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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티 Oct 14. 2021

통역이 맞는 사람, 번역이 맞는 사람

통역과 번역 중 먼저 내 관심을 끌은 건 번역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인가, 일 년에 한 번 으레 하는 장래희망 조사 때 당시 멋있다고 생각했던 번역가를 썼다가 담임선생님께서 흔히 보던 장래희망이랑 달라서 그랬는지 나를 눈여겨보셨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내가 아주 가고 싶었던 대학교에도 못 붙고, '남반구' 시리즈에서 말했듯이 집 사정도 그때 많이 안 좋아져서 통번역은커녕 입에 풀칠이나 하자는 심정으로 생계에 매달리다 보니 어언 10여 년이 지나 통번역의 세계에 겨우 발을 붙이게 되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애초에 통번역에 매력을 느끼게 한 작업은 번역인데 막상 공부해보니 더 재밌고 잘 맞는 건 통역이라는 점이다. 일단 통역은 좀 시원시원한 맛이 있다. 생각나는 대로 얼른 아웃풋을 해야 하기 때문에 파도가 심하게 치는 바다를 힘차게 항해하는 느낌이랄까? 그렇다 보니 긴장감도 훨씬 세지만 하고 나서 뿌듯함이나 개운함은 번역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아무래도 실수를 허용하는 범위가 번역보다 더 넓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막 할 수 있는 건 절대 아니지만, 텍스트의 의미를 해치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 사소한 실수나 누락은 어느 정도 허용된다. 실제로 동시통역의 경우, 원문의 80%가 전달되면 나쁘지 않은 통역이라고 할 정도이다.


반면, 번역은 그러한 사소한 실수조차 용납될 수 없다. 통역에 비하면 좀 쩨쩨하달까? 어쩌면 당연한 일인데, 원문이 나에게 주어진 상태에서 읽을 시간도 충분하고 심지어 요즘은 인터넷이라는 막강한 무기에다가 기계 번역기라는 치트키(혹은 양날의 검)까지 주어진다. 여기에다 번역은 제출하고 나면 내 눈앞에서는 사라질지 몰라도 이 세상 어딘가에는 남기 마련이라 마치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게 된다. 그래서 그냥 단어나 문장 수준이 아니라 조사(particle), 행간, 속뜻까지 모조리 번역해야 할 뿐만 아니라 도착어 사용 규범까지 텍스트의 장르에 따라 완벽하게 지켜야 한다. 그런데 인간이 어떻게 완벽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나한테 완벽하다고 해서 옆사람한테 완벽한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하면 번역은 내 기준에서 완벽이라는 기준을 충족하는 것도 어렵지만, 내가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번역문이 다른 사람한테 인정받기도 무척 어렵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전문 번역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 중 다수가 역을 역이라고 생각하거나 외국어를 잘하면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보니 번역이 정말 어려운 일임에도 폄하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건 정말 잘못된 생각이다. A4 한 장뿐만 아니라 그냥 영어 한 줄을 번역하래도 심사숙고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Please leave the premise quietly to avoid disturbing the local residents'라는 문장을 비전문가가 번역할 때는 아마 문장이 쏜살같이 나올 거다. 문장 자체는 수능에도 안 나올 거 같은 간단한 문장이니까. 그런데, 번역 훈련을 받은 사람이라면 먼저 여기서 premise가 어딘지, 안내문으로 보이니 한국어 사용 규범상 안내문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극존칭을 쓸 건지, local resident는 지역민, 동네 주민, 동네 사람, 주변에 사는 사람, 인근 주민 등 수많은 한국어 단어와 표현 중 어떤 게 이 문장에 가장 어울리는지 등 텍스트 분석(text analysis)부터 하게 된다. 그래서 저 문장이 한국어로 번역되었을 때 번역계에서 unidiomatic translation이라고 하는 어색한 번역이 나오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번역은 잘해봤자 본전인 느낌이 강하다. 실컷 해놔도 워낙 기준이 천차만별이라 다른 사람을 만족시키기 어렵고 번역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는 오해로 인해 공을 세운 느낌도 덜한 데다 번역 프로세스에 대해 많이 알려져 있기 않기 때문에 비전문가 검수자나 일반 대중에게 회초리질 당하는 일도 많다 보니 직업으로서 매력은 통역에 못 미친다.


정리하자면 통역은 언어 능력과 더불어 임기응변과 순발력 등 비언어적 능력이 아주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에 말재간이 있는 편이거나 실수해도 당황하지 않고 능구렁이처럼 잘 넘어가는 편이라면 통역이 주는 스릴감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래도 사람을 앞에 두고 하는 일이다 보니 평소에 사람을 대하는 게 익숙하다면 통역 중에서도 수사 면담, 커뮤니티 통역에 많이 쓰이는 대화역(dialogue interpreting,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통역 모드이다)이 아주 재밌을 것이다.


반대로 평소 일처리가 철두철미하고 꼼꼼한 편이라면 번역이 잘 맞을 것이고 여기에 출발어와 도착어를 가리지 않고, 장르를 불문하고 다독하는 사람이라면 번역이 즐거울 것 같다. 아무래도 번역은 작업할 때 쓰는 것보다 읽는 게 비중을 훨씬, 정말 훨씬 많이 차지하기 때문에 읽기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에게 제격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기질상 성질이 급한 사람보다는 좀 느긋하고 진득해야 난제 같은 원문을 포기하지 않고 파헤치고 또 파헤칠 수 있고, 끝없는 정보의 바닷속에서 지치지 않고 내가 원하는 자료를 찾을 때까지 헤엄칠 수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통역과 번역은 성격이 다르지만, 이 두 작업이 만나는 귀결점이 있다. 바로 문해력이다. 주어진 텍스트를 이해하는 능력, 이게 바로 핵심이고 사실 두 작업의 모든 것이다. 예를 들어,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에 도착하자마자 본 것은 물질의 풍요와 빈곤이었다'에서 '도착하자마자'를 'as soon as I arrived'라고 하면 좋은 번역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as soon as'라는 표현은 정말 말 그대로 어떤 행동을 하자마자 다른 행동이 이어서 나올 때 쓰는데, 이 문장에서 다카에 도착했다는 의미는 '다카에 비행기를 타고 와서 수속도 밟고 짐도 풀고 목도 축이고 밥도 먹고 한 다음에 도시 구경을 나가봤더니'에 가깝다. 그리고 '물질의 풍요와 빈곤'도 그냥 단순히 명사 and 명사라기보다는 풍요와 빈곤의 차가 컸다는 것이 그 속뜻이다.


이렇게 우리가 그냥 쓱 읽고, 혹은 듣고 이해했다고 생각한 부분을 놓치지 않고 정확하게 도착어로 재구성하는 것이 바로 제대로 된 통역과 번역이고, 이게 가능하려면 문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 보니 공부를 하다 보면 0개 국어의 신비를 경험하게 되는데, 도대체 제대로 아는 언어가 있긴 한 건가 싶어서 마치 실어증에 걸릴 것만 같은 위기감을 느끼고 그동안 쓰던 한국어와 영어는 다 옹알이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어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아무튼 이래저래 통번역은 참 어려운 공부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통역 수업이나 번역 수업이 기다려지는 걸 보면 내 천직은 천직인가 싶고, 곰곰이 생각해 보면 마치 두더지 잡기 게임 같기도 하다. 짜증은 나도 오기가 나서 계속하다 보면 결국 두더지 머리통을 힘껏 때리고 쾌재를 외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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