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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밤비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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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밤 Jul 05. 2021

짜릿한 첫 목욕

고약한 냄새를 풍기던 밤비와의 첫날밤은 무사히 지나갔다. 그날 밤, 나는 침대에 눕고선 밤비에게 올라오지 말라고 하니 굉장히 의아하다는 눈망울로 빤히 바라보았다. 원래도 쉽게 침대를 공유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 데다가 떠돌이로 지내며 온몸에 배긴 묵은 냄새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야속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하루만 참으렴, 하고 거리 두기를 하다 다음날이 되었다. 


심장사상충 약을 바른지 24시간이 지나자마자 나는 밤비를 안아 화장실로 향했다. 밤비는 태어나서 목욕을 해봤을까? 궁금했고 걱정되었지만 나에겐 시간이 없었다. ‘언니, 지금 뭐 하는 거야?’라는 듯 눈을 똥그랗게 뜬 밤비에게 샤워기를 들이댔다. 물론 적절한 미온을 확인한 후에. 


어릴 때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 목욕을 해준 적도 있었고, 이모 집에서 강아지 목욕을 도왔던 적이 있어 강아지 목욕이 어렵진 않았다. 밤비가 어떻게 받아들여 줄지가 걱정이었다. 천천히 밤비의 몸을 적셔갔는데… 역시나 싫은 내색을 보였다. 빠져나가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놔줄 수 없었다. 그래도 공격적이진 않았다. 계속해서 도망 가고 싶어 했을 뿐 이를 드러내거나, 붙잡는 내 손을 물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얘 참 순하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길거리 생활이 길었는지 시커먼 땟국물이 한참 나왔다. 초벌(?)을 하고 본격적으로 샴푸에 들어갔다. 샴푸를 하는 순간 밤비는 체념한 듯 했다. 더 이상 빠져나갈 수 없음을 느끼고 가만히 몸을 맡겼다. 잿빛의 거품이 나와 기함하며 헹구고 2차 샴푸를 했다. 무사히 샴푸를 마치고 드라이만 남은 상황.


웬걸, 드라이기 소리가 싫었는지 그 좁은 화장실에서 요리조리 도망을 다니는 거다. 그래도 어쩌겠나. 이중털이라 속까지 바짝 말려줘야 했다. 어르고 달래도 보고, 어허! 하며 무서운 척도 해보다 내가 터득한 방법은 코너로 몰아서 앉히는 거였다. 그래도 등댈 곳이 있어 그나마 안정감을 얻었는지 코너에 몸을 기대앉아 드라이기 바람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한참을 말린 후에야 밤비를 해방시켜주었다. 대부분의 강아지가 그렇듯 해방감에 밤비는 좁은 방을 우다다다 뛰어다녔다. 격렬하게 난리를 치고 난 후 조금 잠잠해진 밤비를 바라봤다. 그런데 요 녀석, 자리에 탁 앉아 나를 바라보는데… 마치 그 눈빛이 단호해 보였다. ‘언니, 지금 나한테 뭐한 거야? 응? 말해 봐!’라는 듯 당당하게 나를 딱 바라보는데… 거참 당황스러운 눈빛이었다. 


그래도 보송보송 하얀 털은 풍성해지고, 더는 코를 찌르는 악취는 없었다. 그걸로도 충분해 그날은 실컷 밤비를 만지고 쓰다듬고 뽀뽀했다. 그날이 전혀 낯가림이라곤 없는 우리의 이틀째였다.


언니야, 나도 올려주시개.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건지 해명이 필요해.(단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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