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의 대학생활(1)
뭔가에 속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있는 나는 자칭 비속 주의자이다.
어릴 적부터 단체 활동을 특히 좋아하는 한국인 사회에 끝내 적응을 못했고,
초/중/고등학교 12년을 꾸역꾸역 버텨내었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는 걸 나는 일찍이 알고 있었다.
내 앞길에 뻔히 보이는 수많은 조별 과제와 엠티, 회식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대안을 찾다 보니, 일본어는 곧 잘했던 나, 자연히 일본 유학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그렇게 남들보다는 늦게 시작한 일본 대학교 입시 준비,
준비 자체에도 돈이 많이 들었지만, 대학교 원서를 넣는데만 해도 한 번에 3-5만 엔 즉, 우리나라 돈으로 30-50만 원은 족히 넘어갔고,
유학 시험(EJU) 점수와는 별개로 원서를 넣은 대학에 직접 방문해 면접과 시험을 봐야 했었다. 더군다나 그때 당시(2009-10년) 엔화의 가치가 엄청나게 높았기 때문에, 원서 비용조차 부담이 되어 딱 2군데에 원서를 넣었었는데, 그중에 거짓말처럼 한 군데에서 합격 통지가 왔다.
수능을 본 것도 아니고, 선택지가 딱 하나밖에 없었던 나는 고민을 할 필요도 없이 합격한 대학으로의 진학을 결심했다.
그 대학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지만,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일본에서도 있는 집안 아이들이 온다는 유명 사립 대학교였다. 물론 나와 같은 케이스로 시험을 봐서 대학에 들어오는 학생들도 많지만, 같은 계열 초/중/고등학교로 부터 시험을 치지 않고 입학하는 케이스도 많았다.
그렇게 19살의 어린 나이에 혼자 일본으로 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접하는 대학교가 모든 이들에게 설렘 그 자체 이겠지만, 이국에서의 대학생활은 마치 내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나, 호그와트에 입학하는 해리포터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들뜬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5개월쯤 지나자 힘들어지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금전적인 것이 가장 컸던 것 같다.
그때 당시 엔화가 100엔=1300-1500원에 육박했고, 부모님이 100만 원을 보내도, 일본 돈으로 8만 엔 정도가 남았고 그 안에서 월세와 전기세, 생활비 등을 전부 해결해야 했었다.
도쿄의 살인적인 물가와 엔고(円高)가 합세해서 말 그대로 총체적 난국인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일본 대학교 생활의 로망이라고 하면 로망이랄 수 있는 서클 활동(동아리 개념)이 나에겐 사치였었다.
연회비가 약 2-3만 엔 정도에, 뭔가 모였다 하면 2-3천 엔이 깨지는 식이었는데, 그때의 나에게 2-3천 엔이라고 함은 거의 일주일 식비였었기 때문에 반 강제적으로 서클 활동은 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다른 학교 한국인 유학생들은 나와 비슷한 주머니 사정으로, 다들 힘들어했었던 것 같은데, 유난히 우리 학교의 학생들은 유학생이고 현지 학생이고 있는 집안 자식들이 많이 있었다.
그 애들은, 2-3천 엔쯤 한 끼 식사로 거뜬히 내고 매번 쇼핑을 하러 가기도 하고, 학기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명품 브랜드의 신상을 학교 책가방으로 가지고 왔었다.
지금의 나였다면 명품에 관심도 없고, 나 스스로 돈을 벌기에 별 생각이 안 들었을 터인데, 그때의 나는 힘들게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었기에, 솔직히 그 아이들이 부럽기도 했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깊게 생각할 틈도 없이 대학교 1학년이 끝나고 있었다.
그렇게 겨우 겨우 학교를 다니며 아르바이트도 하며, 이제 적응하나 싶을 즈음.
동일본 대지진이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