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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고 Oct 24. 2023

정서적 지지가 필요해

기숙사에 사는 아이들을 응원하는 원격맘

돌돌이의 손가락 수술을 위해 서울에 다녀왔다. 처음엔 대전에서 할 계획이었다. 수술이 끝난 후에도 외래진료를 받는다는 설명을 듣고 생각을 바꾸었다. 수술 당일에는 내가 병원에 동행하고 이후에는 돌돌이 혼자 치료를 받기로 했다. 병원 로비에서 만난 돌돌이는 기운이 없어 보였다. 어제부터 소화가 안 되어 식사를 걸렀다고 했다. 이런저런 검사를 받고 기다리는데, 이마에 팔을 얹고 침대에 누워있던 돌돌이가 말을 꺼냈다.


「이럴 땐 집이 아니고 기숙사로 돌아간다는 게 좀 그래」

「외할머니 댁에서 자고 갈래?」

「거기 가면 뭐해? 큰 침대가 있다 뿐이지 아무도 없다며. 난 정서적 지지가 필요한 건데」

「그럼 나도 외가에서 하룻밤 자고 갈까?」

「그건 안되지. 집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잖아」

「그렇긴 하지」

「나 너무 힘들면 택시 타도돼?」

「그래. 만원 지하철에서 수술 부위가 눌리면 안 되니까 생각해 보자」


얼마 후 수술팀장님이 방문해 수술 절차에 대해 자세히 일러주었다. 돌돌이 눈에서 걱정을 읽은 팀장님이 말했다.

「혹시 사랑니 발치했어요? 이 수술의 마취 정도나 수술 규모는 사랑니보다 훨씬 간단하다고 보시면 돼요. 수술하는 동안 음악을 틀어주니까 편안한 마음이 들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랑니 보다 참을만하다는 설명 덕분인지 돌돌이의 염려가 누그러진 것 같았다. 팀장님은 돌돌이에게 헤드폰을 씌워주고 수술실로 데려갔다.


수술이 끝나길 기다리는 동안 핸드폰을 만지작 거렸다. 병원에서 돌돌이 학교까지 택시비를 검색해 봤다. 3만 원이라니 꽤 비쌌다. 입맛이 없는 환자니까 죽을 먹으면 좋을 것 같아 인근 식당을 찾아봤다. 한 30분쯤 기다렸을까, 돌돌이가 병실로 걸어 들어왔다. 기분이 괜찮아 보였다. 우리는 퇴원 수속을 마치고 밥을 먹기로 했다.

「한 400m 되는데 걸어갈 수 있겠어?」

「나 손가락 한 개 빼고는 정말 멀쩡해. 짐도 들고 갈 수 있어」

돌돌이는 내 종이봉투를 달라고 하더니 수술한 손의 엄지와 검지에 걸고 힘자랑을 했다. 집에서 챙겨 와 달라고 부탁했던 테니스화였다. 수술하기 전에는 미안하지만 도로 가져가 달라고 하더니 생각이 바뀐 모양이었다.

「잘 끝나서 다행이네. 이제 좀 홀가분해?」

「음, 생각보다 괜찮아. 나 기숙사까지 지하철 타고 갈래. 손가락 보호대도 있고, 수술했다는 느낌도 없고 진짜 아무렇지도 않아」


우리는 지하철에서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기숙사는 환자가 편히 쉴만한 곳이 아니라고 말하던 돌돌이는 전복죽 한 그릇을 비우고 씩씩하게 손을 흔들고 떠났다. 돌돌이가 탈 열차가 먼저 왔는데, 다행히 한산했다. 아들이 대학교 진학을 위해 집을 떠난 후 건강상의 이유로 나에게 도움을 청한 것은 처음이었다. 연초에는 학교 근처의 미용실을, 얼마 전에는 새로운 안경점을 발굴하더니, 이번에는 병원을 옮겼다. 돌돌이의 생활반경이 바뀌었다는 게 새삼 실감 났다.

 

자기 전에 스마트폰을 확인했더니 문자가 와있었다.

「이제 마취가 슬슬 풀리기 시작했어요. 오늘 와주셔서 감사해요」


Photo credit: Bing Image 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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