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에서 군 복무 중인 준호가 휴가를 다녀갔다. 집에 있는 동안 캠핑 가고, 친구들을 만나고, 영화관과 서점을 가며 여유 있는 시간을 보냈다. 군인 사정은 군인이 잘 알아서 그런지, 아들은 쉬는 동안 군대에 있는 사람들을 챙겼다. 조치원에서 근무하는 친구가 저녁에 부대 밖으로 나오기로 했다며 만나러 가고, 치료 중인 입대 동기를 만나러 병원에 다녀오기도 했다.
몇 달 만나지 못하는 동안 준호에게 변화가 있었다. 한번은 아들이 시리얼에 우유를 붓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 모습이 생경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배가 아프다며, 우유 대신 아몬드 밀크를 먹었던 터였다.
「아차, 먹는 사람이 없어서 아몬드 밀크를 깜박했네. 너, 그냥 우유 먹어도 돼?」
「엄마, 나 이제 괜찮아. 군대에서 흰 우유 먹는데 멀쩡해. 체질이 바뀐 건지 어떤 건지 아무렇지도 않아요」
제공해 준 음식을 먹지 않을 수는 있어도, 주어지지 않은 음식을 공수할 수 없는 곳에 있으며 기피하던 음식과 친해진 것이다. 소화 기능도 환경에 적응하는 것인지 몇 년 동안 있던 증상이 사라졌다는 게 신기했다.
소비 패턴이 달라졌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준호에게 요즘 즐겨 듣는 노래를 틀어달라고 했더니, 흔쾌히 플레이 리스트를 공개했다. 아들은 유튜브 뮤직으로 재생하는 거라며 유튜브 유료 계정을 사용했더니 음악도 이용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군대에 있으면 핸드폰 이용 시각도 정해져 있고 무엇보다 개인 시간이 귀하잖아요. 그런 생활을 하는데 무료 회원이라고 의무적으로 몇 초간 광고를 봐야 하는 게 싫더라고요. 광고 없이 보고 싶은 콘텐츠만 보려고 구독했는데, 요즘은 영상 시청보다 음악 듣는 데 자주 써요. 나라에서 월급 받으니까, 나에게 만 오천 원은 써도 된다 싶었어요」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단체생활에서 귀한 자유 시간을 살뜰하게 쓰려고 하는구나 싶었다. 비슷한 맥락에서 준호는 휴가 중에 교통비를 아끼지 않는 편이라고 하였다.
「제가 요 며칠 택시를 탔거든요. 짐이 많기도 하고, 어떨 때는 너무 여러 번 갈아타야 해서 그러긴 했는데, 택시에 앉아 있으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교통비도 육지에 있을 때나 드는 거지, 연평도 돌아가면 무조건 걸어 다니는 건데, 나와 있는 동안 교통비 아끼지 말자」
한편으로는 더 저렴한 수단을 선택하지 않고 택시를 탄 것에 관해 미안해하지 말자는 선언으로 들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교통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험지에서 생활하는 아들의 일상이 떠올라 마음이 쓰였다.
그동안 전화 통화하며 아들에게 면회 하러 가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준호는 번번이 괜찮다고 했다. 휴가 때 얼굴을 마주한 김에 솔직한 마음을 물었다.
「엄마는 너를 응원하려고 면회하려는 건데, 우리가 연평도에 가면 불편한 일이 있니? 방문객이 있으면 훈련에 방해가 된다거나, 네가 면회 외박을 나가면 동료에게 피해가 간다거나,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궁금해서」
「그런 거 전혀 아니에요. 저도 부대 밖에서 가족들 얼굴 보고 펜션에서 쉬면서 맛있는 것 먹으면 좋지요. 그런데 거기는 수시로 사이렌 울리고, 상상한 것보다 긴장이 감도는 곳이에요. 부모님이 직접 보면 걱정할 것 같아서 오시지 말라고 한 거예요」
나는 그런 이유라면 괜찮다고 했다. 연평도에 다녀와서 걱정이 늘어도 그건 내가 감당할 몫이라고, 일정을 잡아보자고 했다. 배려심 있고 신중한 아들은 곰곰이 따져보더니, “그럼 9월에 한 번 와주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지하철, 기차, 택시, 배를 타고 근무지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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