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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프레소는 왜 커피머신을 공짜로 줄까

마케팅 따라잡기 (3)

네스프레소가 머신 페이백 서비스를 실시 중이다. 대략 기기별로 20~30만원 내외의 캡슐머신을 ‘공짜’로 준다. 

물론 아무 조건도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 머신값을 지불하고 사면, 향후 12회 동안 7개 이상의 캡슐을 구입할 경우 제품가의 1/12만큼 ‘페이백(payback)’, 즉 돌려준다. 

평소 네스프레소에 관심 있던 소비자에겐 정말 좋은 기회다. 2년간 꾸준히 네스프레소 캡슐을 하루 한잔만 마셔도 730잔. 어림잡아 12회 매회 7줄이면 총 840개, 기준을 달성하기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이런 ‘공짜 마케팅’은 네스프레소만은 아니다. 10월 17일 현재, 네스프레소와 같은 산하인 돌체구스토도 지니오S 머신이 공짜다. 페이백 조건은 마찬가지.  

대체 왜 캡슐커피 회사들이 이렇게 공짜로 기기를 주는 것일까. 그 대답은 급성장한 시장에서 계속 선두를 지키고 싶기 때문이다. 이른바 ‘증정마케팅’(free marketing)에 의한 점유율 유지가 그 대답이다. 


    

필름 인화하면 필름 주던 런던의 필름가게     

네스프레소만 기기를 무료로 주는 것은 아니다. 같은 네슬레그룹의 돌체구스토 또한 지니오S 100% 할인을 시행 중이다.


2000년 무렵. 필자는 런던에 어학연수 중이었다. 당시엔 디지털카메라는 없고, 필름카메라가 대세.

런던 시내 중심가에는 꽤 큰 전자기기 양판점이 있었다. 이곳의 특징은 브로셔를 보고 주문하면 창고에서 점원이 물건을 꺼내다주는 방식. 팸플릿에 수록된 제품의 종류도 다양하고, 다른 판매점에 비해 싼 편이기에 꽤나 붐비곤 했다.   

이곳의 장점 중 하나가 바로 필름을 인화하면 새로운 필름을 주는 증정마케팅이었다. 다른 사진관에선 당연히 인화료를 받고 사진만 출력해 준다. 이곳은 사진과 함께 다음 사진을 찍을 필름도 준다. 당장의 인화료를 넘어 앞으로 찍을 사진에 대한 인화료까지 가져가려는 ‘증정마케팅’의 좋은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네스프레소는 조금 다르게 볼 수 있다. ‘표준’의 문제가 있기 때문. 잘 알려진 것처럼, 캡슐커피는 회사별로 호환이 제한적이다. 한 기기에서 마실 수 있는 캡슐을 다른 커피머신에선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맞다. 하드웨어 격인 기기를 많이 푸는 자가 결국 머신의 시장점유율은 물론, 자사 캡슐커피의 점유율 또한 높이기 마련이다. 

한발 더 나아가, 자사 기기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캡슐 커피가 등장해도 괜찮다. 대부분의 산업계에서 규격을 선점하는 자는 관련 시장을 선점한다. 자사 제품이 업계 표준이 된다면, 해당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까지 다 팔 수 있는 강력한 시장 리더십을 확보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깐! 주목할 사항이 하나 있다. 사실 시장점유율만 놓고 보면 네스프레소를 포함해 네슬레는 무려 83.2%(2021년 기준, 한국소비자원)에 달한다. 같은 조사에서 동종 업계인 일리(13.8%)와 라바짜(0.2%)의 시장점유율을 훌쩍 뛰어넘는다. 

그렇다면 왜 네스프레소는 굳이 ‘12회 페이백’까지 도입하며 무상 기기 배포에 나섰을까. 이는 다이소까지 뛰어든 캡슐커피 시장의 전쟁 격화가 그 원인이다. 바로 성장하는 시장에서 지속적인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강력한 방패인 셈이다.            



