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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UC Jan 10. 2023

나는, 편한 대로 생각하기로 했다.

파면, 해임당한 나는 왜 '멋진' 교수인가?

계단 청소 사장과 처음부터 완벽한 갑과 을 사이는 아니었다. 그도 친구로부터 양도받아 청소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사람이 중요했다. 나는 그의 첫 고용인이었다. 나를 테스트한 사장의 와이프가 잘할 것이라고 했기에, 사장은 나름으로 기대도 했을 것이다.

     

청소는 대부분 오전 6시 반에 시작하여 오전 11시 반이나 낮 12시 반경에 끝났다. 월급으로 130만 원을 받았다. 6개월 후에 십만 원을 올려준다고 했다. 시간당 만 원이 조금 넘는 꼴이었다. 점심도 제공되었다. 무엇보다도 점심을 먹고 나서도 오후 1시 안으로 항상 일이 끝난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장점이었다.


같이 일하는 신 과장에게는 그랬다. 하지만 나에게는 장점이 아니었다. 신 과장은 일이 끝나면 갈 곳이 있었다. 나는 갈 곳이 없었다. 할 것도 없었고,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일이 끝나면 카페에 앉아서 아무 생각도 없이 서너 시간 그저 멍하게 앉아 있다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일찍 갈수록 누워있는 시간이 많기에 어떻게 해서든 늦게 들어가고자 했다. 집에 와서는 다짐한 것과 다르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또 누워서 보냈다.

      

삼 개월 정도 지났을 때 사장은 부쩍 나에게 신경질을 내었다. 그도 그럴 것이었다. 함께 일하는 신 과장은 두어 주 지난 다음부터는 청소해야 할 집을 거의 완벽하게 찾았다. 사장이 없이 신 과장이 운전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수준이었다. 사실 사장은 그걸 원했다. 사장이 없더라도 직원들끼리 청소하는 것을.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사장이 어느 집이라고 알려주지 않고, 그냥 청소할 구역에 내려주면 나는 어느 집을 청소해야 할지 헤맸다. 내가 나를 생각해도 한심해 보였다. 그것이 쌓이자 사장은 점점 더 나를 대놓고 무시했다.

      

그들은 몰랐다. 내가 우울증이 얼마나 심했는지. 사실은 나도 몰랐다. 내 우울증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나는 새벽에 일어나서 좀비 상태로 나왔다. 찬물로 샤워를 마무리하고 나서도 그 상태는 변하지 않았다. 누군가 슬쩍 건드리면 실제로 푹 쓰러질 수 있었다. 건널목을 건널 때, 자동차가 나를 치었으면 하는 생각도 했다.  

    

태엽이 풀릴 때까지 정해진 대로 움직이는 인형처럼, 나의 다리는 자동으로 계단을 오르내리고, 팔은 대걸레 자루를 잡고 그저 좌우로 흔들었던 것에 불과했다. 사장이 중간에 무슨 지시를 하면 금방 알아듣지 못하고 어리둥절했다. 어떤 10층짜리 건물은 5층부터 1층까지만 청소해야 했는데, 몇 주가 지나도 나는 10층부터 하다가 사장으로부터 핀잔받기도 했다.

      

사장은 내가 대기업에 근무하던 팔자 좋은 임원이었기에 일을 못 한다고 대놓고 말했다. 차라리 그게 다행이었다. 우울증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고, 당시에는 우울증 때문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대기업이 아니라 대학에서 근무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사장이 틀린 말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4개월쯤 되어서 결국 나는 잘렸다. 특별히 계기가 된 것은 쓰레기봉투와 관계가 있다. 어떤 집은 빌라 주변의 쓰레기도 치워야 한다. 쓰레기를 모아서 비닐봉투에 담을 때 사장은 언제나 비닐봉투가 찢어질 정도로 쓰레기를 채웠다.

      

그날도 그랬다. 내가 쓰레기봉투를 잡고 사장은 봉투에 쓰레기를 넘치게 담았다. 쓰레기가 쏟아졌다. 나는 그것을 무시하고 봉투를 묶으려고 했다. 사장이 소리쳤다. 봉투값이 얼만 줄 알고 벌써 묶느냐며 핀잔을 주었다. 나는 봉투를 풀었다. 그런데 봉투가 찢어졌다. 사장은 화를 내면서 테이프를 가져왔다. 봉투 위로 한참이나 쓰레기가 올라갔고 사장은 테이프로 마무리하려고 했다. 그런데 테이프가 잘 끊어지지 않았다. 그것을 바라보던 신 과장이 이빨로 테이프를 끊고 마무리를 하였다.   

   

이 일 후로 이삼일 있다가 잘렸다. 미리 말이 있었는지 신 과장은 그날 식사하지 않고 먼저 간다고 했다. 나는 사장과 어색한 점심을 했다. 사장이 말했다. 더 같이 일하고 싶지만 힘들겠다고. 느낌이 있었지만, 표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한 번만 봐달라고 해야 하나도 생각했다. 사장은 일할 사람도 정해졌다고 했다. 나는 해임 취소 재판이 끝날 때까지는 하고 싶었다. 그동안 서툴러서 미안했다고 했다.  사장도 미안하다고 했다.   


일주일쯤 후에 아르바이트 앱을 뒤적거렸다. 혹시 계단 청소 경력자를 뽑는지 알아보았다.  사 개월도 경력은 경력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잘린 곳에서도 구인 광고를 올렸다. 연락처가 사장의 번호였다. 같이 일했던 신 과장이 그 새 그만둔 것인지, 아니면 새로 뽑은 사람이 그만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로부터 일주일쯤 후에 사장이 전화했다. 나는 받지 않았다. 아니 받을 수 없었다. 전화가 금방 끊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전화하지 않았다. 사장이 나를 다시 나오라고 하려고 했는지, 아니면 내 번호를 지우려다 잘 못 눌렀는지 알 수 없다. 나는 그저 내가 편한 대로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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