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8. 크리스마스

2025. 12. 25.

by 간장밥

오늘은 크리스마스야.


크리스마스란 아기 예수가 태어난 날이란다. 누군가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고, 누군가는 그저 한 명의 인간이라고 말하지만, 이 날은 모두가 기뻐하고 축하하는 날이야. 아기 예수는 사랑과 행복과 평화의 아이콘이거든.


아기 예수가 태어난 건 2천 년도 더 된 일이야. 까마득한 시간이지. 우리 아파트에 사는 모든 사람의 인생을 다 합쳐도 모자랄 거야. 이렇게 오래 전 일을 기념한다는 건, 사랑과 행복과 평화가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그만큼 간절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러니까 사람들이 진짜로 기리는 건 누군가의 생일 그 자체가 아니라 저마다 마음 속에 품은 소망이라는 거지.


KakaoTalk_20260126_201614086.jpg < 엄마와 함께 간 광화문 광장. 이제 너를 위해 거실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해야 하려나봐. >


오복아, 너에게 아빠가 있듯, 아빠에게도 아빠가 있어. 오복이가 할아버지라고 부를 사람이지. 그런데 할아버지 휴대폰에는 가족들의 이름이 특별하게 저장되어 있단다.


너희 할아버지가 아빠를 처음 보셨을 때, 세상이 고요해지는 듯한 '평화'를 느끼셨대. 갓 태어난 핏덩이의 울음소리가 아득히 메아리치고, 마치 세상에 오직 둘만 있는 거 같았다 하시더라. 그래서 할아버지 전화에 아빠는 PEACE라고 저장되어 있어.


네 고모를 처음 보셨을 때는 '행복'을 느끼셨대. 아빠 때와는 달리 웃음이 터져나오셨대. 그래서 고모는 HAPPINESS라고 저장되어 있어.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지금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래. 그래서 LADY라고 저장해 두셨어. 누군가의 엄마가 아니라, 여전히 나의 여인이라는 뜻으로.


할아버지에게 사랑과 행복과 평화는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당신의 아들, 딸, 그리고 아내였어. 크리스마스마다 온 세상 사람들이 비는 그 소원. 할아버지는 가족에게서 찾으신 거야.


아빠도 그럴 것 같아. 아빠는 이미 엄마를 만나서 더없이 큰 위안을 얻었어. 감히 가격을 매길 수 없는 소중한 존재이지.


이제 아빠는 오복이를 만나. 과연 아빠는 너를 처음 보는 순간, 어떤 감정을 느낄까?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존재가 될까? 아빠가 네게서 받을 건, 엄마에게서 얻는 위안과는 또 다른 감동이겠지?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 지금은 잘 모르겠어.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야. 하여튼 뭔가 거대할 것 같다는.


오늘은 크리스마스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특별하게 기념하는 날이야. 하지만 아빠에겐 오늘이 그다지 특별하게 생각되지 않아. 아빠의 온 신경은 12월 25일이 아니라, 네가 태어날 그 날에만 가 있거든.


오늘 저녁, 식탁 위 케이크를 보면서, 그리고 깜깜한 밤하늘에 뜬 달을 바라보며, 딱 한 가지 소원은 빌 것 같다.


우리 오복이,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만나게 해달라고. 세상 모든 축복을 안고, 무사히 아빠 품에 오게 해 달라고.


곧 만나자. 나의 평화와 행복과 사랑이 될 사람아.

이전 24화D-29. 치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