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9. 치킨

2025. 12. 24.

by 간장밥

오늘은 치킨을 샀어.


퇴근길에 엄마랑 전화를 하는데, 엄마가 치킨을 드시고 싶다 하더라고. 그래서 바로 치킨집에 주문을 했지. 양념 반, 후라이드 반.


그런데 또 치킨을 샀어. 아빠가 또 샀다는 게 아니라, 알고보니 엄마도 치킨을 산 거 있지. 엄마는 아빠가 사 올 줄 모르고, 아빠는 엄마가 시킨 줄 모르고, 우리 둘 다 치킨을 산 거야. 그 탓에 졸지에 치킨이 두 마리가 됐단다.


우리나라에는 1인 1닭이라는 말이 있어. 한 사람이 치킨 한 마리는 너끈히 먹을 수 있다는 뜻인데, 엄마랑 아빠는 이 말에 절대 동의를 못해. 엄마 아빠는 1인 1닭은커녕 2인 1닭도 겨우 할까 말까 해. 오늘 저녁도 그랬지. 우리는 치킨 두 마리를 한 상에 차려 놓고, 한 마리도 채 못 먹었단다. 둘 다 '어우 배불러'를 외치면서.


Gemini_Generated_Image_yusy47yusy47yusy.png < 많이는 못 먹지만, 치킨은 엄마가 좋아하는 메뉴야. 퇴원 전날에도 메뉴는 치킨이었단다. >


엄마랑 아빠는 참 많이 다른데, 또 비슷한 구석도 많아. 치킨을 많이 못 먹는 것도 그래. 파스타는 3인분씩 흡입하는 엄마가, 간장기름밥은 세 그릇씩 해치우는 아빠가, 유독 치킨은 반 마리만 먹어도 배가 부르니까 말이야.


꼭 치킨만 그런 게 아니라, 입맛도 비슷해. 푸딩을 안 좋아하고, 연어를 좋아하고, 매운 건 못 먹으면서, 떡볶이 양념을 묻힌 어묵은 좋아하고. 콩국수는 안 먹는데, 잡채는 밥처럼 잔뜩 먹고, 참치김치도 좋아하고 참치김밥도 좋아하지만, 참치회는 또 그냥 그렇고.


사실 아빠는 한동안 굳게 믿었단다. 이 사람이 나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내 입맛을 다 따라한다고 말이야. 정말 너무 의심스러웠어. 내가 뭘 좋아한다 그러면 자기도 다 좋아한다 그러고, 내가 뭘 안 먹는다 그러면 자기도 다 안먹는다 그러고. 거의 앵무새였어. 이걸 어떻게 의심 안 할 수가 있겠어. 엄마를 처음 만나고 거진 1년은 그렇게 착각 속에 살았던 것 같아. (지금도 그 의심을 100% 거둔 건 아니지만.)


사람은 자기와 다른 사람한테 끌린다고도 하고, 또 결국 자신과 닮은 사람에게 끌린다고도 해.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지만, 엄마 아빠를 보면 또 둘 다 맞는 말인 것 같아. 우리는 서로를 닮았으면서도 서로가 참 달라. 그렇지만 서로를 좋아하지. 닮은 건 닮은대로, 다른 건 다른대로. 치킨을 두 마리나 시킬만큼 손발이 어긋나기도 했다가, 그 치킨을 반도 못 먹고 남길 만큼 쿵짝이 잘 맞기도 하잖아.


오복이도 그럴 테야. 오복이와 참 닮아서 좋은 사람도 만나고, 영 달라서 또 좋은 사람도 만나고. 그러다 짝을 만나서 오복이를 반 닮고, 오복이가 좋아하는 사람을 반 닮은, 오복이의 오복이를 만나겠지. 그 때의 오복이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아빠는 벌써부터 궁금해.


오복이가 어떤 사람을 만나도 좋아. 아빠와 엄마는 오복이의 만남을 응원할 거고, 오복이가 좋아하는 사람을 두 팔 벌려 환영해줄 거야. 오복이와 닮았다면 닮은대로, 다르다면 다른대로.


한 가지 아빠가 원하는 게 있다면, 그건 오복이의 행복일 거야. 어떤 사람을 만나도 좋지만, 그 사람과 함께 늙어가면서, 두 눈을 마주치며 미소지을 수 있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 아빠가 엄마를 보며 미소짓듯, 또한 오복이를 보며 미소짓듯.


아빠가 도울 수 있는 게 있다면 힘껏 도울게. 걱정하지 말고, 세상과 사랑하렴. 우리 오복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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