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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부부 Saai Aug 23. 2023

21. 하루 만에 바뀐 신분과 계획들

미국 취업비자 H1-B

 평생 한국에 살면서 13자리 주민번호로 정의된 한국인이라는 신분 만을 가진채 30년 넘게 살아오다 미국에 오게 된 우리. 미국뿐 아니라 타국에 사는 한국 사람들이 모두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은 비자, 신분 문제 일 것이다. 미국에서 비자를 유지, 변경하며 수많은 장애물을 만나기도 했고 신분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기본 장착한 채 지내왔다. 중이 절이 싫으면 그 절을 떠나면 되니 그 절에 머무는 동안 짊어져야 할 당연한 변수라 생각하며 이 길에 들어섰기에 이러한 신분 불안 또한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는 감사하게도 큰 변수 없이 정식적인 방법으로 비자 변경이 되어 온 케이스이다. 물론, 처음에는 이렇게 미국 거주 기간이 길어질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비자는 복불복이 너무 많고 되는 경우보다는 안 될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에 시작부터 기대 자체를 하지 않았다. 기대하면 실망할 일밖에 없으니까.


 2016년 F-1이라는 학생비자로 시작해 2년 반 가량을 보냈고, 2018년 여름 방학에 CPT 2개월 단기 인턴취업비자, 2019년 졸업 후 OPT라고 불리는 임시 취업비자로 1년, STEM OPT 라 하는 과학, 기술, 엔지니어링, 수학 분야 전공 전용 졸업 후 임시 취업 비자 2년. 그리고 2021년 9월부터 현재까지 미국 로또 추첨 취업비자 H1-B 비자까지. 무려 7년 동안 5개의 비자 신분을 거쳐왔다. 미국 비자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유학생들의 정식 루트를 모두 거친 셈이다.


 이 중 비자의 꽃은 H1-B 취업 비자. 다른 이전 비자들은 미국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누릴 수 있는 비자이다. 하지만 미국취업비자는 악명 높은 로또 추첨 비자이다. 로또라고 불릴 만큼 확률이 적고 복불복인 무작위 추첨 비자이다. 고로 100% 운이다.


 2021년 H1-B 취업 비자 추첨이 있었던 날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2월 초 회사와 연계된 로펌에 필요 정보를 제출하고, 2월 말쯤 추첨 결과가 나오길 하루하루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이때 울트라 슈퍼파워 짱짱맨 인내심이 필요하다 하루하루.


 우리는 마음이 심란할 때 집 근처에 있는 예쁜 성당 앞 성모상과 작은 연못이 있는 정원으로 가곤 했다. 그날도 여지없이 성모상 앞에 자리 잡고 앉아 평소 마음의 불만을 가득 품은 채 미사도 보지 않는 불량 신자이지만, '지금 내 마음이 심란하니 내 마음 좀 다독여 주세요' 하는 심정으로 뻔뻔하게 기도를 했다. 무교인 남편도 내 옆에 앉아 눈을 감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 저희가 무슨 결과를 받던 지금처럼 서로 의지하며 지치지 않고 상황에 맞는 선택을 하면서 앞으로 함께 이 길을 나아갈 수 있게 힘을 주세요’라고 기도했다.

정원에서 나와 차에 올라타 심에게 물었다.

“심은 무슨 기도 했어?”


“나는 심이 한 기도 들어달라고 기도했어”


 눈물이 울컥 쏟아질 것 같았다. ‘비자가 되던 아니던 상관없다. 이런 사람이 내 동반자라니. 비자 따위 중요치 않다.’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행복으로 마음이 가득해 몰랑몰랑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다른 날과 다름없이 저녁을 차려 먹고는 심은 설거지를 하고 나는 소화시키는 동안 노트북을 켰다. 잊으려 해도 종일 생각하고 있던 비자 결과가 궁금한 나의 손가락은 자동으로 비자 추첨 결과 사이트를 접속하고 있었다. 사이트가 열리고 심 접수 번호 조회 클릭을 한 순간 보이는 ‘SELECTED’.


 당첨이 된 것이었다. 이 사이트가 맞나? 오류인가? 내가 헛것이 보이나? 너무 기쁘면 오히려 찍소리도 못 내는 나. 아무 소리가 안 나게 입을 틀어막고는 설거지하는 심한테 다가갔다.


“심! 심 됐어! 심 당첨 됐어! 어떡해? 진짜야! ”


 그렇게 서로 껴안고 신나게 웃고 그동안 마음 고생한 서로를 다독여주며 행복하게 하루를 마무리했다. 하루 동안 이렇게 롤러코스터 같은 감정들을 마주 하다니. 인생이 놀이동산에서 놀이기구 타는 거 마냥 아주 현란하고 요란스럽고 슬펐다가도 기쁘다.


 미국 영주권 전 마지막 비자 신분인 H1B 취업비자. 막상 되고 나니 그 당첨된 하루만 기분이 좋고 다음 날부터 다시 기분 원상복귀. 아니 사람이 이렇게 상황에 적응이 빨리 되는 것도 아주 서운하고 아이러니한 이 기분.


 불과 전날까지만 해도 언제 이 나라를 떠나야 될지 모르기에 긴장 딱 하고 준비 태세였는데, 오늘부터는 갑자기 취업비자로 6년을 더 미국에 있을 수 있게 되어 또 새로운 고민을 안고 다음 날을 시작했다. 인생 참 모를 일이고,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를 일이고, 정말 오늘 저녁에 우리 운명이 바뀔 수도 있는 게 인생이구나 생각했다.



  

달콤 살벌 심부부 미국 유학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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