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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탕 Feb 01. 2021

4개 국어 가능자의 학창 시절 이야기



90년대 초반에 태어난 나는,

외국여행이 그리 흔하지도, 그렇다고 아주 어렵지도 않은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에 초등학교를 나왔다.


한 반에는 두 세 명 정도 해외여행을 가 본 친구들이 있었고, 그 당시 우리 집은 그중에 해당하지 못하던 지극히 평범한 집안이었다.

원래부터 호기심 천국이었던 나는, 같은 반의 부유한 집 친구의 여름 어학연수 스토리를 들으며 나의 이국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하기도 했다.


이국에 관심을 가지게 되니 자연스레 그 나라의 언어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고, 그렇게 언어에 대한 궁금증은 초등학교부터 시작되었다.



1. 영어


부모님은 조기 교육자체에는 크게 관심이 없으셨는데,

언어에 흥미를 가지고 있던 나를 위해 주로 영어 회화를 전문으로 가르치는 학원을 보내셨다.

회화학원은 너무 재미있어서 항상 수업시간을 손꼽아 기다렸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당시, 문법 위주의 수업은 거의 하지 않아서, 전형적인 한국 고등학교에 진학했던 나는 엄청나게 고생했었다.

중학교 때 까지는 무난 무난하게 고득점을 받아왔었는데,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교과 과정중 등장하는 성문영어식 영어 덕에 흥미를 잃게 되고,

이후에 영어 듣기 평가, 회화 실기 시험 등은 만점을 받았으나, 고등학생이 되고서 항상 70점대에 머무르게 된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도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마이 페이스로 내가 좋아하는 교재를 만들어 공부했다.

예를 들어, 그때 당시 개봉했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라는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아빠에게 부탁해 영화 음성을 모두 MP3로 만들어서 계속 들으면서 중얼거리던 기억이 있다.

많이 듣다 보니 지금도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거의 전부 외우고 있다.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방식 위주의 공부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다가 학교에서 단체로 쳤던 공부도 안 하고 친 토익 시험이 900점이 나와서 영어 선생님들이 다 놀랐던 기억이 있다.(매번 학교 시험에서 70점대의 열등생이 받은 점수라고 생각하기 어려웠기 때문)



2. 일본어


나의 관심사는 영어뿐만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시절, 우연히 집의 책장에 꽂혀있던 엄마의 "일본어 마스터(초급)"을 열어 보게 되었고,

그때 처음으로 꼬부랑글씨로 적혀있는 히라가나와 가타카나에 매력을 느껴 무작정 따라 써 보게 된다.

영어도 한국어도 아닌 이 문자가 너무 귀여워 보였다.


또, 작은 고모가 일본에서 살고 계셨었는데, 가끔 한국으로 오실 때 헬로 키티가 그려진 귀엽고 아기자기한 학용품을 사주곤 하셨다.

이때 고모의 딸 동갑내기 사촌은 일본에서 나고 자라서, 거의 한국말을 못 했던 걸로 기억이 나는데, 그 아이가 내가 한국어 만화책을 보는 것처럼 일본어 만화책을 술술 읽는 모습이, 그렇게 신비로워 보일 수 없었다.


그렇게 마음 한구석에 일본어를 안고 살았는데, 중학교에 진학하니, 방과 후 수업으로 일본어 수업이 있어서 등록을 하였다.

너무 재미가 있어서 진도가 나가는 족족 챕터를 전부 외웠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의 일본어 실력과 관심은 점점 올라갔고, 이를 본 부모님은 나를 수학학원 대신에 일본어 학원에 보내 주신다.


당시에 일본어 학원에는 대학생, 직장인 언니 오빠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중학교 1학년이던 나를 많이 예뻐해 주셔서 더 재밌게 학원을 다녔었다.

그렇게 중학교 1학년 끝나 갈 즈음에 일본어 능력시험 3급을 따게 되었고, 곧이어 2급 시험도 준비를 했었는데, 수업이 점차 난이도가 높아지게 되어, 불같이 타올랐던 나의 면학 욕구가 점차 식어 들게 되고, 그렇게 일본어를 잠시 덮어두게 된다.


그러다 중학교 2-3학년, 만화책에 빠지게 되고 ‘후르츠 바스켓’이라는 당시에는 조금 유행했던 일본 만화를 빌려 보곤 했다. 17권인가를 단숨에 읽었는데, 다음 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일본어를 놓아버린지 꽤 되었지만 당시 영풍문고를 통해서 아직 번역이 되지 않았던 18권을 주문해서 읽었다. (물론 다 읽기 전에 번역권이 나왔다)


이때 언어를 하나 더 하면, 내가 좋아하는 만화책을 남들보다 더 빨리 읽을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에, 놓았던 일본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니, 제2외국어가 일본어였는데, 내가 중학교 때 배워놓은 일본어가 선행 학습이 되어있던 셈이라, 히라가나부터 배우던 수업이 너무 시시해서,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그 시간은 홀로 일본어 선행 학습을 신나게 했다.


그러다, 어느 일본 학교에서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 입시 설명회를 왔는데, 이는 나의 눈을 뜨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재미없는 수능 공부 대신에, 내가 좋아하는 영어와 일본어를 열심히 하면 대학에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당시엔 그렇게 들렸다)


그렇게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말에 일본 대학 입시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다.




물론, 특히 내가 사는 유럽에서는 언어 3-4개 한다는 게 큰 자랑 거리도 못 되고, 자랑하고자 쓴 글도 아니다.


순전히 만화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너무 좋아하는 영화의 대사를 외우고 싶어서 재미 삼아 시작한 언어 공부는, 생각지도 못하게 나에게 길들을 열어 주었다.


인터넷 번역기가 감도가 더욱 좋아지고, 기계 번역이 사람을 대체하게 될 것이라는 말도 들려 오지만,


그래도 나는 멈추지 않고 외국어 배우기를 계속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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