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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밤 Apr 30. 2021

너를 만나니 확신이 생겼다

2020년 8월 8일, 우리가 만난 날


보호소 가는 날짜를 약속하고 제일 먼저 한 행동은 용품을 구매하는 것이었다. 헷갈리지 않도록 필요한 용품을 쭉 메모를 해봤는데 밥그릇부터 시작해서 켄넬, 목줄, 방석, 사료, 간식, 배변 봉투 등 수십 가지의 용품이 필요했다. 각오는 했지만 사람 하나 들이는 것보다 더 많은 물건을 추가 구매해야 하니 얼떨떨했다. 그래도 돈 쓰는 건 즐거웠고, 밤비를 위한 준비라서 기대 만발이었다.


드디어 데리러 가기로 한 날. 밤비를 태울 케이지를 끌어안은 채 차에 올라탔다. 네비에 일산에 있는 협회를 찍고 출발했다. 친구 옆에 앉아 조잘조잘 말도 참 많이 했다. 어떤 마음으로 데리러 오게 됐는지, 왜 그 아이가 눈에 밟혔는지, 결국 운명이었다는 둥 잔뜩 들뜬 목소리로 말이다. 그러면서 눈으로 네비에 뜨는 남은 시간을 흘깃 훔쳐보곤 했다. 마음 같아선 하늘을 날아 당장이라도 도착하고 싶었다.


인내의 끝에 한적한 동네에 도착했다. 차는 흙길에 접어들어 덜컹거렸다. 점점 가까워지는구나 싶었을 때 저 멀리서 ‘한국동물관리구조협회’ 라고 적힌 간판이 보였다. 그제야 조마조마해졌다.


‘밤비가 날 안 좋아하면 어떡하지? 생각보다 사이즈가 더 크면 어쩌지? 공격성이 있어서 나를 물면 어쩌지? 내가 죽을 때까지 함께할 수 있을까? 나 인내도 끈기도 없는데 10년 넘게 같이 살 수 있을까?’


분명 유기견 입양을 결심하기 전에 수십 번을 고민했던 건데 협회 앞에서 다시금 나 자신에게 물었다. 막연히 할 수 있겠지, 하면 되겠지 가 아니라 진짜, 정말로, 책임질 자신이 있는지 확신이 필요했다. 이미 만나러 온 자리에서 이런 고민이 무슨 소용이냐, 싶다가도 사실 입양을 번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도 했다.


그래서 무섭고 불안했다. 내가 밤비를 마음에 안 들어할까 봐, 그래서 입양을 포기할까 봐, 나 때문에 괜히 보호소 생활이 연장될까 봐 걱정이었다. 어쩌면 이때부터 밤비에 대한 책임감을 느꼈던 것 같다.


다양한 경우의 수를 예상하며 좌절하고, 기대하고, 불안해하고, 기뻐하기를 널뛰고 있을 때 차가 멈췄다. 내려야 한다는 걸 알았을 때, 일단 머릿속에 한가득 담아뒀던 걱정을 싹 밀어냈다. 어쩌겠는가. 만나기로 약속한 이상 보고는 가야지. 그저 우리가 서로 마음에 들길 바라는 기대를 안고 케이지를 챙겨 내렸다.


사무소와 보호소는 분리가 되어 있었는데 보호소 쪽에선 쉼 없이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안에 밤비가 있을 거란 생각에 걱정과 기대가 동시에 밀려왔다. 협회 안으로 들어서자 대기 중인 입양자들이 보였다. 오픈 시간에 맞춰 간 거라 나밖에 없을 줄 알았는데 이미 나보다 두 팀이나 먼저 와있었다. 이후로도 입양을 희망하는 가족들이 오가는 모습을 보며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입양하러 온다는 게 느껴졌다.


우리는 직원이 밤비를 데리고 나오는 걸 기다리는 동안 입양 후기가 적힌 편지와 사진들을 살펴보았다. 참 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반려동물을 만났구나 싶었다. 나도 이들처럼 이곳에서 좋은 인연을 만날 수 있을까 궁금했다. 둘러보면서도 직원이 사라진 문을 계속 쳐다보았다. 밤비가 언제 나올까 기다리던 순간 직원이 하얀 강아지를 품에 안고 등장했다. 밤비였다.


