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2. 26.
오늘은 당근을 했어.
당근이라는 건 누군가의 물건을 다른 사람에게 팔거나 나눠주는 거야. 아빠 물건을 남한테 주기도 하고, 아니면 다른 사람 물건을 아빠가 받아오기도 해.
언제부터 '당근하다'라는 말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진짜 몇 년 안 됐어. 옛날에는 '아나바다'라고 했거든?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쓴다고. 오복이는 역사책에서나 볼 말이겠지만 말이야.
오늘 아빠가 해온 물건은 아기비데야. 너보다 먼저 세상에 나온 동네 형아가 쓰고 물려준 건데, 상태가 아주 좋더라고. 왔다갔다 1시간 정도 걸린 것 같네.
너를 기다리며 아빠는 꽤 여러 번 당근을 했어. 네가 먹을 분유도 받아왔고, 그 분유를 타주는 분유포트도 샀지. 먹으면 응가를 할 테니까 기저귀도 챙겨놨고, 바깥 구경을 좋아할까 싶어서 유모차랑 아기띠도 준비했어.
그중에서도 단연코 잊을 수 없는 건, 바로 아기침대야.
장소는 7km 떨어진 곳이었어. 아빠 걸음으로 만 걸음 정도 거리라서, 걸어 가기에는 좀 멀었지. 그래서 아빠는 지하철을 타고 갔는데, 이야 참, 이게 아빠가 너무 아무것도 모르고 호기로웠던 거였어. 침대가 당황스러울 정도로 크고 무겁더라.
바퀴가 달렸으니 끌고 다니면 되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게 정말 큰 착각이었어.
침대를 가지고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부터가 고난이었어. 조금 전에 아빠가 당근하러 올 때는 손쉽게 걸어왔던 곳이었는데, 세상에, 우리나라 보도블럭에 틈새와 요철이 왜 이렇게 많니. 침대 바퀴는 아빠 손가락 두 마디 정도 크기인데, 보도블럭의 턱은 그것보다 높아서, 툭하면 바퀴가 끼고, 걸리고, 막혀서, 멈춰서기 일쑤였어. 파란 불이 깜빡이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혹시라도 제시간에 다 못 건널까봐 식은땀이 흐르더라.
우여곡절 끝에 지하철을 탔는데, 그게 또 하이라이트였어. 승객들 사이, 지하철 한 켠에 떡하니 자리잡은 아기침대. 누가 봐도 뜬금 없잖아. 사람들의 눈길이 쏟아지는 건 물론이고, 전동차가 멈추고 출발할 때마다 침대가 스르르 굴러가려고 해서 아빠는 침대를 놓을 수가 없었지. 그나마 주말 이른 아침이라 사람이 적었던 게 다행이었어.
가장 큰 시련의 탑은 지하철역에 내려서 집까지 오는 길이었어. 간당간당하던 그 작은 바퀴가, 결국 툭, 망가져버렸거든.
평소라면 10분 남짓 걸리는 거리. 그렇지만 이 날은 족히 30분은 낑낑댔던 것 같아. 두 팔로 아기침대를 끌어안고, 잔걸음으로 뒤뚱뒤뚱 걸을 때마다, 침대 프레임이 아빠 정강이랑 쿵쿵 부딪히고. 몸에 힘이 빠져서 열 걸음 걷고선 쉬고, 다시 다섯 걸음 걷고선 쉬고. 집에 도착했을 땐 팔이 덜덜 떨려서 물도 못 마실 지경이었단다.
그 몰골로 들어온 아빠를 보고 엄마는 화를 냈어. 왜 그렇게 미련하게 고생을 하느냐고. 엄마는 속상해서 토라졌고, 아빠는 덜덜거리는 팔로 엄마에게 애교를 부리며 기분을 풀어줬단다. (사실 엄마가 당근 하자고 한 거지만, 억울해도 어쩔 수 없지.)
그런데 오복아, 한 가지는 너무 확실해. 길거리에서 땀을 흘리고, 두 다리에는 멍이 들고, 지하철에서는 구경거리가 되었지만, 아빠 기분은 좋았다는 거야.
아빠는 감사하더라. 너를 맞이할 준비를 하나씩 해나가고 있는 이 상황이. 길거리를 굴러다니고 생뚱맞게 지하철에 놓여있는 이 침대에서, 오복이 네가 곤히 잠들어있는 모습을 상상하는데, 왜 이렇게 웃음이 나던지.
앞으론 더 그럴 것 같아. 이제 당근만이 아니겠지. 너를 위해 엄마 아빠가 무언가를 많이 하겠지. 누군가는 이걸 부모의 희생이라고 부를지 모르겠지만, 글쎄, 아빠 생각은 좀 달라. 희생이란 건 내 소중한 걸 포기한다는 건데, 아빠는 아빠한테 가장 소중한 오복이의 웃음을 얻고, 그로 인해 더 큰 설렘을 얻는걸. 그러니까 이건 희생이 아냐. 그냥 행복이지.
엄마 아빠는 너와 함께 하는 삶이 참 행복할 거야. 네가 우리 속을 좀 썩여도, 너를 키우느라 아빠 허리가 휘고 엄마 손목이 나가더라도, 네가 우리에게 주는 기쁨은 분명 그 모든 걸 넉넉히 덮고도 남을 거야.
그러니 오복아, 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엄마 아빠한테 미안해하지는 말아. 실수해도 괜찮아. 잘못해도 괜찮아. 때론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하겠지만, 그것도 괜찮아. 원래 사람은 그렇게 자라잖아. 우리는 너를 위해 기꺼이 땀과 눈물을 흘릴 준비가 되어 있고, 그것마저 우리에겐 축복이란다.
너는 엄마 아빠에게 미안해 할 일이 없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