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보진 못했는데, 내 심정을 딱 표현하는 제목의 책이 있다. <내 인생 왜 꼬였나 알아보려다 명리학에 빠졌다>. 사실 내 인생이 그런대로 잘 풀려왔다면, 아마도 난 지금도 사주명리에 눈을 돌리지 않았을 거다. 생각대로 잘 안 되기에, 그 기간이 길어지기에, 꾸준하게 힘들기에, 사주명리가 훅 다가왔을 때 눈길이 갔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던 이유가 삶이 잘 풀려왔다는 얘기는 아니다. 꽤 많이 힘들었던 시기가 수년 전에도, 그 전에도, 그 전전에도 있었다. 단지 그때는 사주명리가 내 눈에 띄지 않았고, 설사 가까이에 있었다 해도 당시의 내가 그걸 콱 붙들었을지는 모르겠다.
모든 건 다 때가 있다고 한다. 비슷한 강도로 힘든 삶이라 해도 그때는 때가 아니었고 지금은 때인가 하고 짐작해볼 뿐이다. 그때는 틀렸고 지금은 맞나 하고 생각해볼 따름이다. 이렇게 다른 전개가 왜 펼쳐진 건지는 공부를 해보면 조금이라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수년 전과 지금의 내가 다른 건, 나라는 인간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를 묻는다는 점이다. 이 나이 먹고서야 말이다.
전에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대해서만 눈을 돌렸다면 이제는 그러한 환경 속에 살아가는 나의 마음과 행동에 관해 들여다보려 한다는 거다. 나라는 사람은 어떤 명을 부여받고 태어나 어떤 운의 흐름을 탔고 어떻게 반응하고 느끼고 행동해 온 건지를, 사주팔자라는 포맷에 넣어보면 그동안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는 것. 그런 이유로, 지금의 나는, 사주팔자라는 놈에 대해 찬찬히 알아가고 있다.
사실, 내가 그동안 사주명리에 관심이 없었고 구체적으로 나의 사주팔자로 나라는 사람을 보려 하지 않았을 뿐이지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사주명리와 참으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1996년 12월과 1997년 1월 사이의 어느 날, 나는 결혼식을 앞두고 이른바 함이라는 이벤트를 했다. 당시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기억나진 않는데 친구들과 함께 떠들썩하게 함을 파는 방식으로 하지 않았다. 원망 어린 친구들의 눈길을 무시하고 나 혼자 007 가방 들고 처가의 문을 살포시 두드린 후 들어갔다. 부모님이 챙겨준 함 가방 속에는 여러 번 고이 접은 하얀 종이가 있었고, 처가 부모님은 그 종이를 펼쳐 보고 쓰여 있는 8개의 한자를 확인했다. 나의 사주팔자다.
이른바 ‘사주단자’였다. 결혼식 자체는 서양 풍습으로 하지만 함이라든가 사주단자라든가 폐백이라든가 우리 전통방식이 곳곳에 남아 있었고, 나는 그 형식들을 아무 생각 없이 따라 했다. 모르긴 몰라도 천주교 신자인 양가의 어르신들은 나의 사주와 아내의 사주를 들고 철학관을 찾아 궁합을 봤을 것이다. 좋지 않은 궁합이 나왔다는 얘기는 들은 바 없지만, 중요한 건 당연한 의식을 치르는 양 궁합을 봤다는 거다. 그렇게 이미 나의 삶은 사주명리 세계관 속에 들어와 있었다.
주위를 조금만 둘러보면 사주명리의 흔적 아니 노골적인 개입은 너무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매일, 아니 수시로 보곤 하는 달력이 그렇다. 일 월 화 수 목 금 토. 해(日)와 달(月)이 있고, 오행인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가 버젓이 적혀 있다. 입춘이니 경칩이니 입동이니 대설이니 하는 절기들도 표시되어 있다. 특히 1년에 24번 있는 절기는 방송작가들이 오프닝 멘트로 쓸 게 생각나지 않을 때 적용하면 중간은 가는 오프닝‧클로징용 만능 치트키다.
요즘은 환갑잔치라는 걸 찾아보기 힘들지만, 어렸을 적만 해도 우리 아버지도 그랬고 여기저기서 환갑잔치를 했다. ‘60세까지 살아냈음’을 축하하는 이벤트다. 그런데 환갑이란 말은 무슨 뜻일까.
사주명리를 공부하려면 영어의 알파벳과 같은 역할을 하는 필수 한자용어 22개는 무조건 알아야 한다. 외워야 한다. 천간 10자, 지지 12자.
