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날라온 문자 한 통
10월 어느 날, 내가 살고 싶은 삶을 만들어가고 싶어 퇴사를 감행한 지 열흘쯤 되었을 때다. 지난 1년 동안 프리랜서와 직장인으로 두 가지 역할을 하느라 달려왔는데, 어느 순간 벅차게 느껴졌다. 이제 그만 내 욕심을 놓아도 되겠다 싶을 용기가 섰을 때, 직장상사에게 조용히 퇴사 의사를 밝혔다. 생각보다 퇴사 처리가 일사처리로 되는 바람에 나는 혼자만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밤늦게 문자 메시지가 날아왔다.
"이번 겨울 라다크 여행을 준비하고 있는데, 실례되지 않으면 궁금한 점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두말없이 반가운 메시지였다. 평소 아침 9시에서 저녁 6시 넘어간 연락에는 답하지 않는 편인데도, 밤 열 시가 넘은 시간에 나는 낯선 이에게 답장을 하고 있었다.
"물론이지요. 제 연락처에요. 통화도 좋아요."
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 혼자 라다크 오지 마을을 다녀올 정도로 목소리 너머로 담담한 에너지가 전해졌다. 겨울 라다크 여행은 처음이라 어디를 가면 좋겠냐고 내게 물어왔다. "2년 전에 이미 라다크 다녀오셨다고요? 정말 좋았겠네요. 아, 그렇지요. 라다크는 겨울이 되면 꽁꽁 얼어버리니까 다니기 쉽지 않지요. 겨울은 전혀 다른 풍광이지요. 그런데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왜 다시 라다크냐고
나는 어디로 가보라고 추천하는 대신 라다크 여행의 목적을 물었다.
"왜 다시 라다크 가려고 해요?"
"라다크 여행을 가서 마음에 품게 되었어요. 거기는 척박하지만 고요한 대자연과 따뜻한 라다크 사람들을 삶을 느끼고 싶어서요. 예전에 투어도 했었는데 저 혼자 오지마을을 다녀왔어요. 별거 없었지만 제 안에서 강렬하게 느껴오던 것 있어서요. 거기에 대해 항상 라다크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어요. 최근에 무언가 삶에 대해서 느꼈을 때, 제가 여기서 많은 것들을 가지고 느낄 수 있는 곳에 있으면서도 너무 많은 것을 흘려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럴 때 EBS 다큐로 라다크에 대한 영상을 보게 되었어요. 다시 한번 삶에 대한 가치를 생각해보고 싶어서요."
Spituk Gompa, Ladakh, India 그녀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덕분에 작년 겨울에 다녀온 라다크에 대한 회상을 떠올렸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그곳의 사람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이름밖에 모르는 대한민국 어딘가에 살고 있을 여행자와 한 시간 전화통화를 끊고서야 나는 알았다. 라다크에 대한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나는 라다크를 사랑하고 있었다.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도커, 다지즈, 디스킷, 스탄진, 지맷, 리진 그리고 라다크에 만난 샤냐
라다크에 있는 그리운 이름들을 헤아린다. 눈을 감으면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한 밤하늘 별무리처럼 내 가슴에 별로 남아있다. 라다크는 인도 히말라야 산맥에 둘러 쌓인 잠무와 카슈미르 접경 지역이다. 라다크(Ladakh)라는 어원이 라 다그스(La Dags) 티베트어로 산길의 땅이다. 그래서 작은 티베트라고도 불린다.
그만큼 문화적으로 티베트 영향을 많이 받았다. 라다크는 해발 3500m에 위치해 있어 겨울이면 영하 이십도 추위가 일상이다. 일 년 중 6월과 9월 사이에만 라다크로 들어가는 육로가 열린다. 가고 싶다고 해서 언제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닌 척박하고 황량한 땅이다.
Thiksey Gompa, Ladakh, India
무엇하러 거기까지 갔을까?
왜 거기까지 갔을까?
라다크에 뭐가 있길래 다시 가고 싶을까?
나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해보기로 했다. 그게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다.
전화 온 그녀에게는 특정 지역을 추천하지는 않았다. 어디를 가기보다 누구를 만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인연대로 발길 닿는대로
"어떤 사람을 만나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곳으로 가 있을 거예요."
나 역시 그랬으니까.
"아, 인연대로 가보면 되겠군요." 그녀는 내 말 뜻을 단박에 이해했다.
언제가 만날 인연이면 발길이 가지 않을까 싶다.
나는 라다크가 나와 인연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8시간 뉴델리행 비행기를 타고 다시 라다크로 가는 국내선으로 비행기로 갈아탔었다. 한국에서 출발한 지 2박 3일 만에 도착한 라다크. 그곳의 이야기를 잊혀지기 전에 말하고 싶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아늑한 햇볕이 내리쬐는 라다크에 가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