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고등어를 드시지 않았다. 특유의 그 냄새와 식감이 싫다하셨다. 당신에게는 고등어가 비리고 역하다 하셨다.
생선을 안 좋아하셨던 건 아니다. 오히려 꽤나 좋아하셨다. 생선 애호가셨다. 임연수며 조기며 갈치며 삼치에 꽁치에 도루묵까지. 갈르스름하게 구워진 생선 한 토막은 우리의 단골 반찬이었다. 그도 그럴만 한 게, 아버지는 생선가게 아들이었다.
어쨌든 우리집에선 고등어를 볼 수 없었다. 우리집 밥상차림은 철저하게 아버지의 입맛대로 차려진 까닭이다. 그 시절의 어머니는 고등어를 좋아하셨을까. 아직도 모르는 일이다.
아버지는 고등어를 드시지 않았다. 고등어만 드시지 않았다.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 유전자 염기서열에 새겨진 천명도 그러하지만, 수십 년간 공유하는 생활환경 탓도 크다. 선천적인 운명과 후천적인 환경이 어우러져 필연을 만드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나 역시 고등어를 먹지 않았단 소리다.
내게도 고등어는 비린 생선이었다. 실제로 맛이 비렸던 건 아니다. 애당초 밥상에 오르지도 않는 고등어를 어떻게 맛봤겠는가.
고등어가 비렸던 건,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었다. 그 때의 나에게 아버지는 불가침한 신성스런 존재였고, 아버지의 말씀은 곧 진리였다. 그래서였다. 먹어보지도 않았던 고등어는 내게 비리디 비린 생선이 되었다.
"어머머, 우리 아들 입에도 고등어가 비려?아빠랑 입맛이 똑같네."
고등어가 비리다는 어린 아들을 보며 어머니가 얘기하셨다.
"하여튼 입맛 예민한 건 아빠 붕어빵이네 붕어빵"
큰 칭찬이었다. 아빠를 닮았다니. 저 훌륭한 사람을 내가 조금이라도 닮았다니.
이쯤되면 볼 것도 없었다. 고등어는 비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비려야만 했다. 고등어가 비려야만 내가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 고등어가 비리다는 아버지의 말이 틀릴 리가 없으니까.
"고등어가 비리다고? 이상하네. 제일 안 비린 생선이 고등언데."
언젠가 고등어가 비리지 않다는 얘기를 들었던 적도 있지만 한 귀로조차 듣지 않았다. 고등어는 비리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돌이켜보면 저 말이 씨앗이었다. 어쩌면 고등어가 비리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의심의 씨앗 말이다.
세월이 흘렀다. 맹목적으로 아버지를 따랐던 꼬맹이는 무럭무럭 자랐다. 타지에 직장을 얻어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했고, 좋은 사람을 만나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
꼬맹이가 자란만큼 아버지는 늙었다. 머리털은 희어지고 이마는 넓어졌다. 기미와 검버섯이 덮은 얼굴은 이제 소주 한 병에도 시뻘개지게 되었다. 그 두껍던 허벅지도 말라가는 몸통 따라 얇아져간다.
어린 애가 성장하고 성장한 자가 늙는 것이 자연스럽듯이, 어느덧 아버지는 아들에게 신성한 존재가 아니게 되었다. 마냥 닮고 싶은 사람이 아니게 된 것이다.
"오빠, 고등어 좋아해요?"
아내의 물음에 비려서 좋아하지 않노라는 대답이 선뜻 나오지 않은 건 아마 그 때문이었을 거다.
"아내는 좋아해요?"
나는 대답을 하는 대신 아내의 취향을 되물었다.
"네! 집에서도 엄마가 가끔 해줬었어요. 고등어 넣고 김치찜도 하고."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그래, 대한민국에서 고등어 안 먹는 집이 몇 집이나 있을까.
"안 비려요?"
"네! 비린 건 잘 모르겠는데요?"
그래서 아내에게 말했다.
"그럼 우리 고등어김치찜이나 해먹을까요?"
알 안에 갇혀있던 새가 부리로 껍데기를 쪼기 시작했다.
취직 전후로 몇 년을 혼자 살았었다. 그렇게 자취를 하며 음식도 곧잘 해먹었다. 먹는 걸 워낙 좋아했던 데다가 술도 좋아했던지라 입맛에 맞는 안주를 하나 해놓고 적당한 술을 곁들이는 건 은근히 큰 행복이었다.
