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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summersea Jan 24. 2022

대학원생은 어디 살아요?

여기저기 이사 중.

  지하철 바로  원룸. 부모님이 마련해준 둥지에만 머물  알았지만,   인턴 기간을 통해 서로 알아가 보자는 교수님 말씀에 나는 처음으로 둥지를 떠나 서울에원룸을 계약했다. 세상 모든 걱정을 미리 하는 엄마 성격과 내가 막내라는 조건이 손을 잡으니 나의 원룸 위치와 상태는 최상이었다.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원룸이 ‘좋다라는 것은, 엄청난 월세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다. 월급이 쥐꼬리만 하기에 월급의 절반 이상이 월세로 나갔지만 편안한 삶을 살게  주었다.      


  엉망진창 학교 기숙사. 박사과정에 들어가면서 1 기숙사에 들어가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말이 집에서 나왔다. 지금 집이 너무 좋지만 ‘월세를 아껴서 그만큼 저금하고 차라리 여행을 다니자!’라는 생각으로 울며 겨자 먹기로 기숙사를 신청했다. 본가가 학교에서 멀고 박사과정 학생이다 보니 기숙사 배정은 대기 번호 없이 바로 입주할  있었다. 추운 겨울날 입주한 기숙사는  사람이 불법 퇴실을 하는 바람에 방치된 상태로 나를 맞이했다. 설상가상으로 원룸과 같이 집주인이 있는 것이 아니니 아무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았다. 엉망인 기숙사 청소는 결국, 지금의 남편과 내가 하였고 그렇게 정리가 되는가 싶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기숙사의  고장과  선생님의 출몰로 나는  개월 만에 백기를 들었다.      


  행복 가득한 언니의 집. 백기를 들고 달려간 곳은 경기도에 사는 언니의 집이었다. 학교까지 걸리는 시간이 편도로 1시간 30분 혹은 2시간이었지만, 기숙사에 살 때보다 행복했다. 그리고 당시 우울증 증상이 있었기 때문에, 어둡고 추운 기숙사 방에 혼자 있고 싶지 않아 서둘러 나온 이유도 있다. 옆에 언니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도움을 주었다. 그렇게 반년 정도 언니의 집에서 지내다가 나는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했다.     

 

  시댁. 결혼 후에는 남편의 본가에서 살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결혼을 하자마자 남편은 한 달 동안 해외에 나가 연구를 해야 했다. 세상에나, 남편의 집에 남편 없이 살게 되었다. 새로운 가족문화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머니께 ‘아니요’ 혹은 ‘괜찮습니다’를 말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식습관도 달라 소화제를 먹으러 종종 저녁에 편의점을 들려야 했다. 내향적인 삶을 즐기는 것을 모르셨던 외향적인 어머니는 내가 혹여나 심심해할까 봐 매일 드라이브나 산책하러 나가자 하셨다. 당연히 힘들었지만 그래도 남편 없는 한 달 덕분에 어머니 아버지와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었고 빠르게 서로를 알아갈 수 있었다. 지금은 웃으며 그때 어머니가 날 얼마나 힘들었게 했는지 아시냐며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학교 기숙사. 남편이 해외에서 들어온  우리는 학교에서 제공해 주는 부부 기숙사에 들어갔다. 신혼부부답게  가전제품들을 장만하고 집을 가꾸어 나갔다. 작지만 우리 둘만의 공간이 있어 행복했다. 베란다에는 화분을 두어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으며 힐링하였고, 잠들기 전에는 벽에 빔을 쏘아 드라마나 영화를 봤었다. 이곳에서 계속   있었으면 좋겠지만 계약 기간이 2년을 넘길  없는 조건이 있어   만에 다시 부동산을 둘러보았었다. 대출을 해야 하나? 전세를 할까 월세를 할까? 포장이사를 할까?  포장이사를 할까? 등등 많은 선택지 사이에서 남편과 둘이 대화를 통해 결정하는 모습이 정말 부부다운  같아 스스로 신기했다. 하지만 한정된 예산안에서 집을 찾는 것은 사람을 지치게 한다. 그래도 다행인   포기 상태에 있을  우리에게  맞는 집을 찾았다.


  엘리베이터 없는 5. 집을 등산하고 얻은 것은 넓은 평수였다. 집주인 할머니가 살던 곳이라 체리 몰딩이 눈에 띄는 집이었다. 고풍스러운 느낌을 풀풀 풍겼다. 거실에는 실링 팬이 있어 초등학교  살던 집이 생각나는 곳이었다. 매일 같이 5층까지 등산을 해야 했지만, 전에 없던 거실이 생겨 ‘초대 가능해졌다. 지인들을 불러 술도 마시고 식사도 하는 즐거움을 선사해 주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집도 조만간 떠나게 된다.      


  대학원 생활 동안 6번의 이사를 하였고 2번의 이사가 계획 중에 있다. 집이 없어 이렇게 이사해야 하는 단점도 있겠지만, 여러 곳에 살아  기회가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이사를 하러  집마다 추억이  다르기에 남편과 이야기할 추억들이 풍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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