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8일, 우리가 만난 날
보호소 가는 날짜를 약속하고 제일 먼저 한 행동은 용품을 구매하는 것이었다. 헷갈리지 않도록 필요한 용품을 쭉 메모를 해봤는데 밥그릇부터 시작해서 켄넬, 목줄, 방석, 사료, 간식, 배변 봉투 등 수십 가지의 용품이 필요했다. 각오는 했지만 사람 하나 들이는 것보다 더 많은 물건을 추가 구매해야 하니 얼떨떨했다. 그래도 돈 쓰는 건 즐거웠고, 밤비를 위한 준비라서 기대 만발이었다.
드디어 데리러 가기로 한 날. 밤비를 태울 케이지를 끌어안은 채 차에 올라탔다. 네비에 일산에 있는 협회를 찍고 출발했다. 친구 옆에 앉아 조잘조잘 말도 참 많이 했다. 어떤 마음으로 데리러 오게 됐는지, 왜 그 아이가 눈에 밟혔는지, 결국 운명이었다는 둥 잔뜩 들뜬 목소리로 말이다. 그러면서 눈으로 네비에 뜨는 남은 시간을 흘깃 훔쳐보곤 했다. 마음 같아선 하늘을 날아 당장이라도 도착하고 싶었다.
인내의 끝에 한적한 동네에 도착했다. 차는 흙길에 접어들어 덜컹거렸다. 점점 가까워지는구나 싶었을 때 저 멀리서 ‘한국동물관리구조협회’ 라고 적힌 간판이 보였다. 그제야 조마조마해졌다.
‘밤비가 날 안 좋아하면 어떡하지? 생각보다 사이즈가 더 크면 어쩌지? 공격성이 있어서 나를 물면 어쩌지? 내가 죽을 때까지 함께할 수 있을까? 나 인내도 끈기도 없는데 10년 넘게 같이 살 수 있을까?’
분명 유기견 입양을 결심하기 전에 수십 번을 고민했던 건데 협회 앞에서 다시금 나 자신에게 물었다. 막연히 할 수 있겠지, 하면 되겠지 가 아니라 진짜, 정말로, 책임질 자신이 있는지 확신이 필요했다. 이미 만나러 온 자리에서 이런 고민이 무슨 소용이냐, 싶다가도 사실 입양을 번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도 했다.
그래서 무섭고 불안했다. 내가 밤비를 마음에 안 들어할까 봐, 그래서 입양을 포기할까 봐, 나 때문에 괜히 보호소 생활이 연장될까 봐 걱정이었다. 어쩌면 이때부터 밤비에 대한 책임감을 느꼈던 것 같다.
다양한 경우의 수를 예상하며 좌절하고, 기대하고, 불안해하고, 기뻐하기를 널뛰고 있을 때 차가 멈췄다. 내려야 한다는 걸 알았을 때, 일단 머릿속에 한가득 담아뒀던 걱정을 싹 밀어냈다. 어쩌겠는가. 만나기로 약속한 이상 보고는 가야지. 그저 우리가 서로 마음에 들길 바라는 기대를 안고 케이지를 챙겨 내렸다.
사무소와 보호소는 분리가 되어 있었는데 보호소 쪽에선 쉼 없이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안에 밤비가 있을 거란 생각에 걱정과 기대가 동시에 밀려왔다. 협회 안으로 들어서자 대기 중인 입양자들이 보였다. 오픈 시간에 맞춰 간 거라 나밖에 없을 줄 알았는데 이미 나보다 두 팀이나 먼저 와있었다. 이후로도 입양을 희망하는 가족들이 오가는 모습을 보며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입양하러 온다는 게 느껴졌다.
우리는 직원이 밤비를 데리고 나오는 걸 기다리는 동안 입양 후기가 적힌 편지와 사진들을 살펴보았다. 참 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반려동물을 만났구나 싶었다. 나도 이들처럼 이곳에서 좋은 인연을 만날 수 있을까 궁금했다. 둘러보면서도 직원이 사라진 문을 계속 쳐다보았다. 밤비가 언제 나올까 기다리던 순간 직원이 하얀 강아지를 품에 안고 등장했다. 밤비였다.
