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호가 집을 떠난 후, “아들 밥 안 해줘서 좋아?”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 말에 어떻게 대꾸해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이 질문이 묘하게 마음을 건드린 이유는 ‘엄마가 자녀를 위해 하는 일 중에 밥 하기가 그렇게 중요한가?’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우리 집 식사를 챙기고 있지만, 가족들에게 집밥을 먹이겠다는 강한 욕구가 있거나, 나만의 요리 솜씨로 감탄을 자아내는 손맛의 소유자는 아니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음식 맛이나 특별한 메뉴보다 식사 시간에 오가는 대화와 소통이다. 가족이 함께하는 한 끼는 아이들이 상차림을 배우거나 어른과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법을 알려주는 기회이자, 서로의 소식을 나누는 시간이다. 그런 점에서 자녀의 식사를 준비하지 않아서 생기는 편리함보다, 음식을 매개체로 이루어졌던 교류의 시간이 사라지는 것이 더 아쉽다.
아들이 대부분의 끼니를 학교에서 해결하고, 친구들과 외식하는 일이 늘어나자, 가족이 아닌 다른 이들과의 교제가 늘었다. 이와 더불어 은호의 새로운 모습이 드러났다. 아들은 남이 해준 요리를 평가하기 시작했다. “이번 주에 학교에서 먹은 음식이 정말 맛있었어.”라며 급식실 선생님을 칭찬했다. 또 다른 때에는 먹고 싶은 메뉴가 있다며 가족 외식을 건의했는데, 그 이유도 급식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번 점심으로 국밥이 나왔는데, 맛이 좀 아쉬웠어. 주말에는 진짜 잘하는 식당에 가서 먹고 싶더라고.” 내가 만든 음식을 먹을 때는 ‘맛있다, 잘 먹었다’ 등 평범한 후기가 많았는데, 전문가가 만든 음식을 일상적으로 접하더니 다채로운 의견을 내놓았다. 친구들과 밥을 먹으며 메뉴 품평회를 자주 하나보다 싶었다.
음식에 관한 관심도 부쩍 늘었다. 한 번은 내 레퍼토리에 없는 메뉴인 동파육을 처음으로 만들었는데, 맛을 본 아들이 이렇게 말했다.
“우와, 동파육이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건데. 엄마가 한 것도 정말 맛있다.”
나는 은호가 어디서 이 요리를 접하고 좋아하게 된 것인지 궁금했다. 아들은 당연하다는 듯 “급식으로 가끔 나오거든”이라고 했다. 고급 중화요리를 학교 식단표에 넣은 영양사 선생님에게 먼저 놀랐고, 동파육 이름을 기억하는 고등학생에 또 한 번 놀랐다.
“근데, 네가 그 음식을 처음 봤을 때, 바로 동파육인 걸 알았어?”
“그거야 식단표에 있으니까. 매일 식단표를 보고, 모르는 음식이 있으면 검색해 봐. 어떻게 생긴 음식인지 알고 나서 급식실에 가는 거지. 학교 음식이 맛은 좋은데 비주얼이 별로거든. ‘이 음식이 원래는 사진 속의 그 요리랑 같은 거다’라고 생각하고 먹으면 더 맛있게 느껴져.”
나는 급식이 보편화되기 이전 세대로, 도시락을 싸서 학교에 다닌 까닭에 식단표를 꼼꼼히 보고 모르는 음식을 찾아보며, 급식을 맛있게 먹는 법을 터득한 아들이 신통하면서도 낯설었다.
학교 밖에서 친구들과 저녁을 사 먹는 일도 잦아졌다. 전공 동아리, 운동 동아리, 밴드부 행사 후에 열리는 회식에서 은호의 미각은 또 한 번 발전했다. 친구로부터 자장면에 고춧가루를 뿌려 느끼함을 잡는 비법을 배운 후 나에게 이 방식을 권하는가 하면, 가족과 함께 간 중식당에 고춧가루가 없자, 호출 벨을 누르고 “사장님, 고춧가루 좀 주세요!”하고 말하기도 했다. 어느새 이만큼 말투와 취향이 어른스러워졌나 싶어 마음이 이상했다.
한편 ‘아재’ 입맛으로 변해가는 아들에게 익숙해졌다 싶을 때면 어김없이 ‘아직 영락없는 애들이구나’ 싶은 일이 생긴다. 은호네 학교는 토요일 저녁 급식이 없어서 각자 식사를 해결한다. 나는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자고 연락하는데, 은호는 시간 부족을 이유로 두 번에 한 번 정도 수락한다. 가족과 식사하지 않는 날에는 친구들과 학교에서 배달 음식을 주문한다. 쿠팡이츠에서 한결같이 맘스터치를 시키길래, 어느 날 계속 같은 메뉴를 먹으면 지루하지 않냐고 물어보았다.
“은호야 똑같은 걸 또 먹어도 매번 맛있어?”
“그럼, 맘스터치 싸이버거가 내 최애 메뉴거든. 친구들도 다 좋아해. 사실 이건 우리 학교 전통 같은 거야. 선배들이 학교에 올 때도 사 오셔.”
내가 그 이유를 묻자, 은호가 천천히 설명했다. “이름부터 ‘싸이버-거’잖아. 우리가 사이버 공간에서 일하는 개발자들이라 그런지, 업계 사람들 사이에서 버거는 ‘싸이버거’를 먹어줘야 한다는 게 있거든. 우리끼리 하는 조크 같은 거지.”
이런 전통을 물려준 선배들이나 지켜가는 후배들이나 참 귀엽게 보였다.
얼마 전 은호에게 아직도 풀리지 않은 궁금증을 물어보았다. 은호는 학교에선 아침을 먹는다고 했지만, 집에서는 아침 먹을 시간에 자는 게 낫다고 하였다. 도무지 일관성이 없는 데다 학교 영양사 선생님을 통해 학생들의 조식 이용 비율이 저조하다고 들은 기억이 있어서 실상을 알기가 어려웠다.
“은호야 그래서 학교에서 아침 먹기는 먹었어?”
“응, 먹었지.”
“그런데 나는 네가 아침을 안 먹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
“물론, 먹은 적도 있고 안 먹은 적도 있지. 먹고 싶은 게 나오면 먹고, 아니면 말고 그랬어.”
좋아하는 메뉴가 나오면 잠을 떨치고라도 일어나서 식당으로 향한다니, 식단표의 힘이 막강했다.
“핫도그, 덮밥 그런 거. 그리고 모구모구*가 나오면 꼭 먹었어. 아침에 아예 안 가면 혼나니까, 적당히 가다가 안 가다가 했어.”
조식으로 종종 등장하는 ‘치킨마요덮밥’, ‘스팸마요덮밥’, ‘새우버거’에는 깊은 뜻이 숨어있었다. 균형 잡힌 식사와 학생들의 참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아침 메뉴답지 않더라도 학생들이 좋아하는 메뉴를 선정하는 영양사 선생님의 고충이 느껴졌다.
주중이면 언제나 아침 메뉴와 잠 사이에 부등호를 표시하며 급식실에 갈지 말지를 정하던 아들은 이제 기숙사 생활을 끝내고 급식을 졸업했다. 아이 입맛과 아재 입맛을 오락가락하는 은호는 가족의 입맛이라는 공통분모가 작아진 대신, 자신만의 미각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모구모구: 귀여운 과일 그림이 그려진 화려한 색의 코코넛 음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