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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밤비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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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밤 Jul 19. 2021

무엇이 너를 그리도 슬프게 하였는가.

밤비는 일주일 동안 약을 챙겨 먹고, 다시 한번 병원에서 지알디아를 검사했다. 결과는 음성. 드디어 산책 금지령이 풀렸다! 


밤비보다도 신이 난 나는 집에 돌아와 미리 사둔 하네스를 입혀보기로 했다. 얼굴을 먼저 넣고, 다리를 끼고 버클을 채우고 할 것이 많았다. 그런데 밤비에게는 갑작스러웠나. 얼굴에 씌우려고 하자 나를 피해 도망 다니기 시작했다. 자기를 위한 것도 모른 채 좁은 방을 빙빙 돌며 도망쳤다. 어찌어찌 밤비를 잡는 데 성공을 했어도 줄을 얼굴 근처에 갖다 대기만 하면 도리도리 고개를 젓고 내 손아귀를 벗어나려고 격하게 발버둥 쳤다. 


“너 이리 안 와? 이걸 해야 산책을 나가지!”


나는 털썩 주저앉아 밤비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 말은 그저 외계어로 들릴 테지만 감정호소라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애타는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나를 바라만 볼 뿐, 밤비는 줄을 든 나는 그저 경계 대상이었다. 안 되겠다 싶었던 나는 유튜브를 켜서 하네스 훈련을 찾아보았다. 


대부분의 강아지는 자신의 몸에 줄이 묶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단다. 그래서 교육이 필요했다. 방법은 대충 이러했다. 


①줄로 고리를 만들고 그 줄 너머에 간식을 두어 스스로 줄을 통과하게 만든다. 

②고리를 점점 작게 만든다.

③스스로 고리에 얼굴을 넣고 통과하게끔 반복한다. 


본격적으로 밤비 꼬시기에 돌입했다. 맛있는 간식으로 입맛을 돋우고 줄로 커다란 고리를 만든 다음 그 너머에 간식을 두었다. 밤비가 간식을 주시하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똘똘이, 쉽게 넘어오지 않는다. 잔뜩 경계하며 줄이 조금만 흔들려도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다 기어이 제 자리에 엎드려 줄 너머 간식만 구경하고 있는 게 아닌가! 애초에 줄을 넘어올 생각 자체가 없었다. 더욱이나 식탐이 없는 밤비에겐 이 방법은 먹히지 않았다. 


'아무리 간식이 있어도 난 줄이 싫어!'


“됐어. 가지 마, 가지 마! 너 좋자고 나가는 거지~ 나 좋자고 나가는 거 아니거든?”


나는 괜히 신경질을 내며 줄을 정리했다. 밤비는 대뜸 화가 난 나를 의문의 표정으로 바라봤다. 혼자 궁시렁대며 침대에 누웠는데, 아무리 그래도 포기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언젠가 하네스는 해야 하지 않는가. 그리고 밤비는 호기심이 많아 산책을 싫어할 애도 아니었다. 


결국 나는 다시 몸을 일으켜 줄을 꺼내 들었다. 역시나 나를 피해 도망가는 밤비. 앞선 훈련에 실패한 나는 이제 이판사판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게 아주 빨리 입히고 말 테다..!


우리는 고요한 적막 속에 대치했다. 잡으려는 나와 작은 움직임에도 달아날 준비를 하는 밤비. 서로의 눈을 뜨겁게 노려보았다. 나는 천천히 간식을 손에 꺼내 보였다. 내가 밤비를 꼬실 수 있는 유일무이한 무기였다. 밤비는 줄과 가까운 내게 선뜻 다가오지 못했다. 그럴수록 나는 손을 더욱 뻗어야만 했다. 그러자 밤비는 아주 천천히 조금씩 내게 다가왔다. 밤비가 내 손의 간식을 먹으려는 그 순간…! 밤비를 잡아다 머리에 하네스를 훅! 입혔다. 


순식간에 당한 밤비는 불편한 듯 몸을 흔들었다. 나는 시간을 지체하지 않기 위해 밤비의 다리를 넣어 가슴 버클을 채웠다. 드디어 하네스 채우기에 성공했다. 


“아고~ 예쁘네! 엉? 이렇게 채우면 얼마나 좋아?” 


주황색 하네스를 찬 밤비를 보니, 후련한 감정이 밀려들면서 승리의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그런데 밤비는 나와 생각이 달랐다. 몸을 둘러싼 줄을 굉장히 불편해하며 몸을 긁고, 흔들고, 비꼬고 힘들어했다. 그래도 풀어주면 다시 채울 수 없을 것 같아 간식을 주며 다독였다. 


한참을 혼자서 무던히 노력했던 밤비는 결국 포기한 듯 자신의 방석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세상이 무너진 듯 털썩 주저 앉아 나를 바라보는데… 차마 마주하기 어려운 눈빛이었다. 


마치 내가 아주 아주 못된 짓이라도 한 듯 원망 어린 눈빛에, 당장이라도 서러움의 눈물을 뚝뚝 흘릴 것만 같은 우울한 표정까지…! 내가 미운가, 자기한테 왜 이러나 싶겠지? 오만 생각이 내 가슴을 콕콕 찔렀다. 나는 결국 한숨과 함께 하네스를 풀어주었다. 


적응은 천천히 하면 되니까 괜찮아. 그런데... 그렇다고 나를 그렇게까지 원망할 필요있니? 

나도 다 너를 위해서 하는 거란 말이야...! (억울)


어쩔 수 없는 하루가 지났지만, 이날까지만 해도 몰랐다. 밤비의 하네스 적응기가 굉장히 오래 걸리리라는 것을. 


'나쁜 언니... 못된 언니... 나를 옥죄다니...'
'풀어 줘... 밤비 우우래... 이건 아닌 거 같아... 언니 나빠... 어서 풀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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