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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림 Nov 04. 2019

내 생애 최고 운전기사

한국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라예요

거기까지 모든 게 순조로웠다


나는 무사히 레에 도착한 것만으로도 안도감이 들었다. 이 모든 게 감사했다. 레공항에 도착해서 1시간이 넘어도 내 가방이 보이지 않았다. 공항 직원에게 물어보니 수화물 칸에 부친 배낭이 내가 타고 온 비행기에 같이 실리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요? 언제 도착하나요? 제가 어떻게 연락 취하면 되나요?" 침착하게 얘기를 했다. 내 수중에는 작은 핸드백과 침낭만 달랑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다. 더 놀랄 일이 없었서일까.


오늘 새벽 4시 반, 새벽 찬 공기가 느껴졌다. 뉴델리에서 마지막일지도 모를 따뜻한 샤워를 했다. 라다크로 가면 핫 샤워를 못할지도 몰라. 네팔 트레킹 경험으로 고산에서 샤워도 머리 감기도 하면 안 되는 걸 알았기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이 시간이 더 소중했다.  아침 7시 비행기라, 짐을 재빨리 꾸렸다.


로비로 내려가니 호텔 프런트에 말했던 택시가 이미 와 있었다. 거기까지 모든 게 순조로웠다. 공항 가까운 숙소를 잡았기에 새벽시간인지라 뉴델리 공항에 15분 만에 도착했다. 차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무언가 허전했다. 침낭을 두고 온 거였다.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물건이 아니었다. 더구나 이번 여행을 위해 몇 주를 온라인 사이트 장바구니에 담았다가 고심 끝에 큰 마음먹고 산 침낭이었다. 택시 기사님에게 다급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다시 호텔로 차를 돌렸다. 다시 호텔로 돌아가는데 10분, 벨보이가 객실로 올라가 찾아오는데 5분이 걸렸다. 무사히 5시 45분에 공항에 도착했다.

뉴델리 공항

숨을 돌릴 수 있는 여유는 잠깐이었다. 눈 앞에 아찔한 광경이 펼쳐졌다. 입국심사 마냥 공항터미널에 길게 늘어선 줄이 보였다. 직감적으로 긴 줄을 피할 수 없겠구나 싶었다. 따라 섰다. 인도는 신분증과 비행기 티켓을 확인하고 들여다 보내준단다. 우리나라 공항 입국장처럼 바로 들어갈 줄 내 멋대로 생각했던 것부터가 착오였다. 입술은 빠짝 마르고 초조한 마음으로 차례를 기다렸다. 마침내 네 차례가 왔다. 레로 간다고 하니, 터미널 입구를 지키는 군인이 손으로 다른 입구로 가라고 한다. 같은 터미널인데 입구가 다르다니! 이게 뭐지 싶었지만, 여기는 외국이었다. 총기를 소지한 군인 말에 따를 수밖에. 옆 입구로 뛰어갔다. 다시 줄을 섰다. 드디어 내 차례가 오나 싶었다.


뉴델리 공항 터미널 앞

이럴 수가! 항공권을 확인하는데 도착지가 '레'라고 한국어로 써져 있던 게 발목을 잡았다. 항공권에 힌디어나 영어로 되어 있지 않기에 확인해 줄 없다고 했다. 항공사 카운터 가서 문의하란다. 비행기 출발시간이 7시라고 통사정을 해봐도 소용이 없었다. 호텔에 짐을 두고와 다시 갔다 오느라 시간이 더 촉박해져 있었는데, 맙소사 마음이 극도로 초조해졌다. 다행히 내가 타고 갈 비스타라 항공사 카운터를 바로 찾았다. 항공권 티켓을 영어로 프린트했다. 그제야 나는 뉴델리 공항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탑승수속만 무사히 이루어지기를 바랐다. 아직 짐 부치기가 남아 있었다. 등산스틱을 배낭 밖에 걸치게 넣었던 것이 심사에 걸렸다. 스틱을 배낭 안에다가 넣으라고 했다. 배낭 밖으로 뾰족한 물건이 실리면 안 되는 것을 급하게 나오느라 잊고 있었다. 다시 짐을 풀고 스틱을 넣으면서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배낭 무게가 15kg 되는 데다가 마음이 다급해지니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가까스로 스틱을 집어넣었다.


마음이 급하면 눈 앞이 캄캄하다


산 너머 산이라고 했던가. 소지품 검사가 남아 있었다. 여자와 남자를 엄격하게 구분해 커튼이 쳐진 칸막이에서 심사를 받았다. 공항직원이 남자에게는 벨트를 미리 풀라고 까지 했다. 나는 얼마나 껴입었겠는가. 한겨울에 히말라야를 간다고 나셨으니. 외투란 외투는 다 벗어야 검색대 통과가 가능했다. 심지어 신고 있던 등산화까지 벗어보라고 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검색대를 겨우 빠져나왔다.


게이트를 향해 전속력으로 뛰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향해 정신없이 달려가는 장면처럼 있는 힘껏 달려갔다. 그때 누가 멈춰 세웠다. 게이트가 몇 번이냐고. 1분 1초가 다급했지만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가야 했기에 탑승권을 보여주었다. 그가 대뜸 뒤에 타란다. 그제야 그가 전동카트를 타고 있다는 게 보였다. 마음이 급하면 눈 앞이 캄캄하다는 말, 그 말이 맞았다.  


