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2. 23.
오늘은 아빠가 술을 마셨어.
드문 일은 아니야. 일주일에 사나흘 정도는 술잔을 기울이거든. 마시는 날이 반, 안 마시는 날이 반쯤 되니 꽤 자주 마시는 편이지.
아빠는 술을 좋아해. 아빠에게는 술이 참 맛있는 음식이야.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친구와 단 둘이 떠났던 바닷가 여행에서 소주라는 걸 처음 마셨어. 허름한 횟집, 비싸고 메마른 회. 현지 사람에게 속아서 바가지를 잔뜩 썼던 저녁이라 여행을 통째로 망칠 수도 있었는데, 세상에, 처음 마신 소주 한 잔이 어찌나 달큰하던지. 바다에서 불어오던 찬 바람이 아직도 기억나. 지금 팬트리 한쪽 벽면이 온통 술병으로 채워진 것은 아마 그 때 기억 때문인지도 모르겠네.
그런데 오복아, 술을 이렇게 좋아하는 아빠지만 우리 오복이는 술을 경계했으면 좋겠어. 빈말으로라도 술이 몸에 좋다는 얘기는 못 하겠거든. 아빠도 마실 땐 좋지만, 다음날이면 몸이 힘들어하는 걸 느껴. 그것을 술 마신 값이라고 생각할 뿐이지.
아빠는 요즘 술을 끊을까 고민하고 있어. 네가 태어나고 자랄 때, 네 앞에서는 술 마시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거든. 혹시 아빠 때문에 술에 대한 경계심이 허물어질까봐, 그래서 네 건강에 해가 될까봐 겁이 나거든.
아빠를 닮지 않았으면 하는 건 음주만이 아니야. 엄마 아빠를 닮았으면 하는 점은 잘 안 보이고, 이건 닮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는 점들만 유독 크게 보여. 그래서 자꾸 안 된다, 하지 말아라 하는 잔소리만 먼저 준비하고 있는 것 같은데, 사실 참 멋쩍어. 옆으로 걷는 어미 게가 새끼 게한테는 똑바로 걸으라고 하는 꼴 같아서.
뻔뻔하고,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으면서도, 원래 부모 마음이 이런가 싶네. 판타지 같은 욕심을 부리게 되는.
술 탓인지 평소보다도 더 횡설수설 했지만, 결국 아빠 마음은 하나야. 네가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으로 자라며, 더 좋은 것만 누리기를 바라는.
가만히 다시 생각해보니 이게 다 무슨 소리인가 싶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우리 아들에게. 그치?
우리 오복이, 그저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만 태어나주렴. 지금 아빠에게 가장 간절한 건 바로 이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