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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갱 Jan 16. 2024

가족이라는 이름의 저주

언젠가는 끝이 날 거라는 믿음으로 버텨내기


세상 무엇보다도 든든한 이름이지만 세상 무엇보다도 저주스러운 이름이 또한 가족이다. 언젠가 어릴적 페미니즘 세미나에서 ‘누군가가 보지 않는다면 갖다버리고 싶은 가족’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한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단란한 가정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존중받으며 큰 사람은 이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인지 짐작하지 못하겠지.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가족의 저주는 태어나면서 시작된다. 단순히 가난을 말하는 게 아니라 출생이 환영받냐 아니냐로 갈린다. 나의 출생은 외면받았고, 쓸데없는 가시나라는 이름으로 18년을 살아왔으며 어서 죽으라고 차가운 아랫목에 엎어놓는 일이 다반사였는 할머니가 있었다. 그 할머니는 이제 귀가 어두우시며, 약간의 기억을 잃어버리고 있으며, 자신이 얼마나 가혹했는지는 잊으시며 살아가신다. 


나는 샌드위치를 훔쳐먹지 않았다. 하지만 냉장고의 샌드위치가 없어졌을 때 엄마는 내가 먹었다고 솔직히 말할때까지 매질을 했었고, 방에서 주무시던 아빠가 나와서 그건 자기가 먹었다고 말할때까지 나는 끝까지 울면서 매를 맞고 있었다. 그 후에 단 한번의 사과도 듣지 못했고 이 이야기를 꺼내면 나는 미친듯이 예민하고 자기 불리한 기억만 가진 이상한 아이가 되며 집안은 냉랭한 분위기가 되었다. 나는 가족의 잘못에 사과를 요구할 권리 따위는 없는 것이었다.


자기 전 눈을 감고 있는 내 얼굴에다 대고 침을 뱉으며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한 언니에 대한 기억도 꿈을 꾼 것 아니냐고 얼굴에 침이 묻은 내게 부모님은 말하며 외면했고, 어떤 언어폭력을 당하더라도 말한 사람이 잘못이 아니라 거기에 상처받는 내가 불안정하게 예민하고 ‘성격이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그래도 나는 가족을 사랑했다. 언젠가는 나도 단란한 가족의 구성원이 될 수 있을거라는 꿈을 꾸었고, 어릴적 일기에 ‘엄마랑 아빠는 언니랑 동생이랑 살고 나는 혼자 가족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수없이 적힌 문장들을 애써 잊어가며 사랑받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은 모두 허사로 돌아갔다. 차라리 화분을 돌보는 것이 훨씬 더 큰 보람을 주었다. 적어도 언제나 내 곁에서 묵묵히 있어주었다.


나는 그래서 가족을 가지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의 실망을 하고 싶지가 않았고, 누군가의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사랑받기위해 애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가족이 새롭게 생기게 되었다. 더 복잡한 관계로 얽힌 가족이. 나는 더 이상 사랑받기위해 애쓰고 싶지 않을만큼 지쳤는데 다들 좋겠단다. 나는 자신도 확신도 없는데 인생은 흘러간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저주에서 벗어날 방법은 죽는 것 밖에 답이 없는 것 같다. 탈출하기 위한 저항도 이제는 너무 지쳐서 나는 포기했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갈망과 동시에 끝나지 않는 저주에서 벗어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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