천간은 하늘의 기운을 10개의 한자로 표현하는데, ‘갑(甲) 을(乙) 병(丙) 정(丁) 무(戊) 기(己) 경(庚) 신(辛) 임(壬) 계(癸)’이고, 땅의 기운을 12개의 한자로 표현한 지지는 ‘자(子) 축(丑) 인(寅) 묘(卯) 진(辰) 사(巳) 오(午) 미(未) 신(申) 유(酉) 술(戌) 해(亥)’다.
천간의 10글자와 지지의 12글자들을 위아래로 늘어놓은 다음, 천간의 첫 번째 글자와 지지의 첫 번째 글자를 짝지우고, 천간의 두 번째 글자와 지지의 두 번째 글자를 짝지우면서 차례대로 짝을 지어나가는데 그 짝지어진 두 개의 글자가 한 해의 이름이 된다.
천간의 첫 번째 글자인 ‘갑’하고 지지의 첫 번째 글자인 ‘자’를 짝지어 ‘갑자’년, 천간의 두 번째 글자 ‘을’과 지지의 두 번째 글자 ‘축’을 짝지어 ‘을축’년이 된다. 이렇게 갑자, 을축, 병인으로 시작해 58번째 신유, 59번째 임술, 마지막 60번째가 ‘계해’가 되고, 다시 처음인 갑자부터 시작하는 데 갑에서 시작해서 갑으로 다시 돌아왔다고 해서 ‘환갑’인 것이다. 이것이 60갑자이다.
‘팔자’라는 용어는 참 자주 쓰고 듣는다. 무자식 상팔자, 팔자가 드세다, 팔자가 기구하다, 개팔자가 늘어졌다고 한다. 아내도 수시로 나를 힐긋하며 '아이고 내 팔자야'를 노래한다.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는 이를 보고 역마살이 끼었다고 하고 도화살이 있는 여성은 위험하다고도 한다. 백말띠 여자는 드세서 안 된다는 얘기도 자주 들었다.
그래, ‘띠’가 있다. 난 뱀띠다. 아내는 쥐띠다. 무슨 띠와 무슨 띠는 궁합도 안 보고 결혼한단다. 3‧8장이다 5‧10장이다 들어보셨을 거다. 지방에 출장을 갈 때마다 의아하게 생각했던 전통시장이 열리는 날들의 의미도 알고 보니 이 세계관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막 취임했을 때 화재로 전소되어 국민적 안타까움을 샀던 남대문의 다른 이름은 숭례문이다. 오행 목화토금수 중 방위에서 남쪽을 담당하고 있는 건 ‘화’다. 화는 유가의 덕목 인의예지신 중 ‘예’를 담당한다. 그래서 남대문의 다른 이름이 숭례문이다. 게다가 남대문이 ‘화’ 마에 공격당했다니! 소름이다.
해트트릭을 기록한 손흥민에게 기자가 물었다. 왜 이렇게 잘했냐고. 손흥민은 대답한다. 운이 좋았다고. ‘운'이 좋았다, 혹은 '운’이 나빴다는 표현. 우리가 너무나도 많이 하는 이 말이야말로 우리가 얼마나 사주명리 세계관에 제대로 들어와 있는지 알려주는 시금석이다. 사주 여덟 글자는 결정적으로 운의 흐름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운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제대로 하겠다.
이렇게, 우리의 일상과 삶의 많은 부분들이 이미 사주명리 세계관 속에 들어있음을 인정하고 나면, 마음은 한결 편해진다. 사주니 팔자니 하는 것들이 밑도 끝도 없는 허무맹랑한 미신에 불과한 건 아닐 게다. 그러니 사주명리가 오랜 시간 그 방면의 전문가들이 연구하고 연구해 온 뭔가 대단할 수도 있는 분야의 학문이라는 점을 받아들이고 그 세계관이 어떻게 구성이 되어 있는가 탐구해 보기로 한다. 단, 모시는 신을 받아들여 점을 치신다는 이른바 ‘신점’에 대해서는 알 길도 없으니 논외로 한다.
난 이제 고작 관련 책을 세 권 정도 일별하고 유튜브의 강의 동영상 몇 편 본 정도이다. 책을 읽거나 영상을 볼 때는 뭔가 알 것도 같았지만, 막상 읽고 보고 들은 내용들을 소리 내어 설명하고자 하면 입이 턱 막힌다. 이 세상은 음양오행의 원리로 돌아가고 10개의 천간과 12개의 지지로 이루어진 사주팔자가 있다고 하는데, 각각의 분야들로 한 걸음 더 들어가게 되면 갸우뚱할 때가 많다. 하지만,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뚜벅뚜벅 그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