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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살이 Aug 27. 2024

30대에 드디어 술맛을 알게 되었다

처음 술맛을 알게 된 순간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회식, 모임 등  술자리를 가지게 되면서 항상 듣게 되는 질문이 있었다.


  술 잘 마셔요? ,  주량이 어떻게 되세요?

나는 그런 류의 질문을 받을 때마다 참 난감했다. 그 이유는 내가 나의 주량을 잘 몰랐기 때문이었다. 종 종 만나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들도 술을 잘 즐기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하고 만날 때면 항상 밥을 먹고 2차로 카페에 갔다.


20대에 나는 술집에 가본 적이 없다. 그래서 항상 궁금했다. '밤길거리 환화게 불이 켜진 시끌벅적한 가게 안에서 사람들은 술을 마시며 무슨 얘기를 할까? ''분위기는 어떠할까?' 아버지와 동생이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모습을 볼 때마다 친구들의 술자리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내심 부러웠다. 술집은 나에게 미지의 세계였다.


20대에 술집은 가보지 못했지만 술은 몇 번 마셔본 적이 있다.

그때마다 항상 든 생각이 있었다.


이 걸 도대체 무슨 맛으로 먹는 거지?

소주는 너무 쓰고 매워서 한입도 마시기 힘들었고 맥주는 마실 수는 있었지만 맛이 너무 없었다. 사실 내가 술을 마시려고 한 가장 큰 이유는 술 취한 느낌을 알고 싶어서였다. 술에 취하면 기분이 좋고 텐션이 높아진다는데 나는 그 느낌이 너무 궁금했다. 하지만 술에 취하려면 술을 많이 마셔야 하는데 그걸 억지로 참고 마시기에 나에게 술은 너무 맛이 없었다. 그렇게 종종 회식이나 모임에서 술을 먹게 되는 상황이 있었지만 술이 맛있게 느껴졌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술 취한 느낌이 궁금해서 술을 몇 잔 마셨지만 그 이후로는 거의 마시지 않았다.


그러다 한 사건을 계기로 나는 술맛을 알게 되는데 그 사건은 바로 처음으로 간 해외여행인 일본여행 중에 일어났다. 동생과 나는 긴자에서 유명하다는 냉우동을 먹으러 갔는데 맛집이라서 그런가 40~50분 정도의 웨이팅 끝에 우리는 가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동생은 들어가자마자 갈증이 난다며 맥주를 마시고 싶다고 했다. 평소 술을 잘 마시지 않는 나지만 일본 맥주맛이 궁금했기 때문에 동생을 따라 맥주 한잔을 시켰다. 그렇게 음식이 나오기 전 나온 생맥주 한잔을 들이켰는데, 처음이 이었다. 맥주가 이렇게 맛있게 느껴졌던 적이 그동안 있었는가. 그렇다고 특별한 맛의 맥주도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맛은 한국 맥주랑 비슷했다. 그래도 그 순간마신 생맥주 한잔은 정말 시원하고 맛있었다.



그 후로 나온 냉우동도 정말 맛있었다. 면은 찰기가 있어 쫄깃했고 찍어먹는 소스도 3가지나 돼서 다양한 맛을 맛보며 즐길 수 있었다. 가게 분위기도 일본의 전통 고급 음식점, 점원들은 기모노를 입고 있었고 맛있는 음식과 시원한 맥주 한 잔, 기분이 점점 좋아졌다. 나는 신이 나서 동생한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동생이 말했다.


"누나 취했네. 말이 많아지고 텐션이 올라갔어"


'내가 취했다고?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 건 취해서였었나?' 그냥 취하면 세상이 어지럽게 보이고 걸을 때 조금 비틀거리는 정도지 텐션이 높아지고 기분이 좋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의 나는 살짝 알딸딸하면서 기분이 너무 좋고 행복했다. 그때 처음 느꼈던 것 같다. ' 아 이래서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 거구나'


맛있게 음식을 먹고 동생과 밤거리를 걸어가면서도 정말 행복했다.  외국어로 된 화려한 간판과 이국적인 거리. 살짝 흔들리는 세상과 기분 좋은 알딸딸함. 처음 술맛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종종 친구, 동료들과의 술자리를 즐길 수 있을 정도까지 발전했다. 더 이상 술자리가 억지로 맛없는 음료를 먹어야 하는 고통의 장소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처음 주량도 알게 되었다. 내 주량은 맥주 한 병에 소주반 병. 주량은 사람마다 기준이 다른데 나는 필름이 끊길 때까지 마실 수 있는 량보단 내가 기분 좋게 정신 차리고 마실 수 있는 량을 내 주량으로 정했다.


하지만 술을 마시는 건 몸에 그다지 좋지 않기 때문에 한 달에 한번 정도만 마시는 걸로 나 자신과 약속했다. 그래서 특별한 회식, 모임을 제외하면 술은 거의 마시지 않는다.


만 31살,

20대 내내 그렇게 궁금하던 술맛도 알게 되고 술 취했을 때의 느낌도 알게 되었다.

아직 못해본 것들이 많다. 하고 싶은 것들도 많다.




괜찮아. 20대에 못해봤으면  30대부터 해보면 되는 거야.
지금까지 아파서 해보지 못했던 것들,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 다 해볼 거야.
예전처럼 남들을 부러워만 하면서 가슴 아파하지 않을 거야.
하루하루 아주 재밌게, 즐겁게, 행복하게 살 거야.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한 점의 후회도 남지 않게 말이야.
난 그런 인생을 살아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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