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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UC Jan 08. 2023

누가 '똥'을 치웠을까?

파면, 해임당한 나는 왜 '멋진' 교수인가?

선잠을 잤다. 우울증 약물 때문에 잠이 깊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늦으면 안 된다는 긴장이 우울 상태를 이기는 것 같았다. 12시 넘어 잠이 들었고, 4시 정도면 잠에서 깨었다. 그렇게 한 시간 반 정도를 뒤척거렸다.

     

‘십 분만 더 자자’. ‘오 분만 더 자자’.      


일어나는 순간이 가장 힘들었다. 몇몇 깨어 있는 세포의 희미한 에너지를 순식간에 최대한 모았다. 5시 반 정도에 샤워했다. 따스한 물이 나오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마무리는 찬물로 했다. 오래된 습관이었다. 검은색 윗도리와 바지를 입었다. 때가 꼬질꼬질한 하얀 에코백에 수건을 넣고 사장을 만나는 곳까지 걸어갔다. 반은 눈을 감고 걸었다. 몸뚱이가 갈지자로 휘청거렸다.

     

사장은 시흥에서 차를 몰고 왔다. 차 옆문에는 ‘계단 청소 전문’이라는 광고가 붙어 있었다. 그것은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또렷하게 알려주었다. 대부분 내가 사장보다 조금 더 일찍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그러면 나는 사장이 올 때까지 약국 계단을 오르락거리며 억지로 몸을 깨웠다.


사장은 도착하자마자 담배를 피웠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그렇기에 일을 시작하기 전에 사장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어 달이 지났는데도 그랬다. 어색함을 피하려 나는 그가 가래를 “크웨액”하고 뱉을 때까지 최대한 거리를 두었다.


역 근처의 빌라를 청소하였다. 넓었다. 주차장 주변의 쓰레기를 치웠다. 외부 불법주차는 끈적이는 종이를 자동차 앞 유리에 붙인다는 현수막이 너덜너덜 걸려있었다. 우편함에는 광고물들이 멋대로 끼워져 어지러웠다. 청소가 끝났다고 사장에게 보고했다.


사장은 빌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가 청소할 때는 보이지 않던 쓰레기들이 눈에 띄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화가 났다. 그의 '킁킁'거리는 불편한 콧소리 때문이 아니었다. 나 자신이 너무나 멍청해 보였기 때문이다. 사장이 못 마땅해한다는 것을 온몸이 알려주었다. 부끄러움을 삼키며 다음 집으로 옮겼다.   

  

좁다란 골목길을 따라갔다. 1미터 정도 되는 높이에서 뛰어내렸다. 바닥은 쓰레기와 함께 개똥이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발길에 걸리적거리는 큰 쓰레기 몇을 치우려 하자 사장은 치우지 말라고 했다. 빌라 청소하는 곳과 아닌 곳의 차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청소하는 집에 도착했다. 사장이 먼저 빌라 안으로 들어갔고, 함께 일하는 신 과장이 따라서 들어갔다. 그 뒤로 내가 막 현관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바닥에 무엇인가 한 움큼 놓여있었다. 자세히 보니 똥이었다. 


‘사람 똥’.      


나는 잠시 고민했다. 사장에게 말을 하면 분명 나나 신 과장에게 치우라고 할 것 같았다. 어차피 사장과 신 과장이 나오면 알게 될 것 같아서 사장을 불렀다.    

  

“사장님, 현관 밖에 똥이 있는데요”

“뭐, 똥이 있어?”     


사장은 놀라기보다 귀찮다는 듯 말했다. 똥은 어른 양 주먹을 합한 정도의 분량이었다. 굳은 정도를 보면 최소한 하루는 지난 것 같았다.

   

‘지금 시간이 오전 11시 정도이니, 똥은 지난밤에 누군가가 쌌을 것이다. 아마 지난밤 술집에서 술을 먹고 화장실을 못 찾아 이곳에 실례한 것이다. 다행히도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출근하면서 똥을 밟지 않았다. 그렇길래 똥은 원래 모양대로 잘 보존되어 있었던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사장이 어리론가 갔다. ‘사장은 무엇을 하러 가는 것일까?’ 신 과장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장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나는 사장이 어떠한 형태로든 나에게 똥을 치우라고 시키면 더 이상 청소하지 않겠다고 할 작정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똥을 치우는 내 모습은 견디기 힘들었다. 사장과의 어색함으로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두지 못했는데 마땅한 변명거리가 될 것도 같았다.

   

사장이 나타났다. 어디서 헝겊 쪼가리를 가지고 왔다. 그것을 둘둘 말아서 사장이 손으로 똥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똥은 강하게 저항이라도 하듯 역한 냄새를 풍겼다. 어떤 기운이 작용했는지 순간 나도 모르게 잽싸게 주변에서 비닐봉지를 주워 사장을 밀치고 사장이 미처 치우지 못한 똥을 치웠다. 토가 나왔지만, 꾹 참았다.

     

나는 사장을 다시 보게 되었다. 분명 그가 나나 신 과장에게 똥을 치우라고 시킬 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솔선을 보였다. 껄렁거리며, 가래를 “크웨액”하고 뱉는 그였지만, 부하직원에게 가장 더러운 일은 시키지 않았다. 나를 파면, 해임시킨 사람들이 떠 올랐다. 똥 냄새가 어디선가 ‘확’ 풍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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