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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밤비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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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밤 Jun 03. 2021

떨리는 첫 진료, 그리고 새집 방문기

밤비를 태운 차는 곧장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어린 강아지라 접종이 필요할 수도 있었고, 무엇보다 유기견이었기에 어떤 병을 안고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가장 두려워했던 부분이었다. 정말 만에 하나 큰 병이라도 있다면, 그 치료를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자신 없었다. 심장사상충이 흔하던데 걸리기라도 했다면 그 치료비만 수백만 원이라고 했다. 대단히 모아둔 돈도 없었기에 막연히 12개월 할부로 긁지 뭐, 생각했다. 암만 다짐하고 결심해서 데리고 왔다지만 치료비 앞에서 망설일까 봐 두려웠다. 그냥 제발 건강하기만을 바랐다.


떨리는 맘을 안고 병원을 갔는데, 찾아간 병원은 한참 인스타그램으로 유기견 구조를 찾아보던 중 어떤 구조자가 유기견은 할인해준다며 소개해준 병원이었다. 할인 외에도 후기가 궁금해서 여기저기 검색을 해보았는데 후기가 많지는 않았지만 나쁜 말들은 없었다. 더 좋은 병원을 가도 좋았겠지만 지갑이 가벼운 사람으로서 유기견 할인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도착한 병원은 여느 동물병원과 비슷했고, 밤비를 환영해주었다. 오늘 막 데리고 왔다고 설명하며 기본적인 항체와 심장사상충, 기생충 등 검사를 진행했다. 다행히 결과는 그 자리에서 바로 나오는 것들이었다. 눈앞에 키트를 두고 결과를 기다렸다. 밤비는 영문도 모른 채 똥꼬를 내어주고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그 모습이 조금 짠하면서도 귀여웠다.


검사 결과에 조금 당황했다. 밤비는 나이가 어려 접종을 안 했을 수도 있다고 했는데, 어떻게 된 것인지 항체를 모두 가지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왜 그러죠? 라고 물었는데, 의사 선생님 왈


"애기 때 접종을 다 맞혔을 수도 있고, 5차까지 다 맞지 않아도 항체가 생겼을 수도 있고, 또 모견으로부터 항체를 받아 선천적으로 있었을 수도 있어요. 경우는 다양한데, 어쨌든 항체는 있으니 추가 접종은 안 하셔도 되겠어요."


사실 접종은 필수라고 생각했는데 고맙게도 접종비가 굳었다는 생각에 기뻤다. 파보, 홍역, 심장사상충도 문제없었다. 전반적으로 다 건강하다는 결과가 나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때! 딱 걸린 것이다.


"기생충이 있네요. 지알디아라는 건데 약 먹이고 상태 보셔야 할 것 같아요. 감염되니까 다른 강아지는 만나지 마시고요. 사람한테도 옮길 수 있는데 뭐 보호자님이 변을 먹거나 그런 거 아니면 괜찮아요! 똥 치울 때 손에 묻거나 그런 것만 좀 조심하세요."


밤비가 나한테 기생충을 옮길 수도 있다니..! 묘한 공포에 휩싸였지만 그래도 걱정이 우선이었다. 찾아보니 지알디아는 보통 밖에서 오염된 물이나 지알디아에 걸린 강아지의 변을 통해 옮는다고 한다. 아마 밤비는 떠돌이 시절에 아무 물이나 먹다가 생긴 것이 아니었을까. 일단 일주일 치 약을 먹이고 다시 검사를 받기로 했다. 그리고 그 일주일 동안 다른 감염을 막기 위해 산책은 금지였다.


그래도  병이 없어서 천만다행이었다. 기생충만  낫길 바라며 드디어 집으로 향했다.




강아지를 처음 데려올 때 집에서의 적응이 가장 걱정이었다. 특히 유기견이라서 더 그랬던 거 같다.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유기견들은 상처가 많아서, 버려진 경험이 있어서, 학대를 받아서 등 사람의 손길을 두렵거나 구석에 숨어서 안 나오거나 마음을 열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는 그런 말들 말이다. 나 역시도 그런 말을 많이 들었으니 걱정이 앞섰다. 밤비가 사람을 반기긴 해도 새로운 집에선 또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랐다. 나름 떨리는 마음으로 집에 도착했고, 밤비와 함께 집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웬걸. 밤비를 내려놓자 혼자서 여기저기 킁킁대며 탐색전을 펼쳤다. '여기는 어디야? 킁킁킁' 궁금한 것 천진지 돌아다니면서도 나를 쳐다봤다.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이 어쩐지 '여기가 우리 집이야?'라고 묻는 것 같았다.


미리 사둔 장난감도 던져주니 제 것을 알아보듯 신나게 물고 다니기 시작했다. 이 집이 처음이 아닌 듯 잘 다녀주는 밤비가 고마웠다.


"그래, 혼자 살던 코딱지만 한 집이지만 그래도 같이 잘살아 보자!"


나도 인형을 잡고 흔들어주는데... 아차! 이제 보니 밤비 냄새가 정말 지독한 거다. 당장 목욕을 시키고 싶었으나 심장사상충 약을 발라주며 오늘 하루는 목욕시키지 말라던 수의사의 말이 떠올랐다. 목욕을 하고 병원을 갈 걸 그랬지만 어쩔 수 없었다. 참는 수밖에.


그렇게 고약한 냄새를 폴폴 풍기는 밤비와 첫날밤을 맞이했다.


'언니, 우리 여기서 같이 사는 거야?'


적응 완료한 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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