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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니 Jul 11. 2024

이젠, 좀

비우자



차라리 까발려 버리자.

그 다음 사랑을 하던 연애를 하던 일단 하자.


나는? 동성애자는 아니다.

양성애자는 가능성이 있을지 모르겠다. 여태 깊게 생각하거나 관심갖은 주제가 아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나를 생각해 본다. 미루어 짐작컨대 앞으로도 가능성이 미미한 정체성이다.  

주민등록 번호 두 번째 마디가 '2'로 시작한다. 그러면 '여성', '여성'스러워야 하는가?

주민번호의 규정된 성별은 두 가지다. 1과 2.

이 두가지 숫자로는 대한민국 인구 수 5천만명의 각 각의 성향을 요약 설명할 수 없다.


"허니님이 여성스럽다고요?"

모이는 사람의 연령은 30대~50대의 스펙트럼을 갖췄다. 성별이 순도 100% 여성으로만 구성된 소그룹이었다. 그분들의 또 하나의 공통점. 나를 제외하고 모든 멤버가 법적 커플을 유지하거나 적어도 한 번의 결혼 경험을 가졌던 분들이었다. 모임에서 미경님이 여빈씨와 나에게 동시에 되물으셨다.

미경님은 여빈씨가 나에 대한 평으로, "허니님은 무척 여성스러워요." 말했다고 착각하셨다.

그 의견 대해 놀라는 미경님의 감정을 나에게 직접적으로 드러내셨다.


사실 여빈씨는 나와는 상관 없는 다른 스토리를 얘기하고 계셨다.

'미경님은 왜 그렇게 들었을까?'

그 반문만으로도 미경님의 의견이 여실했다

'허니가 여성스럽다'는 의견은 동의할 수 없다. 미경님만의 생각이었다.    


여빈씨가 대화의 흐름에 당황하는 걸 눈치챘다. 나는 자원하여 여빈씨를 대변했다.

그러는 편이 이런 대화를 잘 마무리할 거니까. 다른 화제로 돌리기도 쉬울테고 말이다.

"아뇨. 제가 좀 쿨하죠. 젠더 감성 있고, 걸크러쉬 느낌이 강하죠."


마음속으로 숨겨 둔 고민을 중얼거리면서 또롯하게 덧붙였다.

여성스럽지 못한 이유가 다른 게 아니라 '그것'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종결되어지는 결핍의 문제는 모임에서 나만 튀는 그 이유였다.

'그래서일까?'


태그_진짜하고싶은말.

'원래 타고난 본성과 자라온 환경으로 만들어진 성향이 있겠죠. 그 부분 무시 못하죠.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계속 뭔가를 선택해야 해요. 저의 오늘의 삶, 선택의 결과이자 연장선이고요.

결혼을 선택하지 않고 40이라는 나이를 넘기잖아요. 이 삶도 결국에는 선택이죠.

상황과 운명같은 힘도 작용을 하고요. 상황에 따라 내가 선택을 했으니까 잘 살아가고 싶은 거에요.

싱글이니까 혼자 잘 살려고 노력하는 게 당연하고요. 사는 동안 문제는 항상 있기 마련이잖아요.


혼자 산다는 의미는 계속되는 모든 문제를 혼자 홀연히 맞딱뜨리고 해결해야 하는 것이죠.

이를테면, 이사 하거나 집 구석구석 손댈 곳이 생기거나 또는 아프거나...

이런 상황의 문제의 해결은 모두 누가 해야할까요?


전화기를 손바닥에 올려놔 봐야 떠오르는 이름은 점점 없어져요.

문제 발생하면 전화기가 아니고 바로 내면의 대화를 시작해요.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래?'로 시작해서 답을 찾을 때까지 전전긍긍하죠.


2020년 가을에는 새로운 정체성 '자영업자'로서 출발했어요.

간판 걸자마자 코로나가 왔고요. 실상은 1년 적자! 좋은 말로는 투자 시간을 보냈고요.

스트레스 엄청 받는 시간이었죠. 혼자 '존(  )버(  )기 1년 채우니까 시간이 가긴 하더라니까요.

'존버'의 시간마다 싱글은 철저하게 혼자가 되어야 하죠.


기도나 달리기? 도움이 되긴 해요. 수다떠는 건? 저에게는 좋은 방법 아니고요.  

혼자 해결하더라도 잘 성취하고 크게 성공하고 싶어져요.

결국 남성이 할 일과 여성이 할 일을 구분할 겨를이 없어져요.

소원과는 달리 잘 성취하거나 크게 성공하지 못할 경우도 많죠.

그게 '삶'일 테니 받아들야죠.


