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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awer Aug 11. 2020

혹시 당신도 시시포스의 저주에 걸렸나요?

  


  2000년대 초, 추억의 띵곡 중 하나인 박명호의 사진이라는 곡을 아는가. 거기에 이런 가사가 있다. “너를 만난 날 1367일, 만난 시간 32808시간.” 이과 감성과 문과 감성이 오묘하게 섞인, 감성적이면서도 직관적인 가사. 정확한 숫자를 제시함에도 불구하고 꽤나 긴 시간이겠지 하고 막연하게 추측되는 가사가 참으로 멋져 보였고 나도 언젠가는 누군가와의 만남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 만남은 우연하게 찾아왔다. 설렘 가득한 스무 살… 오리엔테이션에서 만난 같은 과 동기도 아니고 교양 수업에서 만난 한 학번 선배도 아닌, 바로 ‘통학(通學)’ 이었다. 우리 집에서 학교까지는 장장 두 시간이 걸렸는데, 어떻게 요리조리 루트를 짜봐도 도어 투 도어(door-to-door) 두 시간을 줄일 수 없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학교 앞에서 자취를 하거나 기숙사를 이용할 수도 없어 그렇게 하루 4 시간을 통학에 꼴아 박았다. 그러니까 내가 왕복 4 시간씩 일주일에 최소 4 번씩, 한 학기인 16주8 번 움직였으니 대략적으로 총 85일 8시간, 2048시간을 통학하는데 쓴 셈이다. 80일간의 세계일주를 한 것도 아니고 고작 학교 오가는데 85일이나 쓰다니, 참 억울하지 않겠냐고.


  처음 일 년은 상상 이상으로 고통스러웠다. 남들 보다 세 시간은 일찍 일어나 준비하고 나가야 한다는 게 무척 억울했고 무르익은 술 자리 분위기를 벅차고 나와야 하는 게 너무나도 속상했다. 이렇게 어디에 하소연할 수도 없는 분통하고 답답한 일 년을 보낸 후, 나머지 2년은 자조적 마인드였다. 친구들의 공감 어린 위로에 아무렇지 않은 척 농담 한마디를 건넬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졸업 전 마지막 1년,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마침내 無(무)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인고의 85일간의 통학 일주를 통해 내가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1분 1초라도 허투루 쓰지 않고 자투리 시간을 실속 있게 이용하는 알뜰함? 나라는 사람은 누구인가, 깊은 사색을 통한 스스로에 대한 깨달음? 아쉽게도 내가 얻을 수 있었던 건 앉아 있는 사람들 중 누가 가장 먼저 내릴지 알아보는 혜안과 대중교통 광인들을 사뿐히 무시할 수 있는 덤덤함 뿐이었다.


   이처럼 신이 나에게 자아 성찰을 위한 2048시간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간을 허망하게 보낸 탓일까. 통학의 굴레에서는 벗어 났지만 나는 여전히 통근의 굴레에서 허덕이고 있다. 제우스의 분노를 사 계속해서 바위를 굴리며 산을 타야 하는 시시포스처럼 나도 신의 미움을 사 이렇게 계속 매일 서울을 횡단하며 살아야하는 것일까. 무거운 가방을 지고 억겁의 시간을 이동해야 하는 건, 비단 나 뿐만이 아닐 거다. 아마 어쩌면 우리 모두 시시포스의 저주에 걸린 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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