하지만 생선 안주는 거의 하지 않았다. 생선가게 손자답게 생선 요리를 그렇게 좋아했는데도 말이다.
이유는 냄새였다. 손질 할 때의 비린내, 생선을 익히면서 나는 비린내, 다 먹은 생선대가리와 가시에서 나는 비린내까지. 그 냄새 때문이었다.
사실 생선냄새는 오랜 트라우마였다. 시장에서 생선장사를 마치고 오신 할머니에게는 항상 생선 비린내가 났고, 나는 그 냄새를 참으며 매일 밤마다 잠에 들어야했기 때문이다.
씻어도 씻어도 할머니의 손에서는 비린내가 났고, 나는 마치 내 몸에서도 그런 냄새가 난다고 느꼈다. 학교에서 애들이 냄새로 놀려댈까봐 항상 불안함에 떨었다.
지워지지 않는 할머니의 생선 비린내처럼 내 무의식 속에 자리잡은 그 불안감은 영영 씻겨 내려가지 않는 트라우마가 된 것이다.
생선은 좋아하지만 생선 비린내는 역겨워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취직 전후로 몇 년을 혼자 살았지만 집에서는 생선을 거의 하지 않았던 이유다.
아내와의 관계에서 요리는 내 몫이다. 매일 저녁을 차려준다. 아내는 매 끼니마다 내 음식이 맛있다고 말해준다. 역시 우리는 아직 신혼인가보다.
식칼을 쥐고 있는 게 나여서 그런지 메뉴 선택권도 보통 내게 있다. 가끔 아내가 메뉴를 특정해줄 때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남편이 알아서 차려낸다. 남편카세다.
고등어김치찜을 하기로 마음먹은 건 그래서였다. 메뉴 선택권이 내게 있어서였다. 메뉴를 고를 때, 꼭 아내의 입맛을 생각하자고 다짐했어서였다.
그 다짐은 결혼을 결심하며 함께 한 다짐이었다. 결혼을 하면 밥은 내가 차릴 텐데, 그러다보면 자칫 내 내가 취향으로만 밥상이 차려질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남편 입맛대로 수십 년을 먹다가 본인의 취향을 잃어버린 어머니의 모습을 아내에게서 되풀이하여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고등어김치찜이었다. 잘 하지도 않는 생선요리.
심지어 고등어. 비리다며 입에도 대지 않았던 그 생선.
마침 묵은지가 있었다. 장모님께서 보내주신 놈이었다. 고등어김치찜을 한다고 몇 달만에 처음 뚜껑을 열어 맛을 봤다.
알싸하게 매운 맛. 특히 끝맛이 아주 맵다. 매운 고춧가루를 쓰신 모양이다. 한 조각만 맛봤을 뿐인데 입이 살짝 얼얼했다. 열린 땀구멍에선 송글송글 방울이 맺혀 떨어졌다. 어렸을 적 우리집에서는 전혀 먹어보지 못한 맛이었다.
그러나 맛있었다. 묵은지 전문점에서 먹어봤던 그 맛이 물씬 났다. 그냥 오래 익힌 김치 맛이 아니었다. 묵은지용 김치를 따로 담구신 건가 하는 생각이 들만큼 내가 먹고 자라온 김치와는 다른 맛이었다. 묵은지 요리하기에 제격이었다.
팔꿈치까지 들어가는 커다란 양수냄비에 사골육수를 한 팩 붇고, 자박자박 잠길 정도로 묵은지 몇 덩이를 넣어주었다. 가시를 다 발라냈다는 순살 고등어 한 손 반을 장모님 묵은지 위에 얹고, 대파 한 대와 양파 반 개, 다진마늘 한 숟갈을 더했다. 시판 된장과 다시다 약간으로 간을 맞췄다. 이제부턴 시간이 해줄 차례다. 적당한 세기로 불을 올리고 느긋하게 기다린다.
"맛있어요! 역시 내 남편은 김치 요리 장인이에요."
맛있다는 아내 말에 나도 한 점 먹어본다.
괜찮다.
잘 익은 김치는 익숙한 그 맛이었다. 한국인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김치 지진 맛. 하얀 쌀밥 위에 한 조각 올려 먹으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맵긴 매웠다. 고춧가루나 청양고추를 더 넣지 않았음에도 매운맛을 다 잡진 못 했다. 하지만 깔끔한 매운맛이었다. 맛있게 매웠다.