뭐. 미경님의 의견에 반대는 안 해요. 굳이 설명하자니 이렇게 이유가 길어요. 속 시원이 꺼내다 보면 이 정도로 끝날 이야기도 아닐 거에요. 막상 제가 생각해도

<왜 혼자 사는지?>

<뭐가 크게 문제일까? 있나?>

<두려운가? 없는 것 같은데..?>

이렇게 고민해 보는데 답은 저도 아직 딱히 모르겠어요.

답 몰라도 그냥 아무나랑 하면(?) 될 거 같은데

‘그 그냥’이 힘들어요.'


덧붙임 말 해쉬태그로는 해결이 안 되는 분량이었다.




남성이라는 존재가 내 삶의 공간과 시간에 필요하다고 느꼈다. 갈망처럼 간절한 기도가 되었다. 열정적으로 간구해도 이뤄지지 않으면 타협하는 마음이 생긴다. 소망하는 시간이 '적절하게 가끔'으로 빈도수의 수위를 낮췄다. 나중에는 바람조차 희미해졌다.


결국 싱글 라이프 나름의 만족도가 오히려 높아졌다. 결혼하지 않았다는 이유가 자주 행복해졌다. 싱글이라는 사실이 종종 다행스럽게 생각되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화려한 싱글인지는 모르겠다. 화려한 싱글을 정의해 보질 않아서다. 적어도 초라한 커플, 커플이어서 더 외로운 유형의 삶은 아니었다.


한 번은 이전 직장 메이트 쌤이 자신의 커플 스토리를 이런 말로 대변했다.

Judy쌤은 뉴요커로서 대학을 다닌 후에 한국에 돌아왔다. 첫 직장은 삼사 방송국 중 K 채널이었다. 본인 표현에 의하면 "철이 없어서 권위주의적인 상사와 그 문화를 어이없게 생각했다. 박차고 나왔다"고 하셨다.

 

"싱글이라서 외롭다고? 그것보다 더 외로운 게 뭔지 알아?"

"그것 보다 더 외로운 게 있어요?"

"같이 있는데 서로 다른 마음 품고 다른 생각을 하는거야. 같은 테이블에서 서로 딴 말만 하는 거야. 그 때 더 외로워. 혼자라면 기대치가 없잖아. 곁에 있는 사람의 공감이나 위로 같은 것 말야. 살다 보니 '남의 편'인 거지. 남의 편하고 같이 있어 봐. 아마 더 외로울걸. 굉장히"


이런 소견을 가진 커플이 다반사이고 이런 상황 자체가 매우 평범한 도시가 서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적당하게 어울리고 함께 관계할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글로벌 도시 서울에는 고독을 깨트릴 쉬운 방법이 제법 많다. 이런저런 소모임, 다양한 주제가 딸린 활동 커뮤니티, 독서나 취미를 기반으로 한 그룹 모임 또는 운동을 매개체로 한 만남 등. 사람들이 업무 외로 만나다 보니 회사 에서 만나는 동료들보다 재밌고 편하게 느껴진다.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데 아주 적합하다. 고로, 싱글라이프가 좋았다. 편했다.


물론 '외로운 척'해주는 센스는 디폴트였다.

나는 커플 라이프를 선택한 사람들과 일하고 일상 모임도 자주 갖으니까.

정황상 언제든 '다시 커플'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동료도 랜덤으로 나타나고 말이다.

이 모든 사람들과 두루 잘 지내야 하니까.


하지만 결정적인 선택의 기로에서 '싱글의 편리함과 자유함'만을 숭배했다. 과감하게 좋았다.

커플라이프라는 새로운 방안을 선택함과 동시에 함께 포기하거나 선택해야 하는 사항이 있다.

쉬운 말로 대가 지불! 그 값을 치르지 않는 이유는 단순했다.

누구나 알다시피 양 쪽 상황 모두 완전하지 않다.

'싱글 라이프'의 기회비용을 지불하고 '커플 라이프'가 가져올 다른 빛깔과 다른 유형의 행복이 있을 뿐.

그런데 그게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 당시에는.




그런데 경력 라인의 변경이 시작되었다.

*** 회사 소속 강사로서의 챕터를 마무리했다.

*** 학원 원장이자 대표로 이름을 바꾸려는 의도로 신도시 동탄으로 이사하고 직장 주소지도 동탄으로 바꿨다. 꿈에 부풀어서 시작한 일이어서 기대감이 컸다.

물론 예상과는 다른 시즌과 상황들이 전개되었지만 말이다.

부족했던 시장 조사의 문제는 교육 분야 자영업 영역 뿐이 아니었다.

