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끝자락에서
나이도 나이고 세월도 세월이지만 나도 진짜 어른이 됐구나 자주 느끼게 되는 요즘이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나는 분명 3-4년 전의 내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는 걸 깨닫는다.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나는 영영 바꿀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습관을 고치고, 일과 사랑을 둘러싼 수많은 감정의 풍파를 거쳐 성장하였다. 그렇게 나는 서른을 앞두고 비로소 어른에 다다랐다.
습관: 당당해진 청춘의 손
20년 이상 굳어져 쉽게 바꾸지 못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바로 ‘요상한 젓가락질’과 ‘손톱 물어뜯기’.
스물다섯에 정식 사회생활을 타지에서 시작했고, 자취생활과 함께 에디슨 젓가락 생활도 시작했다. 마음만은 다섯 살로 돌아가기. 손가락에 힘이 잘 안 들어가서 이게 될까? 싶었지만 그때 잘 바꾸고 지금은 멋지고 올바른 젓가락질을 잘하고 있다. 그렇게 콩 하나도 쉽게 척척 잘 집어내지!
엄마 말로는 나는 갓난아기 때도 자면서 엄마 손톱을 물어뜯었다고 한다. 손톱 사이 삐져나온 살도 용납할 수 없었던 나는 집요하게 살을 뜯어내느라 피도 얼마나 많이 봤는지 모른다. 그렇게 못생긴 내 손이 너무 부끄러웠던 청춘. 네일이라곤 꿈도 못 꾸고 있었던 순간, 이 오랜 습관을 고치기 위해 처음으로 네일숍에 방문했다. 인조손톱을 붙이고 인내의 시간을 잘도 버텨냈다. 이제는 열 개의 손가락에 당당히 자리 잡은 자연손톱이 자랑스럽고 사랑스럽다. 손톱깎이로 내 손톱을 깎는 날이 오다니!
스스로 부끄러웠던 습관들을 하나둘 고치고, 의지와 노력으로 라면 오랜 습관도 바꿀 수 있구나 체감했다. 이런 순간들이 사람은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믿게 했다.
사랑: 단절로 승화한 관계의 미학
동생이 남자친구한테 서운함을 털어놨다고 한다.
나: 뭐가 서운했는데?
동생: 교동에서 밤늦게까지 회식해서
나: 그게 왜???
동생이 웃었다.
나: 아니, 그게 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똑같은 대사만 반복하는 내가 웃겼나 보더라. 너무 별거 아닌 걸로 남자친구한테 히스테리 부리지 말라고, 특히 회사 관련 일이나 개인 일정은 존중을 해주라는 충고를 남겼다. 스물여섯의 동생은 본인이 너무 어리게 행동하는 건가 반성이 된다고 했다. 순간, 나의 스물여섯을 떠올렸다.
나: 어? 야 미안하다. 나 스물여섯 때는 더 했던 것 같다.
동생이 웃었다.
나: 너 스물여섯이니까 괜찮다. 나는 맨날천날 싸우고 울고… 감정소비 더 심했던 것 같다.
동생과의 대화가 스물여섯의 연애를 소환했다. 가장 뜨겁고도 치열했던 동갑내기 연애 시절을 떠올리며, 그땐 어쩜 그랬지. 참 어렸지. 20대 중반과 후반은 이리 다른 것인가? 생각한다. 시간이 흐르며 관계의 끝을 계속 인정하지 못하고 추억을 미화하던 습관도 흐려졌다. 상대의 행복을 바라는 관대함, 너를 안 찾고 나를 못 찾게 철저히 끊어버리는 냉철함 속에서도 성장의 지점을 찾았다. 한때 사랑했던 사람을 왜 차단까지 하는 거지? 관계의 완전한 단절을 이해하지 못했던 어리고 여렸던 나는 변했다. 단절의 필요성을, 다음 사람을 위한 차단의 예의를 배웠다. 다음 관계로 힘차게 나아가기 위한 깔끔한 마침표였다. 이 지점에 다다른 지는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일: 나로부터 남에게로
문화예술 업계에서 홍보 일을 한 지도 벌써 4년이 넘었다.
올해 들어서, 내가 걸어온 길 그리고 내가 해 온 일을 남에게 알리고 가르쳐주는 기회가 부쩍 늘었다. 커리어 외길인생을 조금 더 멋지게 만들어준 갈래 길은 ‘멘토링’이었다. 배우기만 하던, 스스로 찾아가기 바빴던 나는, 내가 모아 온 것들을 남에게 나눠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처음으로 참여한 비대면 멘토링에서 20명 남짓의 후배들에게 침이 마르도록 알려주고 10점 만점의 만족도 점수를 받았다. 나의 열정과 애정이 후배들에게도 통했구나 싶었다. 대면 멘토링에서는 더 긴 시간 속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전공 불문 21명의 후배들을 일일이 마주하며 선배의 이야기를 전했다. 일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전문성으로 이어져 학교 선배에서 사회 선배로 성장했다. 누군가에겐 나도 분명한 어른이 된 것이다.
멘토링을 넘어 이제는 120여 명의 후배들 앞에서 특강까지 앞두고 있다. 내 커리어뿐만 아니라 기관을 대표하여 우리 기관을 홍보하는 일을 도맡았다. 일정이 확정되고 특강에 대한 책임감이 실감 난다. 그렇게 세 번째 성장을 또 앞두고 있는 어른이자 선배.
가을의 끝자락, 강단에 서서 나는 또 생각하겠지.
나도 진짜 어른이 됐구나!
그것도 꽤나 멋진 어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