품 안의 강아지가 내가 찜했던 밤비임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맡겨둔 내 아이를 만난 것처럼 양팔을 벌리고 직원에게 다가갔다. 직원에게 밤비를 넘겨받아 안아 보았다. 아주 대단한 악취가 풍겼다. 그런데도 너무 좋았다. 내 품 안에서 온기를 전해주는 이 아이를 데리러 오길 정말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행여나 나를 좋아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밤비는 사람을 굉장히 좋아했다. 처음 보는 사람이 안는데도 가만히 있는 것부터가 사람을 거부하는 강아지는 아니었다. 너 정말 작구나, 아이고 예뻐라 외치며 밤비를 부둥부둥하고 있을 때 직원이 내게 물었다.


“입양하시겠어요?”


아휴, 당연하죠. 이렇게 귀여운 아이를 두고 어떻게 돌아가겠어요.


“네. 입양할게요!”


나는 그 자리에서 입양을 결정짓고 서류를 작성하기로 했다. 작성을 기다리며 케이지 안에 둔 밤비를 보았다. 몸에 비해 발바닥만 큰 것이 아직 아기 같았다.(보호소에서 20년생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불안한지 귀를 뒤로 바짝 붙였지만 그럼에도 사람이 반가운지 꼬리는 쉴 틈 없이 흔들렸다. 사람에 대한 거부감이나 낯가림이란 없었다. 그리고 내 마음을 움직였던 새카만 눈동자를 실제로 보고 있으니 가슴이 떨렸다. 이렇게 예쁜 아이를 내가 데려가다니 난 정말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서류 작성은 아주 간단했다. 인적사항을 적고, 주의사항을 확인하고, 내장 칩까지 심고서야 밤비와 보호소를 나설 수 있었다. ‘이게 다인가?’ 싶을 정도로 심플했다. 너무 쉬워서 오히려 걱정이 됐다. 까다로운 조건이 없기에 나 같은 사람도 밤비를 데려갈 수 있었지만, 반대로 아무나 데려갈 수 있는 환경 같았다. 극명한 장단점이었다.


하지만 나는 유기견 한 마리라도 따뜻한 집에서 지내길 바라는 사람으로서, 유기견을 입양하고 싶은데 까다로운 조건에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곳을 추천하겠다. 사실 더 좋은 환경에서 지낼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가는 걸 수도 있다. 그렇다는 걸 확실히 알고 최선을 다해 사랑하겠다는 의지와 욕심이 있다면 유기견 입양을 추천하고 싶다. 무조건 입양하라는 말이 아니다. 마음의 준비는 되어있는데 조건에 가로막혀 입양을 포기할 바에 한 마리라도 사랑해주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입양 전부터 만나러 온 직전 순간까지도 고민했다. 정말 책임질 수 있는지, 나 자신을 신뢰할 수 있는지 말이다. 이러한 고민이 밤비를 봐서 사라진 게 아니었다. 밤비를 보니 나한테 확신이 생겼던 거다. 이 아이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겠다고 다짐하는 나를 본 것이다.


그러니 진심을 다해 유기견을 구조하고 책임지고 싶은 사람이라면 포인핸드와 한국동물관리구조협회를 살펴보았으면 좋겠다. 하루에도 수십 마리가 버려지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혹시 아는가. 그 아이들 중 당신 마음에 살포시 내려앉을 반려동물이 있을지.


그날 나는 밤비의 보호자가 되어 밤비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안에서 밤비는 불안해서 나를 계속 바라보았다. 지금 어디로 잡혀가나 싶었을 거다.  불안한 눈을 보며 계속 속닥였다.


“괜찮아, 밤비야. 걱정하지 마. 응, 괜찮아.”


2020년 8월 8일, 그렇게 우리가 만났다.


보호소에서 만난 밤비
집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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