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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림 Oct 26. 2019

다시 태어나도 우리

모든 이야기는 사소한 일에서 시작된다


라다크에 뭐가 있나요


문득 라다크에서 보낸 시절이 지나간 첫사랑처럼 떠오르는 것 보면 나는 꽤나 라다크에 대한 상사병을 앓고 있다. '라다크에 뭐가 있길래 나는 라다크로 갔을까?'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라다크가 어디에 있어요? 거기에 뭐가 있어서 갔어요?" 한 마디로 말할 수 없겠지만, 끌림이었다. 끌림은 '끌리다'의 활용어다.《표준국어대사전》에 '끌리다'를 찾아보면  "잡아당겨 움직이게 하다."라고 말한다. 내 마음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한 말이 있을까? 이러저러해서 가게 되었다 한들 내가 라다크로 간 이유를 꽤나 합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라다크에 가게 된 건 정말 가슴이 시키는 거였다. 라다크는 내가 사랑하는 친구들이 있는 곳이자, 오래된 정(情)을 만난 곳이다. 그곳에는 오랜 세월 현대문명과 거리를 둔 사람이 살아온 투박하지만 소박하고 검소한 문화가 있다. 이웃 간 내 일 네 일이 구분이 없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마치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동네에서 아이들이 키우듯이 말이다. 여기 사람들은 마을 사람 이름을 다 알고 있었다.


 우르갼과 앙뚜와의 만남


이렇게만 말하면 너무 싱거운 이야기일 테니까, 내가 라다크로 갈 수밖에 없었던 하나의 사건을 꺼내본다.

모든 이야기는 사소한 일에서 시작된다. 2017년 10월 티베트 문화를 다룬 영화 한 편이 세상에 나왔다. 문창용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였다. 이 영화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영화 포스터는 '환생한 소년, 아이를 모시는 노승 전생을 찾아 나선 아름다운 여정'이란 타이틀로 소개되었다. 두 라마승이 마주 보며 웃는 포스터 사진은 이 영화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몰라도 보고 나면 마음 따뜻해질 거라는 막연한 예감이 들었다.

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 영화 포스터

나의 버킷리스트에 '티베트로 순례'가 있었던 만큼 라마승의 등장만으로도 내 관심을 끌었다. 지금의 티베트는 중국 통치를 받기 때문에 자유여행으로는 밟을 수 없는 땅이다. 외국인은 중국 공안의 통제 아래에 단체여행으로만 움직일 수 있고, 중국 본토에서 티베트로 들어가려고 할 때도 별도의 허가서를 받아야 가야 할 만큼 이동의 자유가 없다. 그렇기에 티베트 문화가 고스란히 간직되고 있는 라다크에 자연스레 눈길이 갔으리라.


영화는 히말라야 산맥에 자리 잡은 인도 최북단의 라다크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졌다. 소년 앙뚜와 노승 우르간이 함께 걸어간 여정을 담고 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문창용 감독이 이 두 사람과 8년을 함께하며 제작한 영화였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내가 마치 그 공간에 같이 머무는 듯한 인상을 받을 만큼 배우가 아니라 실제 인물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였다. 영화 첫 장면은 린포체(Rinpoche)을 풀이하는 자막으로 시작되었다.


린포체란 전생의 업을 이어가기 위해 몸을 바꿔 다시 태어난 티베트 불가의 고승입니다.


린포체은 바로 어린 앙뚜다. 전생에 살던 사원에서 제자들이 찾아와 린포체을 모셔 가야 하지만, 앙뚜의 전생 사원은 중국의 억압에 있는 티베트에 있어 그를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그가 가짜 린포첸이라며 수군거렸다. 결국, 앙뚜를 보살피는 스승 우르간은 어린 제자와 함께 전생의 사원을 찾으러 티베트로 험난한 여정을 떠난다. 두 달여간 두 사람의 동행이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이야기다.     

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에서 린포체 '앙뚜'와 스승 '우르간'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히말라야 설산을 걷는 두 사람을 보면서, 가슴 한 켠이 먹먹해져 왔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고 누군가가 건너온 현실이기에 이렇다 할 장비 없이 배낭 하나 짊어지고 길을 가는 어려움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귓가를 때리는 날카로운 바람소리와 눈을 뜨지 못할 정도의 눈보라에도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고 희망을 다시 노래했다. 더 큰 세상을 만나기 위해 두 사람은 어느덧 헤어짐을 준비했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는 게 세상 이치다. 이별의 끝자락에서 앙뚜는 스승 우르갼에게 이렇게 말한다.

함께여서 힘들지 않았어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한 대답이 있다면 '함께'가 아닐까.

스승을 바라보는 천진난만한 앙뚜의 눈빛이 너무나 강렬해 마치 눈 앞에서 보는 듯 했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뭔가 가르치려고 하지 않아도 느끼고 배우게 되는 것은 사랑이구나 싶었다. 두 사람을 통해 무언가 내 가슴에서 꿈틀 하는 것을 느꼈다.


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에서 아홉 살 소년 '앙뚜'


그 이후, 나는 라다크에 관련된 몇 권의 책을 읽었고 다큐멘터리 영상을 더 찾아보게 되었다. '다시 태어나도 우리' 영화를 본 지 1년이 흘렸다. 2018년 12월 26일, 나는 라다크로 가기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배낭여행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고 싶어 하는 인도를 내가 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나는 그렇게 모험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가지 말라는 데는 안 가고 하지 말라는 것은 안 하는 사람이다. 소심하고 겁도 많고 고소공포증까지 있는 그런 평범한 사람이다. 그런 내가 라다크로 가기 위해 안 하던 일을 벌였다. 항공권을 끊으니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라다크로 가기 위해서는 인도 뉴델리를 거쳐 국내선으로 갈아타야 했다. 라다크에서 보낸 3주간이 지금 생각해보아도 꿈같다. 그만큼 비현실적인 풍광과 일들이 펼쳐졌으니까. 뉴델리에서 라다크가 있는 레(Leh) 공항으로 가는 하늘 길, 나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히말라야 지붕을 날아가 있었다.


라다크로 가는 하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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