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악 그 사이에서
위에서 누르고 아래에서 치고 올라온 덕분이었을까?
지금 생각하면 둘째라서 서럽기보다 둘째였기 때문에 애매한 틈에서도 나의 길을 확립하고 자립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셋 중에 가장 튀면서도 뛰어났다. 공부로 혼나고 공부로 칭찬받는 게 전부였던 시절, 나의 생존도구는 언니랑 동생보다 좋은 성적이었다.
나는 내 머리가 좋다고 생각했다. “나 어젯밤에 시험공부 하나도 못 했어ㅠㅠ” 이 흔하고도 재수 없는 거짓은 한때 나를 통해서 진실로 발현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성적을 받음으로써 내 머리가 좋아서 그렇다는 걸 은연중에 드러내기를 즐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주인공이 되기를 자처하며 결괏값에 극적인 효과를 더하고 싶었다.
하지만 완전한 재능형 인간은 없다. 본인 두뇌만 믿던 안이한 아이는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방황하기도 하며 노력을 찾아갔다.
참 신기하면서도 가엾던 시절이 떠오른다. 영어•수학을 가르치는 한 학원을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다녔다. 학원에서도 우등생으로 꼽혔던 나는, 누군가 나보다 잘하거나 내가 틀리고 그가 맞는 순간을 맞닥뜨리면 본능적으로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다. 어떤 마음과 감정이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옷소매가 눈물 콧물 범벅이 될 정도로 혼자 순간적 감정을 훔치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 밖에.
나랑 성적이 비슷했던 친구의 외고 지원과 합격 소식이 들려왔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배신감과 패배감이었다. 이제 중학교 졸업과 함께 학원도 졸업할 시점, 우등졸업을 하지 못하게 된 기분과 함께 당장 앞만 보던 얄팍한 여중생이었다.
이 모든 것은 욕심에서 기원했다. 지기 싫고, 뒤처지기 싫었던 나의 본능이다. 내가 그린 그림이 의도대로 해석되길 바랐고, 그렇게 내가 더 돋보이고 더 잘되고 싶었다. 욕심은 선과 악, 자부심과 자만심 그 사이를 자유롭게 드나들며 나를 키웠다.
노력을 뺀 욕심은 처음에 나를 한계점에서 가로막았다. 더 잘할 수 있었고 더 높은 곳으로 갈 수 있었음에 분명하다. 노력은 작고 재능만 믿었던 시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다 “그래서”가 점점 짙어지면서 실패, 후회, 한계 따위에 접속하는 순간이 많아졌다. 욕심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노력은 필수라는 걸 동시에 체득했다. 자만에 넘쳤던 그 순간들 마저 중요한 걸 가르쳐줬다.
어엿한 직장인이 되고 본능적 욕심은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사회에 와선 단순한 두뇌와 재능의 덕보다 일에 대한 의욕, 성과에 대한 욕심 같은 것들의 덕을 많이 보게 됐다. 욕심은 열정이라는 근사한 단어와 어우러져 좋은 성과, 높은 근무평정뿐만 아니라 인생의 가치, 나의 행복까지 가져다주었다. 욕심 때문에 자만했던 과거였다면, 욕심 덕분에 자부하는 현재다.
나이를 먹을수록 욕심은 줄어들고 재능과 노력 말고도 믿는 게 많아졌다.(운, 타이밍, 사랑하는 사람의 응원 같은)
20여 년 동안 욕심을 중심으로 다양한 상황을 마주하고 많은 감정을 겪으면서 욕심의 힘을 알게 됐다. 하나만 믿고 안이해지거나, 패배감에 휩싸여 혼자 눈물을 훔치던 아이는 더 이상 없다. 분명 욕심의 부정적인 부분까지 함께하는 미래가 펼쳐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를 만들고, 앞으로의 나를 움직일 “욕심”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