품 안의 강아지가 내가 찜했던 밤비임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맡겨둔 내 아이를 만난 것처럼 양팔을 벌리고 직원에게 다가갔다. 직원에게 밤비를 넘겨받아 안아 보았다. 아주 대단한 악취가 풍겼다. 그런데도 너무 좋았다. 내 품 안에서 온기를 전해주는 이 아이를 데리러 오길 정말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행여나 나를 좋아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밤비는 사람을 굉장히 좋아했다. 처음 보는 사람이 안는데도 가만히 있는 것부터가 사람을 거부하는 강아지는 아니었다. 너 정말 작구나, 아이고 예뻐라 외치며 밤비를 부둥부둥하고 있을 때 직원이 내게 물었다.
“입양하시겠어요?”
아휴, 당연하죠. 이렇게 귀여운 아이를 두고 어떻게 돌아가겠어요.
“네. 입양할게요!”
나는 그 자리에서 입양을 결정짓고 서류를 작성하기로 했다. 작성을 기다리며 케이지 안에 둔 밤비를 보았다. 몸에 비해 발바닥만 큰 것이 아직 아기 같았다.(보호소에서 20년생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불안한지 귀를 뒤로 바짝 붙였지만 그럼에도 사람이 반가운지 꼬리는 쉴 틈 없이 흔들렸다. 사람에 대한 거부감이나 낯가림이란 없었다. 그리고 내 마음을 움직였던 새카만 눈동자를 실제로 보고 있으니 가슴이 떨렸다. 이렇게 예쁜 아이를 내가 데려가다니 난 정말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서류 작성은 아주 간단했다. 인적사항을 적고, 주의사항을 확인하고, 내장 칩까지 심고서야 밤비와 보호소를 나설 수 있었다. ‘이게 다인가?’ 싶을 정도로 심플했다. 너무 쉬워서 오히려 걱정이 됐다. 까다로운 조건이 없기에 나 같은 사람도 밤비를 데려갈 수 있었지만, 반대로 아무나 데려갈 수 있는 환경 같았다. 극명한 장단점이었다.
하지만 나는 유기견 한 마리라도 따뜻한 집에서 지내길 바라는 사람으로서, 유기견을 입양하고 싶은데 까다로운 조건에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곳을 추천하겠다. 사실 더 좋은 환경에서 지낼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가는 걸 수도 있다. 그렇다는 걸 확실히 알고 최선을 다해 사랑하겠다는 의지와 욕심이 있다면 유기견 입양을 추천하고 싶다. 무조건 입양하라는 말이 아니다. 마음의 준비는 되어있는데 조건에 가로막혀 입양을 포기할 바에 한 마리라도 사랑해주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입양 전부터 만나러 온 직전 순간까지도 고민했다. 정말 책임질 수 있는지, 나 자신을 신뢰할 수 있는지 말이다. 이러한 고민이 밤비를 봐서 사라진 게 아니었다. 밤비를 보니 나한테 확신이 생겼던 거다. 이 아이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겠다고 다짐하는 나를 본 것이다.
그러니 진심을 다해 유기견을 구조하고 책임지고 싶은 사람이라면 포인핸드와 한국동물관리구조협회를 살펴보았으면 좋겠다. 하루에도 수십 마리가 버려지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혹시 아는가. 그 아이들 중 당신 마음에 살포시 내려앉을 반려동물이 있을지.
그날 나는 밤비의 보호자가 되어 밤비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차 안에서 밤비는 불안해서 나를 계속 바라보았다. 지금 어디로 잡혀가나 싶었을 거다. 그 불안한 눈을 보며 계속 속닥였다.
“괜찮아, 밤비야. 걱정하지 마. 응, 괜찮아.”
2020년 8월 8일, 그렇게 우리가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