코로나19 시대 2배 성장한 시장, 포스트 코로나엔 다이소까지 뛰어들어     

코로나19 시대 국내 캡슐커피 시장은 급성장했다. 동서식품에서 카누 머신을 출시한 것을 비롯해 (사진 왼쪽), 다이소에서도 관련 캡슐을 출시하기에 이르렀다 (사진 오른쪽).


캡슐커피 시장은 코로나19 시대의 최대 수혜주 중의 하나였다. 코로나로 나들이나 외출을 꺼리던 즈음, 집에서 가능한 서비스들이 각광받기 시작했다. 게임, 배달서비스, OTT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

OTT는 봉준호 감독이 거론한 ‘1인치 장벽’까지 깨가며 한국 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데 가장 큰 원군이 됐다. 당시만 해도 자막 들어간 외국영화는 안 본다던 콧대 높은 미국인들이 기꺼이 한국을 포함한 신세계 콘텐츠에 빠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전 세계 3위 수준인 한국 커피시장 또한 마찬가지다. 날마다 방문하다시피 하던 카페의 매출은 수직낙하하고, 사무실이든 집이든 캡슐커피 시장이 대안으로 급상승했다. 

그 수혜주가 네스프레소다. 집에서 간편하게 마실 수 있고, 게다가 원가도 저가커피보다도 싼 1,000원 내외다. 캡슐 원료 또한 이탈리아나 제3세계에서 만든 고급 커피 일색. 

이런 장점들이 기반이 되어 캡슐커피 시장은 2020년 1,980억 원에서 2023년 3,998억 원으로 딱 2배 이상 성장했다. 네슬레는 이 시장에서 무려 80%대 점유율로 최고의 성가를 누린 것이다. 

그랬던 판세가 ‘포스트 코로나’가 되자 달라졌다. 새로운 경쟁 구도가 펼쳐진 것이다. 국내 믹스커피의 강자인 동서식품에서 카누 머신을 선보인 것은 물론, 급기야 저가 생활용품의 대명사인 다이소까지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들 제품 중 누가 먼저 코로나 이후 폭증하는 시장을 잡느냐가 이제 관건이 됐다. 물론 아직은 걱정할 때가 아니라 할 수 있다. 점유율이 무려 80%가 넘기 때문. 

이건 자만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주변에서 흔하게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다가 넘어지는 거인들을 보곤 한다. 80%는 물론, 한때 90%에 가까운 시장점유율을 보이던 국산 담배와 차, 워드프로세서의 현 모습은 어떤가. 더구나 시장에는 일리를 비롯해 다른 대안들도 많다. 이들 또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친다면, 장기적인 판세는 아무도 모른다.  

네스프레소가 ‘페이백’에 나선 진짜 이유다.         


   

Nespresso, what else      

'네스프레소 말고 또 뭐 있겠어'. 이 말은 '네스프레소 말고 또 뭐가 있지'로 들릴 수도 있지 않을까.


결국 네스프레소의 이번 페이백은 시장의 리더 위치를 확고히 유지하려는 강한 방어책이라 할 수 있다. 급성장 단계에서 리더십을 넘겨주지 않으려는 것. 

물론 80%대란 꽤 높은 시장점유율이다. 그러나 100%는 아니다. 우리는 후발주자가 선발주자를 잡는 경우를 꽤나 자주 지켜봐 왔다. 소비자의 취향은 변하게 마련이고, 누구나 변하는 그 ‘입맛’을 맞춰주지 못하면 쓰러지는 건 같다.       


Nespresso. What Else?
그건 네스프레소지. 또 뭐 있어?

네스프레소의 유명한 광고 문구다. 소비자의 까다로운 입맛을 맞추는 건 오직 자신밖에 없다는 것. 저 말이 네스프레소말고 ‘또 다른 건 뭐가 있을까’로 들리는 건 나 혼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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