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말이지 지독한 회피형 인간인가 봐. 나뿐만 아니라 내 동생도.
동생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택배 서비스와 인터넷이 끊기지 않는 한, 녀석은 석 달간 방 안에만 있어도 혼자 웃고 즐기며 멀쩡할 놈이다. 그 아이는 도무지 친구들에게 연락하는 일이 없었다. 말 그대로 1도 외롭지 않다고 했다. 오히려 사람들과 친해져서 웃고 떠드는 걸 성가셔하는 것 같았다.
나는 동생보다는 사교적이다. 아니, 나를 적당히 잘 아는 사람들은 내가 활발하고 낯가림 없는 성격인 줄 안다. 사람들과 함께 있기를 좋아하는 래브라도 레트리버와 시츄 그 사이 어드매 있는 인간인 줄 안다. 물론 나라는 사람을 이루는 무지갯빛 스펙트럼 안에 그런 면모도 분명히 총천연색으로 빛을 발할 때가 있다. 문제는 감정이 구름 낀 날 제주도 앞바다처럼 널을 뛰는 바람에 볼썽 사납게 빠져서 허우적 댈 때가 많다는 것이다. 실상을 말하자면 많은 정도가 아니라 거의 언제나 늘 항상 감정이란 놈에게 백기를 들고야 만다.
나는 아이들이 좋다. 빈틈없이 매끈한 피부에 발그레한 뺨이 참을 수 없이 예쁜 건 말할 것도 없고, 막 닦은 유리창처럼 맑은 눈동자며 젖살이 통통하게 올라 손가락이 시작되는 툭 튀어나온 뼈 부분이 쏙쏙 묻힌 손도 좋고, 그 조막만 한 손으로 끊임없이 무언가를 조물조물 만지는 모습도 좋아한다. 수줍어하는 아이, 쉴 새 없이 재잘대는 아이 등 성향을 가리지 않고 아이들은 순수하다.
심지어 '저 애만큼은 절대 귀여운 면이 없을 거야.'하고 장담할 정도로 밉살스러운 아이마저도 사랑스러울 때가 있다. 문제의 그 아이로 말하자면 그전까지 애들 앞에서 눈곱만큼의 짜증조차 내본 적 없던 내 이성의 끈을 풀리게 했던 아이였다. 하얗고 작은 얼굴에 오밀조밀한 눈, 코, 입이 조화롭게 자리 잡은 그 아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찌나 천사 같은지 꼭 안아주고 싶을 정도였지만 불행히 행동은 외모와 정 반대였다. 순간 실수로 꼭 싸매 놓았던 인내심 보따리를 풀어버린 내게 심통이 나 하루종일 서먹서먹하게 굴었던 주제에, 하원할 때 다정하게 인사하니 화답하며 손을 흔들어 보이는 것 아닌가. 그걸 보며 역시 아이는 아이구나, 하며 빙긋 웃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가르쳤던, 그리고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도 모두 제각기 사랑스럽다. 그 애들과 있노라면 갓 봄비를 맞아 푸릇푸릇 솟아나는 잎사귀들에 둘러싸인 기분이 든다. 함께 있으면 힘이 솟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너무 맑고 싱싱한 기운에 솜털이 으스스 솟을 만큼 두려울 때도 있다.
어떨 때는 아이들이 나를 잡아먹을 것만 같다. 예쁜 모습에 반해 무심코 한 발을 더 내딛다가 거센 물살에 훅 하고 빨려 들어갈 것 같다. 일단 들어가고 나면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아이들의 싱싱함과 하늘을 향해 뻗어나가며 겪어내는 변화무쌍한 온갖 기쁨과 고통과 슬픔과 외로움을 도무지 견딜 수가 없다. 인생을 먼저 산 선배로서 손을 내밀고 싶다가도 끊임없이 생성 중인 아이라는 미로 안에서 길을 잃을까 무서워 뒷걸음질을 치고 만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 열에 일고여덟 정도는 나보고 좋다고 한다. 떠난다고 하면 울며 붙잡기도 하고,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말을 하는 녀석도 있다.
나는 사실 너희들과 너무 친해질까 봐 무서워. 너희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될까 봐 두려워. 나의 속내는 이처럼 바스락바스락 부서지는 중이란 걸 너희는 알까.
너희들 선생이란 작자는 이토록 지독한 회피형이란다. 할 수만 있다면 죽을 때까지 도망치고 싶다. 눈 감기 직전에 후회할지라도.
나는 어쩐지 자꾸만 사람들과 가까워질 때마다 뒤로 빠질 타이밍을 재곤 한다. 상대가 사랑스러우면 사랑스러울수록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