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기숙사에 살게 되었을 때, 나보다 먼저 이 과정을 겪은 친구가 조언해 주었다.
“이제 물리적인 도움보다 물질적인 도움이 필요할 때네요. 처음에는 온라인으로 살 게 많을 거예요. 쿠팡 와우 멤버십 가입을 추천할게요. 엄마 카드 걸어 놓고 다 같이 쓰게 되더라고요.”
아이들이 초등학생일 때, 필요한 걸 말하면 내가 구매했다. 10대 중반이 되어 취향이 생기자, 특정 제품의 링크를 보내주며 사줄 수 있는지 물어왔다. 나는 아이와 컴퓨터에 나란히 앉아서 가격은 적당한지, 다른 제품보다 더 나은지 확인한 후 주문했다. 색상, 크기, 개수 등 이용자가 결정할 점이 있어서 함께 한 이유도 있지만, 그 물건을 꼭 사야 하는 이유를 부모에게 설명하도록 함으로써 더 고민하도록 유도한 것도 있다.
그간 온라인 쇼핑을 같이하며 은호의 판단력을 신뢰하게 되었고, 앞으로는 자주 얼굴 보기 어려울 테니 혼자 구매 결정을 내려도 좋을 것 같았다. 기숙사에 가면 내 쿠팡 계정으로 들어가서 필요한 걸 직접 구매하라고 했다. “얼마까지 사도 돼?”라고 묻길래, 3만 원 넘으면 상의하라고 했다.
어느 일요일 저녁, 기숙사로 돌아갈 준비를 마친 은호가 물었다. “집에 샤프 있어?” 필기구야 많지만, 아들이 원하는 것이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서랍을 뒤지던 은호는 찾는 게 없다며 돌아섰다. 일찍 나가서 문구점에 들리자고 했더니 그냥 학교에 내려 달라고 했다.
며칠 후, 쿠팡에 접속했는데 최근 구매 목록에 샤프가 있었다. 기숙사에 가자마자 주문하여 화요일에 배송받았다고 나와 있었다. 상점에 갈 필요가 없다는 말을 나는 ‘대체품이 있나 보네’라고 넘겨짚은 것이고, 아들은 ‘온라인으로 주문해야지’ 했던 거다. 2,150원짜리 한 자루에 배송비는 2,500원이었다. 늘 쓰는 필기구면 여러 개를 사서 무료 배송을 하던지, 문구점에 내려준다고 할 때 갈 것이지, 이런 낭비가 있나 싶었다. 하지만 은호를 탓할 수만은 없다. 나는 직접 구매를 하라고 제안하며 상한선만 주었을 뿐, 어떤 때 온라인 구매가 적당한지, 어떤 물건을 사는 게 좋은지, 한 달에 얼마까지 사용할 수 있는지 등 합리적인 의사 결정 방법이나 전반적인 구매 지침을 일러주지는 않았다.
구매 내용을 본 김에 그간 기숙사로 배달한 물건을 훑어봤다. IT 관련 용품과 미용용품이 대부분이었다. 개발자를 꿈꾸는 학생답게 노트북 관련 구매가 눈에 띄었다. 충전 케이블, 노트북 파우치, 책이 목록에 올라와 있고, 오래 앉아 있는 자세를 보완하려고 쓰는 제품도 여러 개다. 통증을 줄여주는 마우스 손목 받침대, 노트북 높이를 올려 목을 편안하게 해주는 거치대, 등을 바르게 펴도록 도와주는 교정 밴드까지. 불편을 해소하려고 보조 도구를 검색한 아들을 떠올리니 마음이 쓰이면서도, 웬만한 통증을 다 잡아준다는 29,500원짜리 물건이 정말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의문이었다. 비싸더라도 효과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제품이 더 나을 텐데 생각하면서 스스로 경험하고 깨닫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미용용품도 가짓수가 꽤 많았다. 아들은 쿠팡에서 토너, 클렌징 오일, 바디워시, 샴푸, 가글 등을 샀다. 처음엔 펌프 용기에 든 제품을 썼는데 기숙사와 집을 오가다 내용물이 샌 적이 있다며 차차 뚜껑 있는 제품으로 바꾸었다. 은호의 고충을 알게 된 나는 학교와 집에 한 세트씩 두면 어떨지 물어보았다.
“그건 너무 아깝잖아. 주로 있는 곳이 학교니까 거기에 두고 집에 올 때 챙겨 오는 게 낫지. 이게 다 내가 애매하게 집이 두 개라서 생기는 일이야. 집에 가끔 오면 아무거나 쓰겠는데, 그러기엔 너무 자주 오는 거지.”
‘음, 나름 합리적인 소비 기준이 있군’ 하며 듣던 나는 아들이 기숙사도 자신의 집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2주에 한 번 우리 집에 오는 게 ‘자주’라고 생각하는지 처음 알게 되었다. ‘아무렴, 더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곳을 주 거주지로 여기겠지’ 하면서도 한 달에 두 번, 그것도 주말에만 가족을 보는 게 충분하지 않다는 내 입장과 아들의 관점은 상당히 달라 놀랐다. 서운한 마음 때문인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은호의 물건을 사는 일이 현저히 줄었지만 대리 구매하여 호평받은 게 하나 있다. 다한증 완화 양말이다. 어느 날 인터넷에 발냄새를 잡아주는 양말 광고가 뜨길래, 웬일이지 하고 지나갔다. 몇 번 더 광고를 보니 발에 땀이 많아 고민인 아들이 떠올랐다. 아들은 새 양말이 정말 좋다며 어떻게 그런 제품을 찾았냐고 물었다.
“광고를 봤지. 희한한 게, 난 그런 제품을 찾아본 적이 없는데, 왜 나한테 그런 광고를 했나 모르겠어.”
“알겠다! 나 때문인가 봐. 내가 온라인에서 발냄새 제거 이런 키워드를 쳐봤거든. 우리가 같은 계정을 쓰니까 엄마한테 그게 보였나 봐.”
스스로 구매 결정을 내리는 아들이 나에게 말하지 않은 사실을 AI가 전해주었다는 게 디지털 시대의 양육인가 싶어 어이없으면서도 고마웠다.
은호에게 구매 권한을 넘기고 얼마 지나서 중간 점검 차 아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이 방식이 잘 맞는 것 같다면서도 은호는 뜻밖의 말을 했다.
“엄마, 나 실은 쿠팡 계정 하나 더 있어. 필요한 거는 엄마 계정에서 사고, 없어도 되지만 그냥 좀 사고 싶은 거는 내 돈으로 사. 핸드폰 케이스 같은 거 있잖아.”
그러니까 내가 본 구매 내용은 외부 공개용이었다. 아들은 원츠(wants)는 용돈으로 하고, 니즈(needs)는 부모님의 지원을 받는다는 기준을 세웠다. ‘아들의 소비 패턴에 큰 불만이 없었던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구나’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가족 공동 계정 외에 딴 주머니를 만든 결정이 현명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은호가 이 둘을 구분하는 훈련을 한 것만으로도 구매를 자율에 맡긴 의미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