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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른도로시 Jun 22. 2023

100년전 공주 이야기 첫번째, '꽃의 공주'(2)

-무단 침입자의 정체는?!





“놀라셨죠?” 

활기차게 말하며 그가 한 발짝 앞으로 걸어 나왔다. 잘생긴 얼굴에 웃음기 가득한 젊은 남자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초록색 옷을 걸쳤고, 허리춤에는 검을, 어깨에는 작은 류트를 둘러매고 있었는데 마치 음유시인이 쓸 법한 물건이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유쾌한 아가씨.” 그가 모자를 벗으며 아주 낮게 몸을 숙였다. 경의를 표하는 몸가짐이었다. “아침 일찍 피는 꽃을 좋아하시나 봅니다. 우리는 훌륭한 안목을 지닌 것 같군요. 둘 다 홀로 이 곳에 와 있으니, 아마도 그렇겠지요.”

      

“당신은 여기 있으면 안돼요. 어떻게 이 곳에 들어왔죠?” 공주가 살짝 인상을 쓰며 뒤로 물러섰다. 

“이곳이 공주님의 정원이라는 걸 모르시나요? 해가 질 무렵부터 해 뜬 후 3시간 안에는 그 누구도 출입을 허락받을 수 없을 텐데요.”     

“아!” 젊은이가 밝게 웃으며 탄식했다. “어제 아랫마을에서 그 얘기를 들었습니다. 바보 같은 규칙이죠. 만약 공주님께서 하루 중 정원이 가장 아름다울 시간에 사람들이 들어와서 감상하는 걸 막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을 모르신다면 소인의 불복종을 받아들이셔야 할 겁니다. 게다가 그 문제라면 아름다운 아가씨, 그대 역시 마찬가지지요. 이 시간에 무단침입이라. 아하! 오호!” 청년이 큰 소리로 웃으며 짓궂게 손가락을 흔들어댔다.     

 


공주는 웃음을 참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가장 단호하게 말했다. 

“초록색 코트를 입은 신사 분, 참 무례하군요. 저는 공주님의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입니다. 그 분께서는 제가 이 시간에 정원에 출입할 수 있게 허락하셨어요. 세상에서 단 한 명, 저에게 만요.”     

“아, 그 권리를 함께 나눕시다, 사랑스러운 아가씨. 저와 함께 나눠요!” 이방인이 소리쳤다. 

“저를 이 시간, 이곳에서 그대와 함께 보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제 잘못은 둘 만의 비밀로 하고요. 

하지만 다시 한 번 말하겠지만, 또 강조하지만, 제가 이 땅에 머물러 있을 때 까지만 입니다.”             


공주는 망설이다가 물었다. “그럼 당신은 다른 나라에서 왔나요? 곧 떠날 건가요?”     

“네, 먼 곳에서 왔습니다. 주와이예즈*라고 합니다. 명랑한 벗이자 여행가이며 음유 시인이자 검객 그리고 약초 수집가이지요. 여러 방법으로 밥벌이를 하고 있는 셈이라고 할까요. 이 나라를 지나던 중 꽃을 사랑하는 제 코가 이 경이로운 정원의 향기를 맡고 여기로 이끌었죠. 아, 어찌나 아름다운지! 이른 아침에 피어날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싶다는 바람으로 해질 무렵 몰래 숨어들어 저기 있는 작은 정자 안에서 밤을 보냈습니다. 그 이래 줄곧 꽃들 사이를 거닐다 노랫소리를 듣고 멈춰 섰죠. 여기에는 숨으려고 왔습니다. 노래를 듣는 내내 너무 행복해서 들키고 싶지 않았거든요. 발각되면 더는 못 들을 테니까요.”  

     

“거침이 없으시군요. 주와이예즈, 방정치 못한 친구여.” 공주가 웃으며 말했다. 

“전 공주님께 당신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먹었답니다. 여길 돌아다니고 있단 사실도요.”     

