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호가 중학교 1학년 때 일이다. 인근 고등학교에서 운영하는 발명 교실 참가자로 뽑혀서, 일주일에 한 번씩 오전 수업을 마치고 그 학교에 갔다. 이것저것 만들고 재미있는 실험을 할 거라며 기대감에 차 있었다.
좋아하는 아들을 보고 기뻐하는 것도 잠시, 어떻게 선발이 되었는지 궁금해 물으니 은호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선생님이 종례 시간에 “여기 갈 사람 손드세요” 하셨거든. 근데 남자애들이 거의 다 손을 든 거야. 너무 많으니까 가위바위보로 정하자고 하셨는데 내가 행운의 승자였지.”
학생의 실력이나 적성을 고려한 게 아니라 운이 좋아서 간다는 설명을 들으니 프로그램에 대한 신뢰가 확 줄었다. 하지만 신이 나서 발명 교실에 타고 갈 교통편을 찾아보는 아들 앞에서 내색할 수 없었다. 수업의 명성이 어떻든 간에 자유학년제를 보내는 중학교 1학년의 진로 체험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몇 주간 다니던 발명 교실이 끝나갈 무렵, 은호가 나한테 할 말이 있다고 잠깐 앉아보라고 했다. 왠지 비장한 이야기를 듣게 될 것 같았다.
“나, 가고 싶은 고등학교가 생겼어. 발명 교실이 열렸던 학교야. 신기한 장비가 엄청 많고, 선생님도 진짜 좋아. 복도에 학생들이 만든 프로젝트를 전시해 두었는데, 다들 전문가 수준이더라고. 고등학생이 만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할 정도야. 보고 있으면 가슴이 팡팡 뛰어. 나도 거기서 그런 걸 경험해보고 싶어.”
가위바위보로 우연히 기회를 얻은 발명 교실이, 나중에 은호가 다니고 싶은 학교를 찾아줄지는 몰랐다. 어릴 때부터 코딩, 과학 상자, 로보틱스 등을 좋아했기에 발명하고 실험하는 수업에 흥미를 보였을 때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잠깐 가는 게 아니고 입학하고 싶은 것이라면 상황이 달랐다. 내가 이 학교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특정 분야의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마이스터고등학교라는 정도가 전부였다. 학교 홈페이지를 살펴본 후 공학자인 남편에게 입학 설명회에 가보라고 했다. 행사에 다녀온 남편은 이 학교는 산업체가 필요로 하는 맞춤형 인재를 키우는 곳으로, 소프트웨어개발자가 되는 빠른 길을 제시하는 교육기관이라고 했다. 단, 3년간 취업하고 후에 원하면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선취업 후 진학 모델을 따른다고 하였다.
은호가 마음에 둔 고등학교가 대학 입학에 필요한 공부를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도 나는 불안하지 않았다. 최근까지 준호를 통해 바라본 일반고의 현실은, 거의 모든 학교 활동이 결국 입시라는 결승선을 향한 ‘한 줄 서기’였다. 많은 학생과 학부모가 웃을 수 없는 고교생활을 접하면서, 십 대 후반에 기-승-전-수능점수로 귀결되는 삶을 추구하기보다, 성인이 되기 전에 자신의 적성을 찾는 시기로 썼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게 되었다. 모두가 대학에 가니까 나도 가야지 하는 강박 대신, 실무 경험을 쌓은 후 더 배우고 싶은 분야를 차근차근 탐구하는 것도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2년 후에 소프트웨어마이스터고등학교에 지원하겠다는 아들의 계획을 지지하기로 했다. 은호의 목표를 들은 남편은 그 학교에 입학하는 것을 지지하지도 반대하지도 않는다며 중립적인 입장을 밝혔다. “어느 학교나 장단점이 있지. 자기가 하고 싶다고 하면 해보는 거지”라고 나에게 말하며, 은호의 의사와 결정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다.
은호는 자기가 그 학교에 적합한 사람인지 알아보고 입학시험을 통과할 실력을 갖추기 위해 열심히 준비했다. 1학년 때는 입학 설명회에 가서 교실과 기숙사를 둘러보고 학교가 찾는 인재상을 들었다. 2학년 때는 모집 요강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궁금하다며 참석했다. 3학년 때는 입학 담당 부장 선생님과 1:1 상담을 했다. 은호의 중학교 자료를 살펴본 선생님은 지금처럼 성실히 생활한 후 다음 해에 신입생으로 만나면 좋겠다고 격려해 주었다.
영어와 수학 학원에 다니며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던 아이는 입학 상담을 받고 추가로 국어 학원에 등록하길 원했다. 은호가 원하는 고등학교는 컴퓨터 전공과목을 중점으로 배우는 곳이지만 선발 기준은 국영수 성적 비중이 높으니, 미래에 원하는 공부를 하려면 일단 중학교 내신을 잘 받아야 하는 거였다. 3학년 1학기까지 소프트웨어 영재반과 동아리실을 드나들며 프로젝트에 매진하던 은호는 고등학교 시험을 준비하며 코딩에 손댈 시간이 없어졌다. 프로그래밍에 흥미를 느껴 제대로 공부하려고 하니 오히려 관심을 끊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대학입시 위주의 고등학교 생활을 피하려 했는데 먼저 고교입시를 준비해야 했다.
은호가 진지하게 고등학교를 생각하자, 나도 그곳에서 지낼 아이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보았다. 가장 큰 고민은 기숙사 입소가 필수라 부모와 떨어져 지낸다는 점이었다. 은호는 의젓하고 독립적인 사람이지만 2년 뒤에 혼자 살 만큼 성숙한 건지는 잘 감이 오지 않았다. 집에서 자연스럽게 배우고 익힌 습관이 충분히 몸에 가로새겨 졌는지도 고민이 되었다. 어린 나이에 기숙사에 살면 부모가 챙겨줄 수 없으니 책임감이 강해질 거라는 생각과 안 그래도 바쁜 고등학생이 살림하느라 시간에 쫓길 거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당장 답을 내릴 필요는 없으니, 조금 더 지켜봐야지 하다가 어느덧 중학교 3학년 마지막 학기를 맞이했다. 은호가 고등학교를 상상하며 꿈에 부풀어 있을 때마다 ‘10대의 기숙사 생활은 특별한 경험이 될 수 있다’라며 스스로 설득했다. 아직은 집에서 통학할 나이의 자녀가 기숙사에서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나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었다. 다행히 학교가 우리 집에서 가까이 있으니 무슨 일이 있으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주말에 가족과 밀도 있는 시간을 보내면 된다고 세뇌하며 은호의 도전을 받아들였다.
여러 번 학교를 찾아간 적극성 덕분인지 은호는 합격의 기쁨을 맛보았다. 나는 아들에게 1학년 때부터 목표를 세우고 시험 준비를 한 것도 멋지지만, 좋아하는 거 있다고, 그걸 꼭 해보고 싶다고 손을 번쩍 든 점이 정말 훌륭하다고 말했다. 아이의 성장을 기뻐하며 나도 도전을 시작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