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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도 선생님도 우리 학교에 관심이 없어

by 반고

은호가 마이스터고등학교에 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주변인의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학원 선생님, 친구, 가족 중에는 다시 생각해 보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았고, 아이가 입학한 후에도 대학 대신 산업계 수요에 맞추어 공부하는 것을 회의적으로 보는 시선이 적지 않았다.


중학생 은호가 다니던 학원에서는 희망하는 고등학교를 조사하는 기간이 있었다. 원장님은 은호가 제출한 종이를 보고 아이를 따로 불러서, “왜 거기에 가느냐, 어떤 이유로 그곳을 선택했느냐”라고 물었다. 은호를 설득하지 못하자, 답답했던지 나에게 전화했다.

“어머니, 은호가 마이스터고를 간다는데, 그건 잘못된 선택이라고 봐요. 자녀가 가겠다고 해도 어머니께서 말리셔야 합니다. 아이 성적이 아깝거든요. 제가 다른 학교를 추천해 드릴게요. 어머님이 입시 제도를 잘 몰라서 그러신 거니까, 한번 학원에 오셔서 제대로 상담받으시길 바랍니다.”

입시 전문가와 자녀의 대학 입학을 목표로 하지 않는 학부모의 대화는 짧게 끝났다.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에 서운함도 있었지만, 수강생의 진학 결과로 곧 학원의 성과가 되는 업계의 특성이라 생각하고 넘겼다.

공립학교 선생님인 나의 지인은 은호 이야기를 듣고 솔직한 의견을 내놓았다. “한국에서 학벌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사람이, 자녀가 나중에 직장에서 고졸이라고 괄시를 받게 만드냐”라고 했다. 전문대를 나오고 개발자로 근무하는 조카 이야기를 꺼내며, “4년제 대학 나온 사람들한테 밀려 다시 학교를 가야 할지 고민 중이다”라고 했다. 이어서 예상치 못한 말을 덧붙였다.

“저도 교사지만 선생님들이 진학 지도할 때 가정 형편을 고려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는, 돈을 빨리 벌기 위해 서두르는 아이들이 오는 곳이에요. 집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지요. 아무래도 친구들이 그러면 옆에 있는 사람도 빨리 성숙하게 되는데 굳이 일찍부터 고생해서 좋을 게 뭐 있겠어요?”

그 자리에서는 반박하지 않고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은호가 선택한 고등학교를 잘 알고 있는 사람도 그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이나 지원자의 적성보다는 대학입시를 목표로 하지 않는 학교라는 점을 가장 먼저 언급했다. 가정 형편이라는 단어도 마음에 걸렸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친구와 어울리면 내 아이 마음에도 그늘이 진다는 뜻인가? 일찍 철드는 게 나쁜 것인가? 부모들은 자녀가 꽃길만 걷길 바란다고 하지만 이 논리에 동의하기 어려웠다. 사회가 다양한 배경을 가진 구성원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깨닫는 과정에서, 나는 은호가 친구들의 고향, 성별, 가족 환경이 다르듯이, 경제적 수준도 다를 수 있음을 이해하게 되길 바랐다.

친척들에게는 은호가 고등학교 시험에 합격한 후에 소식을 전했다. 시댁 어른 중 한 사람이 인터넷에서 학교를 찾아본 후 이렇게 말했다.

“너희 부부는 참 이해가 안 간다. 둘 다 강남에서 자라서 좋은 대학 나오고, 유학까지 했으면서, 왜 자식은 험지에 몰아넣는 거냐....”

이런 말을 들을까 봐 내가 준비 과정을 알리지 않은 거였구나 싶었다. 내 양육 방식이 자녀를 힘든 길로 몰았다는 말이 상처가 되었지만, 그것보다 은호가 상처받지 않는 게 더 중요했다. 은호의 선택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는 사실을 아이가 너무 일찍 깨닫지 않길 바랐기에, 점차 은호의 학교에 대해 언급하지 않게 되었다.


아무리 내가 방패가 되려고 해도, 은호 스스로 냉랭한 반응을 경험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 한 번은 재학생들이 학교 홍보를 위해서 자신이 졸업한 중학교에 다녀오는 행사가 있었다. 집에 돌아온 아들은 풀이 죽은 표정을 지었다.

“엄마, 다음번엔 가지 않으려고. 학교 소개 책자를 나누어주고 설명회도 했는데 애들이 관심이 없어. 선생님들도 별 관심이 없고. 우리 학교를 와보면 진짜 좋은 걸 알 텐데. 좀 안타까워.”

“그래? 은호 같은 에이스 학생이 간 학교인데도 관심이 없어? 어떤 선생님하고 이야기했어?”

“3학년 담임 선생님도 뵙고, 진로 선생님도 뵈었는데, ‘어느 학교?’ 하면서 이름을 듣더니, 그냥 팸플릿을 놓고 가라고만 하셨어.”

모교에서 겪은 싸늘한 반응에 아들은 섭섭함을 느꼈을 것이다. 모두가 꼭 해야 하는 홍보활동이 아니었는데도,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알리려고 했다가 실망한 은호가 안쓰러웠다.

은호가 자신이 선택한 고등학교를 후회하거나, 대학을 바로 가지 않는다는 점에 불안함을 느낀 적이 있었을까? 내가 관찰한 바로는 아들의 고민은 일반 고등학교에 다니는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하는 게 아니라, 소프트웨어 전공자로서 본인이 역량을 얼마나 키울 수 있는지에 있었다. 프롬프트 하나만 넣으면 AI가 기초 코딩까지 짜주는 시대에, 주니어 개발자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영어처럼 코딩이 세계 공통어가 된 세상에서 나만의 강점이 무엇인지 어떻게 어필할 수 있을까? 타인의 시선과 사회의 기준이 은호를 실망하게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스스로 이런 질문을 하고,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려고 애쓰는 자녀를 보며, 학교 성적이나 프로그래밍 용어보다 더 중요한 ‘인생 공부’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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