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과 디즈니 플러스

by 박현신

디즈니 플러스가 런칭하고 한 달 간 디즈니 플러스 멤버십에 가입했다. 예상은 했지만, 디즈니 플러스가 제공하는 많은 콘텐츠를 전부 접하지는 못했고, 그나마 마블 드라마들만 챙겨봤다. 정확하게는 <호크아이>와 <완다비전>을 전부 보았고, <로키>와 <팔콘과 윈터솔져>도 거의 보았으며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 한 멤버십이 종료되는 날까지는 최소한 마블 드라마는 전부 볼 것 같다. 문득 정리되지 않은 생각이지만 간단한 소감 정도를 남기고 싶었다. 글을 쓰다보면 생각이 정리될지도 모르겠지만.


마틴 스콜세지의 인터뷰를 되짚는 것은 새삼스럽고, 또는 유치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마블의 영화들은 ‘테마파크’와 같다는, 그래서 마블의 영화들은 전혀 ‘시네마틱’하지 않다는 그의 발언을 다시 언급하고 싶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반론이 뒤따른다. ‘영화는 반드시 시네마여야 하는가. 스콜세지는 우리에게 영감과 깨달음을 주었던 시네마는 반드시 만들어져야하며, 마블의 영화들은 유감스럽게도 시네마는 아니라고 말할 테다. 그리고 최근 20년 간 할리우드라는 거대한 산업은 예술영화와 블록버스터 영화라는 간극을 더욱 공고히 했고,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어떤 시네마적인 순간을 기대하는 일은 점점 어려운 것이 되었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첫 시네마적 경험이라면 지아 장 커의 <스틸 라이프>롤 볼 때였다. 여관에서 자신이 산샤에 올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털어놓을 때, 그리고 카메라가 갑자기 다가서면 인물이 상처받을 것을 걱정이라도 하는 듯이 서서히 줌인할 때, 나는 처음으로 영화에는 사람을 비추는 카메라라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지아 장 커가 중국 인민을 대하는 태도를 느꼈고, 인생에서 간직해야 할 자세 같은 것을 배웠다. 그것은 분명 스콜세지가 말한 ‘시네마틱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개봉한 모든 마블 영화를 보면서 그러한 순간은 적어도 나에겐 없었다.


여기서 그친다면 적어도 스콜세지가 말한 전제에는, 그러니까 마블 영화는 시네마라고 할 수 없다는 그의 발언에 충분히 동의할 수 있을 테다. 양쪽에 모두 발을 걸치는 비겁한 양비론자가 되겠지만, 그러한 생각에 균열이 생긴 건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 <어벤져스 : 앤드게임>을 보고 나서였다. 두 편의 영화를 보고 나서 지금껏 마블이 보여준 영화 그 자체가 우리의 삶과 결코 무관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블의 영화가 시네마이든 아니든, 블록버스터 산업으로써 마블이 지난 15년간 이룬 성과는 영화의 역사에 기록될만하다. 분명 사람들은 집단적으로 이 시리즈에 열광했고,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 맨, 토르와 블랙 위도우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그렇다면 ‘어벤져스가 뉴욕 시내에 쳐들어온 치타우리를 물리쳤다.’라는 문장이나 ‘타노스가 손가락을 튕겨 지구의 절반을 사라지게 했지만, 영웅들이 힘을 합쳐 그들이 다시 돌아오게 했다.’라는 문장은 단순한 영화의 줄거리를 넘어선 것이며,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공유하는 신화이고, 어떤 의미에선 역사적인 사실이다.


디즈니 플러스에서 <호크아이>를 보면서 마블은 스크린 밖에 있는 우리의 삶과 스크린 안에서 펼쳐지는 마블의 세계관을 더욱 교묘하게 섞어놓고 있다는 인상이 들었다. 영화에서 호크아이는 <어벤져스>에서 히어로들의 활약상을 그린 뮤지컬을 보는데, 뮤지컬에서 호크아이는 뛰어난 영웅들 사이에서 어떤 매력도 발산하지 못하는 그저 그런 존재이다. 호크아이의 ‘무존재감 캐릭터’는 드라마의 주요 유머 코드로 활용되는데, 나에게 인상적이었던 점은 그러한 캐릭터가 어디에서 기인했는지의 문제이다. 적어도 내 기억이 맞다면 지금껏 호크아이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인기가 없다고 놀림받았던 적은 없었고, 호크아이가 조롱받았다면 그건 스크린 밖에 있는, 현실을 살고 있는 네티즌들이었다. 마블은 그렇게 현실의 밈을 스크린 안에 집어넣었고, 점점 스크린 밖과 안의 구분은 크게 의미가 없어지는 것 같다.


<어벤져스 : 앤드 게임>에서 아이언 맨이 죽었을 때, 그리고 영화가 끝나면서 그동안의 영웅들에게 보내는 헌사처럼 마블의 상징과도 같은 쿠키 영상이 나오지 않고 크레딧 영상만이 스크린을 메울 때 사람들이 느끼는 감동을 ‘시네마틱’한 순간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차분한 마음으로 크레딧을 감상하는 우리들은 스크린 속에서 히어로들에게 감사함을 느끼는 시민과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시네마는 ‘진짜인’ 인생을 논하는 법인데, 마블 영화는 ‘가짜’에 불과한 영화 속 사건을 논하고 있을 뿐이므로 시네마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어떤 임계점을 넘어서면 ‘재현의 재현’도 재현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어벤져스 : 앤드 게임>으로 마블은 분명한 하나의 종지부를 찍은 것 같다.


다른 이야기로 글을 마무리하자면 디즈니 플러스의 드라마를 보면서 마블은 세계관을 더욱 확장하면서, 새로운 서사를 쌓아가려고 하는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 그러한 세계관 확장이 크게 매력적이지는 않다. <이터널스>는 데비안츠와 이터널스에 대해 설명하는 자막으로 시작하는데, 돌이켜보면 그러한 정보들은 별로 중요하지는 않은 것 같다. 솔직한 감상은 <이터널스>가 보여준 ‘그럴싸한 거대 담론’을 결국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정해야 해’와 같은, 낡고 낡은 이야기로 돌아오는 눈속임 같았다. <로키>를 끝까지 보지 않았지만, 나는 <로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것이 마블과 디즈니가 추구하는, 산업적으로 잘 구조화된 상품이니까. 지금까지 마블이 성공적으로 재현을 재현했다면, ‘잘 구조화된 상품’이 언제까지 어떠한 감동을 전해줄 수 있을지를 앞으로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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