“많이 화내실까요?” 이방인이 물었다. “전 새싹 하나 건드릴 생각이 없습니다. 진심으로 아끼니까요, 그대가 그러하듯이. 친애하는 아가씨, 이제껏 당신을 지켜 봐왔습니다. 아,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꽃이 무엇인지도 말할 수 있을 것 같군요. 그건-.”

“아니요, 모르실 거예요.” 그녀가 서둘러 말했다. “아무도 모르니까요.”     

“아하!” 청년이 탄식했다. “비밀로 하시는군요. 모시고 계신 플뢰렛 공주님처럼요. 공주님의 심장을 품은 꽃을 찾은 왕자가 선택받을 거란 걸 들었어요. 언제 한 번 그 꽃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공주님과 결혼하려고요.”      

“당신!” 공주가 놀라서 외쳤다.     

“아, 놀라시는 군요? 저는 그 분을 위해 싸울 거고, 목숨 바쳐 지킬 겁니다. 필요하다면요. 노래와 연기로 즐겁게 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약초를 다루고 로션 만드는 일에 능숙해서 공주님 백성들의 건강과 행복을 지키는 데 보탬이 될 수 있고요. 게다가, 전 공주님처럼 꽃을 사랑합니다. 하루 중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는 이른 아침 정원을 사랑하니 더 아끼는지도 모르죠. 그대가 꽃을 사랑하듯이 말이에요, 아름다운 아가씨. 제가 그분의 왕자라면 이 정원을 소홀히 하지 않겠죠. 하지만 작은 꽃이여, 지금 당신을 보고 있자니 더 이상 왕자가 되어 그분께 청혼하고 싶다는 열망이 들지 않네요. 만약 할 수 있대도 하지 않을 겁니다. 바로 그대 때문이지요. 당신보다 아름다운 사람은 없습니다. 심지어 자매인 꽃들보다 더 사랑스러운걸요. 

아, 뭔가 떠올랐습니다! 그대가 바로 공주님이 말씀하신 꽃일 거라는 생각이요. 가장 빼어난 꽃. 그분께서 당신의 심장을 모셔둔 곳. 대답해보시오, 그렇지 않습니까?”    

 

“절대 아니에요!” 쏟아진 찬사에 뺨이 온통 분홍빛으로 상기된 채, 공주가 소리쳤다. 

“얼마나 바보 같은 얘기만 하시는지! 이만 서둘러 궁전으로 가봐야겠어요. 그러지 않으면 누군가 우리를 발견해서 둘 중 하나는 벌을 받을 거예요.”     

“그럼 공주님을 직접 뵙게 되면 시녀들 가운데서 당신을 볼 수 있을까요?” 

주와이예즈가 애타는 목소리로 물었다.      

“오, 절대 안돼요!” 공주가 소리쳤다. 

“오늘 뵈려 해선 안돼요. 시기가 좋지 않아요. 아마도 내일-” 그녀가 말끝을 흐렸다.      

“오늘 중에 다시 정원에 오실 건가요?” 그가 애원했다.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오늘은 안돼요. 주와이예즈.”     

“그럼 내일은 오실 건가요? 내일 아침 일찍 이곳에 와서 조금이라도 함께 한다고 약속해주세요.” 

그가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공주가 빛나는 웃음을 조그맣게 흘렸다. 

“내일 아침 일찍 나와서 누구를 찾을지 누가 알겠어요?” 

그러더니 더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슥 사라져 버렸다. 정원의 어느 방향에서 들어왔었냐고 주와이예즈가 묻기도 전이었다. 이방인으로서는 알기 힘든 온갖 갈림길과 나무를 심어 만든 울타리 사이의 구불구불한 통로를 완전히 꿰고 있는 덕분이었다.      









*Joyeuse : 프랑스어로 '기쁜', '유쾌한'을 뜻함. 

Fleurette(플뢰렛)은 꽃을 심어 놓은 작은 화분, 꽃다발 등을 뜻함. 


(3)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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