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흰다리새우
1.
날이 추워진다. 새우철이다. 이 시기의 새우는 감칠맛이 아주 좋다.
새우는 어떻게 먹어도 맛있다. 쪄도 좋고, 구워도 좋다. 찌개에 넣어 먹어도 좋고, 신선한 놈은 회로 먹어도 좋다.
2.
주말 부부를 하다가, 최근에 집을 합쳤다. 그래서 새우를 주문했다. 둘이서 새우만으로 배 한 번 불러보자며 한 가득 시켰다.
흰다리새우. 한 때 대하로 오해받던, 또는 대하로 속여 팔던 그 놈이다.
3.
월요일 저녁.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니 코끝에 비릿한 내음이 스친다.
엇, 아내, 나 없는 새, 새우 했어요?
신발을 벗기도 전에 아내에게 물어본다.
남편 왔어요? 그게 아니라, 남편이 새우회 먹고 싶다고 해서, 내가 새우 손질해놨어요.
요리라곤 평생 해본적 없는 아내. 짐작컨대 생물 새우를 맨손으로 만져본 것도 처음일 거다. 그런데 저 산더미 같은 새우를 죄다 까놨다. 머리도 다 손질 됐다. 내장도 다 빼놨네. 아니, 아내, 이걸 언제 다 했어요. 또 한참 걸렸겠네, 내 아내.
히히, 솔직히 좀 오래 걸리긴 했어요. 내가 요리를 잘 못하잖아요. 한 1시간? 더 걸렸나?
하, 진짜 아내, 왜 그래요. 내가 해줘야 하는데. 일단 저기 좀 앉아 있어봐요. 내가 얼른 씻고 해줄게요.
4.
올리브유를 둘러 달군 팬에, 껍질도 머리도 속도 없이 살만 남겨진 새우를 얹는다. 간은 딱 소금으로만. 타다끼 하듯, 후다닥 겉만 익혀 접시에 담아 낸다.
정말 맛있다. 구워진 곳에서는 찐득한 새우향이 그득하고, 익지 않은 살에서는 새우회 특유의 찰기 있는 식감이 그대로다. 아내, 진짜 너무 맛있어요. 고마워요.
5.
아니, 아내. 근데 나 속상해요. 나는 아내가 이렇게 대접해줄 사람이 아니에요.
아내, 난 정말 많이 못났고 못 된 사람이에요. 다음부터 이렇게 고생하지 마요. 이러면 나 이제 새우 못 시키잖아요.
6.
무슨 소리에요 남편. 남편이 얼마나 대단하고 좋은 사람인데요. 남편 정말 잘났어요. 진짜 진짜 좋은 사람이에요. 나야말로 미안하고 속상하단 말이에요. 남편이 아내 잘못 만나서 힘들게 일하고 오자마자 집에서 쉬지도 못하고 요리하잖아요.
7.
그 날, 우리의 입은 바빴다. 한 편으로는 새우를 씹어대느라, 그리고 다른 한 편으로는 서로를 향한 애정과 미안함을 말하느라.
8.
분에 넘치게 대접 받은 흰다리새우는
그 어떤 저녁보다 황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