개인 삶의 라이프 유형은 아예 시장 조사할 생각조차 없었다. 이사오기로 결정할 시기에는 그걸 몰랐다.


이 도시에 구성원의 대부분은 젊은 부부이거나 젊은 가족들이다.

아이들은 하나, 둘 간혹 셋 정도 키우는 가정 단위 위주다. 집조차 서로 많이 비슷하다. 말끔한 신축 아파트. 착한 아내와 예쁜 딸 둘과 도란도란 행복하게 살고 있던 남동생이 이미 동탄시민이었다. 집도 좋고 사업도 잘 되는 것 같았던 내 남동생! 좋은 삶으로 잘 가꿔온 자신을 제일 자랑스러워 해야 마땅하지 않나? 당시 동생이 세상에서 가장 부러워하던 존재는 다름아닌 나였다. '철 없어 보이기는 하나 자유로운 영혼의 누나'가 세상에서 최고 부럽다 했단다. 자신은 무거운 책임감에 짓눌렸던 게다. 항상 고군분투해야 했고 말이다. 동생은 나보다 5년 정도 먼저 동탄으로 이사했다. 가정도 이루고 사업 기반도 잡았다.


동업자가 되겠다며 나를 꼬시기 시작한 게 2020년 봄부터였다.

6개월의 감언이설로 나를 설득했다. 나 또한 서울에서 짐을 쌌다. 동생의 감언이설과 설득의 스토리와 관점으로만 나의 미래를 설계하면서 말이다. 사업적 설계 뿐만 아니라 개인 삶의 미래를 분홍빛으로 꿈꾸었다. 그 장단에 설레었다. 설렘과 함께 코로나의 열풍이 강하게 불고 있었다. 그 역사적 사실을 몰랐다는 게 나의 허점이었을 뿐.  


그 후 삶의 변화?

무엇보다 '자유로운 영혼'의 정체성으로 나는 살지 못했다. 브랜드가 보장해 주는 교육 회사에서 일하는 게 아니니까. 자영업으로도 초보, 동탄이라는 신도시에 사는 것조차 동탄 시민으로는 비기너니까. 이 도시는 '나만 이방인이다'라는 개인적 느낌을 다시 새롭게 불러 일으켰다. 계획 도시 탄생 목적 자체가 '싱글'을 위한 도시가 아니었고, 자녀를 기르는 젊은 부부를 위한 도시였으니까.


과거 스무살에 그렇게 바라던 서울에 입성했다.

가능케 했던 나의 위대한 업적은 '인서울 대학 합격'이었다. 고향인 전라도 광주와 정들었던 가족을 떠나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그 때도 큰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선택한 전공과목 덕분에 '공대 아름이'였는데 그 현실을 인식하지 못한 설렘이었다. 공과 전공인데 학과에서 혼자 여성이고 남은 교우들은 모두 남성인 상황으로 대학생활을 해야 했다. 대학 생활 내내 느꼈던 외로움, 고독, 이질감을 다시 느끼기 시작했다. 정말 꽤 시간이 흘렀는데 당시에나 느꼈던 깊이의 '이방인의 고독'을 다시 절감했다.


학원 오픈과 함께 코로나도 시작!

이 상황도 매우 운명적으로 펼쳐졌다.




그런데 좋은 게 다 좋은 게 아니고, 나쁜 게 다 나쁜 게 아니다. 

이 말을 신뢰한다. 위기는 기회다. 어려운 시간을 이기게 해 준 표어다. 잘 생각하다 보면 어떤 최악의 상황조차 좋은 점이 있게 마련이다. 지난 4년간 신도시에서 살아온 느낌이다. 비유로 풀자면, 어둡고 거대한 우주 공간에 혼자 붕유하는 우주인같았고, 난파선에서 간신히 살아 남은 뒤 거센 파도를 뗏목 하나 의지하는 사람같았다. 영화 <그래비티>와 <라이프 오브 파이>를 실감나게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존버 정신'으로 버텼다. 덕분에 얻은 내면의 좋은 결실이 많다. 얼마나 많은 지는 계속 꺼내 봐야 알 것이다. 그 중 하나다.

소망 하나.

결핍의 시기는 소망이 탄생하는 위대한 시간.


드디어 싱글이 아닌 커플의 일원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살 거라는 소망이 생겼다.

여러 가지 내적 외적 걸림돌은 변화된 내면 관점으로 돌파하리라.

글 쓰는 가장 강렬한 이유다.

소망은 마음의 에너지다.

마음먹는 것보다 적극적으로 '커플 라이프'를 향해 전진하리라.


글의 힘을 체험할 것이다.

이젠, 좀 버릴 건 버리자.

새로운 나로 살자.

사랑을 위해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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