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자재 검수 봉사를 하는 날이라 은호 학교에 갔다. 일을 마쳤을 즈음 아침을 먹고 급식실에서 나오는 아들을 만났다. 처음 보는 옷을 입고 있었다. 이번 주에 교복 업체에서 보내준 하복이었다. 계절이 바뀌는 동안 내가 아들한테 무심했구나 싶었다.
아이의 새 옷을 보니 아들의 첫 빨래가 떠올랐다. 입학을 앞두고 기숙사 짐을 쌀 때의 일이다. 준비물 목록에 세탁 세제가 있었다. 아들은 주말에 빨랫감을 가져올 건데 굳이 들고 가냐며 가져가지 않으려고 했다. 나는 혹시라도 세탁기를 쓸 수도 있으니 용량 적은 걸로 챙기자고 했다.
“주중에 빨래할 시간이 없을 것 같은데. 그냥 여벌 옷을 충분히 가져가면 안 되나?” 은호가 물었다.
“음…. 자다가 코피가 나서 베갯잇을 빨거나, 땀난 옷을 금요일까지 둘 수 없다던가 할 수도 있잖아.”
나는 아들이 직접 세탁해야 할 상황을 급하게 떠올리며, 일단 샀다가 남으면 방학식 때 도로 가져오라고 했다.
주말마다 빨랫감을 실어 나르던 은호는 몇 주가 지나자 캐리어에 짐을 넣었다 뺐다 하는 게 더 귀찮다며 기숙사에서 세탁하겠다고 했다. 스스로 하는 태도를 환영하는 나지만, 이번엔 만류했다. 다리미 때문이었다. “와이셔츠 다리려면 어차피 옷을 가져와야 할 건데.” 하자 아들은 탁탁 털어 옷걸이에 걸면 된다며 아무도 교복을 다려 입지 않는다고 말했다. 엄마의 빨래 서비스를 이용하겠다던 사람이 계획을 바꾸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학교에서 돌아오며 마음이 복잡해졌다. 아들 일을 너무 모르고 지냈다는 미안함이 컸고, 단추 달기, 꿰매기 등 세탁 이외의 옷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기본적인 수선은 아들이 할 수 있다. 단, 방에는 바느질 도구가 없고, 그렇다고 고칠 옷을 집으로 가져온 적도 없다. 옷을 점잖게 입어서 별일 없으리라 생각하기엔 은호를 너무 잘 알았다. 아들이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는 체육복을 세 번 구매했다. 해진 부분에 천을 덧대 입다가 이마저도 찢어질 지경이 되면 다시 샀다. 본인이 먼저, 새 바지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일은 없었다. “야, 너 체육복 엉덩이에 구멍 나기 직전인데, 계속 입을 거야?” 하면 “네. 그냥 두세요.” 하다가 몇 번 더 이야기하면 마지못해 “알겠어. 하나 사줘.”라고 했다. 매번 빨래를 개다 발견한 거다. 고교생이 되었다고 달라질 것 같지 않지만 새로 맞춘 교복이니 당분간 수선할 일은 없을 거로 생각하기로 했다.
빨랫감이 적어지자, 일이 줄었다. 동시에 가족의 빨래를 담당하며 단편적으로 생활상을 파악하던 기회도 사라진다. 종종 세탁물에서 그냥 두면 더 커질 수 있는 사건의 실마리를 발견한 나로서는 빨래가 많은 정보를 담고 있음을 안다.
몇 해 전 일이다. 세탁기에서 탈수가 끝난 옷을 빼는데 작은 플라스틱 물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라이터였다. 남편과 나는 비흡연자이므로 집에 있는 10대 두 명을 소환했다. 둘 다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뗐다. 라이터를 꼭 숨겨야 할 처지였으면 세탁기에 돌렸겠나 싶어서 더는 문제 삼지 않았는데, 후에 제보자의 언질로 소유주가 밝혀졌다. 숨기려고 작정한 사람의 비밀을 알기 어렵겠지만, 매일 만나는 가족 구성원의 흡연 사실을 몰랐다는 게 몹시 마음 아팠다.
빨래를 개다가 콘돔을 발견한 적도 있다. 조끼 안쪽 주머니에서 바스락 소리가 나길래 손을 넣었더니 개봉하지 않은 콘돔이 있었다. 당시 우리 집에는 체육 꿈나무가 살았다. 운동선수로 기량을 갈고닦는 소중한 기회와 체육계의 열악한 처우를 동시에 경험하던 때였다. 전국을 돌며 대회에 참가하는 청소년을 모텔에 재우는 일이 흔한 가운데 한 사람이 숙소 비치품을 동료의 짐에 몰래 끼워 넣었다. 정식으로 지도자에게 말하여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았지만, 대처 방법을 고민하느라 속을 태웠다. 조끼 주인과 어려운 대화를 나누는 일부터, 부적절한 환경에서 훈련받는 학생 선수의 미래를 고민하는 일까지, 발단은 빨래에서 나온 작은 소지품이었다.
세탁까지 갈 것도 없이, 벗어놓은 빨래 더미에서 단서를 발견하기도 한다. 하루는 세탁 바구니에서 송금 정보가 적힌 운수회사 명함을 발견했다. 시내버스가 현금 대신 교통카드로만 요금을 받기 시작한 때라, 카드가 없는 사람은 스마트폰으로 버스비를 송금하는 경우가 있었다.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버스를 타는 사람이 떠올랐다. 아들에게 결제 방식이 바뀌었으니 교통카드를 꼭 챙기라고 하자,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며 같이 하교하는 친구가 별 뜻 없이 자신에게 준 것이라고 항변했다. 무임승차가 잘못인 줄 알만한 나이니까 앞으로도 돈 내길 당부하고 넘어갔다.
빨래에서 당황스러운 물건을 발견할 때마다 ‘사춘기라 이러지? 애들이 스트레스가 많아서 그런가? 내 훈육이 잘못되었나?’ 사이를 오가느라 힘들었다. 아이들이 성장한 지금은 그때 일을 통과의례라고 생각할 만큼 여유가 생겼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는 아들은 어느새 선호하는 세제가 있고 세탁기와 손빨래를 구분하는 전문가가 되었다. 빨래 자립을 한 은호는 제때 빨지 않으면 냄새가 나고 입을 옷이 없다는 점을 일찍 깨달았다. 규칙적으로 세탁하는 습관은 타인이 개 놓은 의복을 갖다 입는 것보다 뛰어난 생존능력이다. 은호가 갓 기숙사에 들어갔을 때는 내가 도움을 주지 못해서 무언가 놓치고 있나 싶었지만, 이제는 아들이 무심결에 흘려 놓은 삶의 파편을 맞춰보지 않아도 되어 홀가분하다. 옷이든 인생에 관해서든 도움이 필요하면 나한테 먼저 다가오겠지 하고 기다린다.
이제 다리미 사용법만 알면 의복 관리의 기본을 익히는 건데, 이는 유튜브 선생님에게 맡기려고 한다. 옷맵시에 관심이 생긴 아들이 다리미 사용법을 물어 오면 “영상 찾아봐.”하며 내가 써본 다리미 중에 추천할 만한 제품을 알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