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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고 Feb 18. 2024

군대에서 제일 먹고 싶은 음식

한 주간 한파가 계속된 1월 말, 돌돌이를 만나러 포항에 갔다. 해병대 신병 수료식이 끝난 후 예약한 장소로 이동했다. 1층에는 식당, 2층에는 카페가 있는 곳이라 복귀 시간 전까지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테이블에는 인원수대로 숟가락과 젓가락이 놓여있었다. 음식이 나오기 전인데 돌돌이는 젓가락을 손에 쥐더니 감탄했다. 

「와, 진짜 오랜만이다. 그동안 숟가락인데 앞이 포크처럼 생긴 포카락을 썼거든」

식기를 간소화하면 빨리 먹을 수 있고, 소지하기도 쉽고, 설거지도 간단할 것이다. 군사 훈련이 편할 거라고 예상한 건 아니지만, 일상적인 식사 도구조차 제공되지 않는 것은 알지 못했다. 사용법을 처음 배운 아이처럼 허공에서 젓가락을 움직이는 돌돌이를 보니 마음이 짠했다.      


6주간 훈련을 마치고 해병이 된 아들은 할 이야기가 많았다. 호링이는 몇 년 후 자기의 모습을 대입해 보느라 그랬는지 군대에 대해 궁금한 점을 연신 물었다. 긴 식사를 마치고 카페에 올라갔다. 사장님께 준비해 온 간식을 먹어도 되는지 물어보았더니 흔쾌히 승낙해 주었다. 과일, 과자, 젤리 등 여러 가지 음식 중 돌돌이가 제일 먼저 집은 것은 배였다. 아들은 집으로 보낸 군사우편에서 제일 생각나는 음식이 배라면서, 면회 올 때 꼭 가져오라고 적었다.      

「돌돌아, 그동안 먹고 싶은 거 참느라고 애썼네」

「진짜 희한한 게, 편지 쓴 다음 날인가 점심에 배 한 조각이 나온 거야. 디저트로 과일이 나오고 부식으로 몽쉘이 나왔거든. 음식 나눠주는 사람한테 몽쉘 대신 배를 더 가져가도 되냐고 물어봤거든. 근데 대답 듣기도 전에 잡담한다고 혼나서 실패로 돌아갔지」

「그런 건 안 되는구나!」

「근데 다른 사람하고 바꿔 먹었어. 식판 들고 자리에 앉은 다음에 옆 사람한테 배 좋아하냐고 물어봤거든. 그랬더니 “맛은 봐야지”라는 거야. 그래서 내가 말했지. “너 그거 한입 먹고 나머지 나한테 주라. 대신 몽쉘 가져” 그렇게 득템 했지」

「네가?」

「언제 또 먹을 수 있을지 모르니까, 그거라도 감사하게 먹었지. 엄청 맛있었어」      

돌돌이는 어릴 때부터 빨대나 컵 같은 물건을 공유하지 않았다. 가족들끼리도 “한 입만~” 하는 법이 없었다. 동생이 “형아 나 한 입만” 하면 단칼에 거절하거나, 먹던 걸 통째로 주고 돌려받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그랬던 아들이 비위가 좋아졌다고 해야 할지, 융통성이 생겼다고 해야 할지, 군대에서 누군가 베어 먹은 음식을 챙겼다는 게 신기했다. 돌돌이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한 해 전, 돌돌이가 대학교 기숙사에 갈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부모는 기숙사에 출입할 수 없다고 하여 남편과 나는 건물 1층에서 기다렸는데, 거기까지 가서 짐 정리를 도울 수도,  아들이 생활할 공간을 볼 수도 없다는 게 찜찜했다. 후에 영상통화로 잘 정리한 기숙사 방을 구경시켜 주어 한결 나아졌지만, 마음을 추스르는 데 시간이 걸렸다. 당시에는  아들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커진다는 것이 내가 더 이상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뜻으로 여겨져 분리불안을 겪었던 것 같다. 군대는 더욱더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영역이다. 앞으로 돌돌이가 나에게 알리지 않는 소식이 늘어날 것이고, 말을 해주어도 내가 공감하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일 년 사이에 입학, 이사, 휴학, 입대를 경험한 돌돌이는 변화를 감당하느라 힘들었을 것이다.  이 시간 동안 아들은 물리적으로 독립했고, 나는 심리적으로 아들과의 관계를 다시 만들고 있다. 얼굴을 볼 수 없고 소통이 제한적인 요즘 내가 하는 역할은 돌돌이가 주어진 상황을 혼자서 잘 헤쳐나갈 수 있다는 점을 믿고 응원하는 것이다.        


Photo Cr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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