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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UC Jan 06. 2023

나는 파면, 해임당한 '멋진' 교수다.

파면, 해임당한 나는 왜 '멋진' 교수인가?

나는 교수다. 아니, 나는 교수였다. 왜냐하면 아직 복직하지 못한 해임된 교수이기 때문이다. 학교의 보복은 꼬박 3년간 이어졌다. 올해 삼재가 끝났다. 돌이켜 잠시 마주하는 것도 힘들다. 다른 한편으론 그 시절 때문에 내 인생이 더욱 빛난다는 생각도 든다.       


학교의 징계는 직위해제, 감봉, 파면, 복직, 해임의 순으로 이어졌다. 처음 파면되었을 때는 약간의 여유가 있었다. 내 행동은 정당했다. 교수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허위를 반박하지 않으면 진실이 된다’고 믿었다. 특히 ‘교수 사회’에서는.


과거 부당해고를 당한 경험상, 내 행동을 학교가 과실로 몰아간다고 하더라도 파면 사항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복직된다고 확신했다.      


출근하지 않고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갑자기 뒤통수를 치듯 불안이 찾아왔다. 불안은 공황발작으로 변했다. 곧 죽을 것 같았다. 그 순간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나아 보였다. 어느 날은 하루 20시간 가까이 누워만 있었다. 그런데도 몸무게는 15kg 가까이 빠졌다. 화장실 가는 것 외에 침대에 누워 움직이지 않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정신과를 방문했다. 세 정거장 거리를 걷는데 걸음이 휘청거렸다. 주저앉고 싶었다. 이를 악물었다.

      

의사는 일단 하루 2번 약을 먹으라고 했다. 좋아지리라 세뇌하면서 약을 꼬박꼬박 먹었다. 몸을 억지로라도 움직였다. 그러나 지속되지 않았다. 자꾸만 눕고 싶었다. 이러다가는 복직 때까지 누워만 있을 것 같았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엄청난 시간 낭비가 될 것 같았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불안이 더 깊어졌다. 꼬리를 자르기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누워서 핸드폰으로 아르바이트 거리를 찾았다.   

   

55세 넘은 남자가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조건에서 나이 때문에 우선 배제되었다. 경비직이 더러 있었다. 하지만 매일 출근하며 몇 개월씩 하는 일은 할 수가 없었다. 복직하기 전까지만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택배 물건을 나르는 일도 가끔 눈에 띄었다. 허리가 아픈 나로서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가끔 복직에 대한 믿음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영영 사회에서 버림받게 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졌다. 하지만 냉정하게 불안을 걷어내고 깊게 생각할 때면 복직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약물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보인 것도 같다.

     

앱으로 자기소개서를 처음 넣은 곳은 호텔 청소였다. 집에서 멀지 않았다. 호텔 청소는 다른 곳의 청소보다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자기소개에 과거 직업을 써넣어야 했다. 망설였다. 교사나, 교수 생활 외에는 써넣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호텔에서 나를 써 줄 것 같지 않았다. 며칠을 고민했다. 안 되더라도 일단 부딪혀 보기로 했다. 사실대로 썼다. 교수라는 직업을 가졌었다고 썼다. 명예퇴직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절대로 권위적이지 않고, 시키면 허드렛일도 잘할 자신이 있다고 강조하였다.


이렇게 쓰자, 손님이 나에게 담배를 사 오라고 시키자 “네” 하면서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얼른 매점으로 달려가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부끄럽지 않았다. 당분간 하는 것이고, 세상을 더 경험하는 것이고, 교수로서 역량을 더 많이 갖추는 과정으로 생각했다. 어쩌면 호텔 청소 일자리라도 붙잡고 싶은 욕망이 너무 커서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도 같다.      


호텔 청소 아르바이트는 며칠이 지나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떨어졌다. 호텔 청소를 할 팔자가 아니라는 위로 대신에, 호텔 청소도 하지 못하는 신세라는 생각에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아르바이트 앱을 보기도 싫었다. 하지만 어느새 손은 그곳에서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다. 아기를 봐주는 아르바이트도 있었다. 급여가 상당했다. 아기를 봐줄 자신도 있었다. 기저귀를 가는 모습을 그려보기도 하였다. 지원 자격이 되지 않았다.   

   

장애인 활동 보조 아르바이트가 검색되었다. 집에서 거리가 좀 있었다. 장애인과 관련된 일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뇌성마비가 있는 50대 남성이고, 목욕을 시켜주고, 병원을 데려다주는 것이 주된 일이었다. 비용도 시간당 1만 원이 조금 넘었다. 하루 네 시간 정도면 4만 원에다 주 5일이면 20만 원, 한 달이면 80만 원 가까이 벌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협의하면 100만 원 정도는 벌 수 있다고 안내되어 있었다. 내 차로 병원에 데려갈 수 있는 것이 내가 뽑힐 수 있는 강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걱정되었다. 내가 교수였다는 것을 알면 상대가 부담스러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 청소와는 달리, 이건 같은 업종(?)에 있기 때문에 올 수 있는 불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을 망설였다. 그러다 지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전화번호를 찾기 위해 앱을 검색했다. 몇 번을 검색했지만 장애인 활동 보조 아르바이트는 사라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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