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서 빨래 말리기
아, 느낌이 온다. 바로 오늘이야.
100프로 믿을 수는 없지만 일기예보를 확인하고, 하늘에 구름이 있는지 어떤지 확인하고 나서야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바로 오늘, 빨래를 한다.
한국에서는 아파트에 살아서 밖에서 빨래를 말릴 일이 거의 없기도 했지만, 날씨가 좋아도 미세먼지가 심해 창문을 거의 열지 못했고 빨래는 의류용 건조기를 사용하여 말렸다. 물론 빨래를 널고 걷는 수고로움을 덜기 위해서 기도 했지만. 하지만 뉴질랜드 하면 뭐다? 청정 자연, 맑은 공기! 뉴질랜드의 햇살, 바람, 공기라면 건조기 없이도 빨래를 뽀송뽀송하게 말릴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겨울에는 비가 자주 내리고 습하기 때문에 건조기가 필요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4월에 이사 와서 우리는 급한 대로 세탁기만 구입했고, 건조기는 나중에 필요해지면 사자고 미루었다. 사실 세탁기도 거금을 들여 샀다. 한국에서는 거들떠도 보지 않을 10킬로짜리 엘지 드럼세탁기. 더 큰 용량은 훨씬 비쌌기 때문에 10킬로 선에서 나 자신과 타협을 했다. 세탁기 가격에 배송비, 설치비까지 지불할 때 얼마나 손이 떨리던지... 그렇게 건조기는 겨울이 한창인 지금도 아직 사지 못하고 있다.
지금 뉴질랜드의 계절은 겨울. 비가 잦을뿐더러 습도가 매우 높다. 게다가 뉴질랜드의 날씨는 매우 변덕스러워서 구름 한 점 없다가도 갑자기 비구름이 몰려와 세차게 비를 뿌리기도 한다. 그래도 나는 자연의 힘을 빌어 정성스레 빨래를 말린다. 우리 집 빨래 줄은 우리 집 외벽과 옆집과의 담 사이 좁은 공간에 설치되어 있어 빨랫줄 사이 간격도 매우 좁다. 게다가, 옆집에 가려져 햇볕도 정오가 넘어서야 든다. 우리 집은 남반구에 있는 남향집이다.
아침에 세탁기를 돌린 후, 잘 마르는 옷감과 잘 마르지 않는 옷감, 빨래의 크기, 빨래 사이의 간격을 고려하여 과학적으로 빨래를 넌다. 서 너 시간이 지나면 고기 구울 때 고기 뒤집어 주듯, 빨랫줄에 넌 빨래를 뒤집어 주고 햇볕을 골고루 쬐도록 빨래의 위치도 바꾸어준다.
앗! 비구름이 몰려온다. 빗방울이 떨어진다.
후다닥 나가 빨래를 걷는다.
잠시 후, 비구름이 지나가고 다시 해가 나온다.
다시 빨래를 넌다.
악! 비구름이 또 몰려온다.
이렇게 빨래를 널고 걷기를 몇 번 반복하기도 한다. 그래서 빨래는 하루 종일 집에 있을 수 있는 날 해야 한다. 나는 아직 건조기를 사지 않고 버티고 있다. 한국에서보다 좀 더 자연친화적으로(불편하게) 살고 있다.
뉴질랜드의 햇살아, 바람아, 공기야 고마워! 좀 수고스럽긴 하지만 덕분에 건조기 살 비용과 전기요금을 아끼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