"남편은 괜찮아요?원래 고등어 잘 안 먹는다면서요."
문제는 고등어였다. 평생을 비리다 믿어왔던 고등어. 비록 순살 고등어팩을 썼기 때문에 요리 전후로 처리해야하는 비린내 문제는 없었지만, 음식이 내 입에 맞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고등어 한 덩이를 앞접시에 덜고, 젓가락으로 살점을 하나 떼어 조심스레 입에 넣었다. 아직 온기가 가시지 않은 고등어 한 점을 얌전히 씹기 시작했다. 고등어향이 입 안에 가득 퍼졌다.
"...먹을만 하네요?"
인생 첫 고등어 김치찜. 맛있었다. 김치도 그랬지만 고등어도 맛있었다. 비리지 않았다. 되려 고소하고 기름진 맛이었다. 참치나 방어가 생각날만큼 유분이 넘쳤다.
"다행이다. 요리할 때 냄새는 괜찮았어요?"
그러고보니 김치찜을 한창 끓여낼 때에도 냄새 문제는 없었다. 맛있는 냄새가 났을 뿐, 머리 아픈 비린내는 나지 않았다.
"그러게요? 나 이제 고등어 먹어도 되겠는데요?"
그 날 이후, 고등어는 우리 신혼집 밥상에 종종 오르게 되었다.
새로운 식구가 생긴다는 건 새로운 문화를 만나는 일인 것 같다. 적어도 식문화만 봐도 그렇다. 우리집이었으면 절대 하지 않았을 고등어김치찜을 하고, 몇 년을 자취하면서도 단 한 번도 하지 않은 고등어구이를 이제는 드물지 않게 한다. 아니, 드물지 않기는 커녕 이만하면 단골 메뉴라고 해도 될 거다. 아내와 함께 사는 신혼집 냉장고 한켠에는 가시를 뺀 순살 고등어가 늘 비상식량처럼 준비되어 있으니까.
겪어보니 달랐다. 고등어는 감칠맛이 돌았고, 생선을 조리할 때도 악취 문제는 없었다. 팬에 기름을 둘러 구울 때는 냄새가 짙게 풍기긴 하지만, 팬 뚜껑과 환기구를 잘 쓰니 충분히 커버할 만 했다. 이 맛있는 걸 왜 이제서야 하게 됐을까 아쉬울 정도다. 지레 겁 먹고 도망쳤던 과거의 나를 혼내주고 싶다.
"저 이제 고등어 먹어요."
얼마 전, 부모님과의 식사 자리에서 고밍아웃을 했다. 당신네들 아들내미가 고등어를 먹는다는 선언이었다.
"맛있던데요?"
부모님은 어떤 마음이셨을까. 변해버린 자식의 취향이 아쉬우셨을까? 아니면 더 이상 아비의 취향을 좇지 않는 모습이 서글프셨을까? 그것도 아니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공통점 하나가 사라져버려 서글프셨을까?
"그래, 잘했다. 느이 아빠처럼 특이한 사람이나 안 먹지, 누가 고등어를 안 먹니? 엄만 한 사람도 못 봤다."
아니다. 새로운 아들의 입맛을 팔 벌려 환영해주셨다.
"못 먹는 음식은 하나라도 적은 게 좋지."
늙음이 더께 앉은 목소리로 아버지도 어머니 말에 맞장구를 치셨다.
이로써 고등어 포비아의 아들은 명실상부한 고등어 애호가가 되었다. 아버지를 따라 고등어를 못 먹던 남자는 이제 고등어를 스무 마리씩 대량으로 주문하고 있다.
"집에서 먹던 그 맛이에요? 장모님 묵은지로 한 건데."
아내에게 물었다.
"음, 아뇨. 뭔가 좀 달라요. 근데 맛있어요!"
알고 보니 고등어 김치찜은 내게만 새로운 맛은 아니었다. 가끔 먹었던 고등어였는데도, 심지어 집에서 먹던 그 김치였는데도 아내가 느끼는 맛은 그 맛이 아니었다. 갖은 양념이 다르고, 손맛이 다르고, 함께 먹은 사람이 다르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집의 모습도 그러지 않을까 싶다. 이미 각자 수십 년을 살아온 사람 둘이 만나서 새롭게 버무려내는 새 맛의 새 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