하시면 되겠다. 그런 점에서 사주명리라는 건 사람이 태어난 연도와 월, 일, 시에서 추출한 8개의 한자로 해당 인간의 운명을 해석해보는 포맷인 것이다. 그 말이 맞는다면, 정말이지 놀라 자빠질만한 포맷이다.
어떻게 이런 포맷이 만들어졌고 어떻게 이런 포맷으로 사람의 길흉화복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지 조금씩 알아가 보려고 한다. 근데 왜? 그동안 사주명리에 관심 일도 없던 내가? 이제 그 얘기를 할 차례다(뭐 대단한 얘긴 없다. 기대하지 마시고 그냥 그렇구나 하며 들으시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