그를 만난 건 정말 행운이었다. 내 생애 최고의 운전기사였다. 그는 인도인 특유의 너스레를 떨며 무엇인가 말을 걸어왔는데, 나는 넋이 반쯤 나간 상태라 잘 들리지 않았다. 그나마 알아들은 건 '한국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라예요. 당신이 한국인임을 알아봤어요.' 그 정도였다.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놓였다.  
초조했던 내 얼굴에 비로소 미소가 번졌다.

공항에서 나를 찾는 남자


게이트에 도착하자마자, 정장 입은 한 남자가 내게 뛰어오며 다가왔다.


 "MS. KIMJAELIM?"


그는 나를 찾고 있었다. 그가 이끄는 대로 엘리베이터를 탔다. 게이트에서 탑승수속은 생략되었다. 좀 전에 엘리베이터에서 왜 나를 찾았냐고 아무것도 모르고 물어봤던 게 미안해져 왔다. 탑승 소속 마감이 6시 30분이었는데, 내가 게이트에 도착한 시간이 탑승시간을 훌쩍 넘겼던 거였다. 민폐를 끼쳤다든 생각에 낯뜨거움이 밀려왔다. 내가 좌석에 앉으니 곧바로 비행기가 이륙 준비를 했다.                                                                      


1시간이라는 짧으면 짧은 시간 동안 벌어진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호텔에서 짐만 잘 챙겼어도 이렇게 늦지 않았을 텐데... 터미널 입구에서 거부당하고, 짐 부치기에서 애를 먹고. 공항에서 보낸 시간이 마치 긴 하루 같았다. 만약 다시 내가 레에 간다면 '델리 공항에서 노숙을 하는 한이 있어도 바로 레로 가야지.' 그때 마음먹었다. 땀을 식히고 있으니, 승무원의 기내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탑승한 것만 해도 굿모닝


"Good Morning"


굿모닝이라는 말이 정말이지 굿모닝이었다. 이렇게 비행기탑승한 것만 해도 굿모닝이었다. 레에 도착해서는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시고 한숨 푹 자야겠다 싶었다.                                                                                                        

12월 26일 비행기 날개 끝으로 해가 밝아왔다. 찬란한 빛이 들어왔다. 창가로 히말라야가 고스란히 내려다 보였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신들의 산이 보였다. 아름답다는 표현으로 부족하다. 히말라야는 고대 산스크리트어 '눈'을 뜻하는 '히마(hima)'와 '거처'를 뜻하는 '알라야(alaya)'의 낱말이 결합된 복합어이다. '눈의 거처'라는 말 그대로 계곡 사이로 얼어붙은 강줄기가 보였다.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레까지 비행시간 90분이 순식간에 흘렸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12월의 라다크 전경


 공항의 첫인상

레(leh) 공항은 특별했다. 라다크가 파키스탄과 접경지역이어서인지 군사시설로 간주되어 공항 전경 촬영은 금지되었다. 분위기는 우리나라 시골 시외버스터미널 같았다. 뺨을 스치는 바람이 찼다. 공항 대기실에 앉아 있으니 잠시 후 손이 시리웠다. 주변을 둘러보니 탑승객들도 어느새 중무장을 했다. 사람들이 목도리에 장갑에 모자까지 썼다.                                                                                                                                        

내가 타고 온 탑승 편에 수화물이 다 내려진 것 같은데 한참을 기다려도 내 배낭이 보이지 않았다. 내 배낭이 없다고 공항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에게 말했다. 그녀가 여기저기 전화하며 알아보더니, 내게 말해주었다. "탑승수속이 늦어져 수화물이 다음 편 비행기에 실렸다고. 내일 다시 공항에 오세요." 수화물이 없어진 것도 아닌데, 이런 일은 내게 더 이상 별 일이 아니었다. 내일 다시 오지 싶었다. 아침에 있었던 일에 비하면 하루쯤 수화물이 늦게 온다는 건 아무 일도 아니었다.



레 공항터미널, 짙고 푸르른 하늘이 맞이했다

그녀의 연락처를 받아 쥐고서, 나는 공항을 나왔다. 푸르디푸른 하늘이 나를 맞이했다. 유화로 그린 듯 짙고 선명한 파란 물감을 풀어놓은 듯했다. 검붉은 라다크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꽤 많이 보였다. 배웅 나온 사람, 마중 나온 사람들이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사람들 인상에서 어딘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나는 어깨에 걸친 핸드에서 예약해둔 게스트하우스 주소를 꺼내 들었다.


Morning Sky Guest House Horpe House

Sankar Near Lamdon Model School, Leh, 194101, India

+91 96229 58135


하얀 집, 모닝스카이 게스트하우스 

뉴델리와 달리 라다크에서는 택시요금을 기사와 협상할 필요가 없었다. 공항에서 레 시내까지 요금이 통일되어있었다. 공항 앞 택시 요금소에 500루피를 내니, 영수증 같은 종이쪽지를 주었다. 짐이 없었기에 침낭만 품에 안고 택시에 올라탔다. 택시는 공항 활주로처럼 잘 닦여진 고속도로를 달렸다. 공항이 마치 요새처럼 산들로 에워싸여 있어서 주변 경관을 볼 수 없었는데, 택시를 타니 탁 트인 산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택시를 타고 달리다 보니 마음에도 어느새 바람이 불어와 상쾌했다.                                                                                                                 

속소는 공항에서 5km 정도 떨어져 있었다. 택시가 하얀 삼층집 앞에 멈추었다. 대문은 갈색에 가까운 검붉은 색이었다. 친절하게도 문 앞에 모닝스카이 게스트 하우스라고 쓰여 있었다. 모닝 스카이 게스트하우스와 인연이 시작되었다. 아직 아침 10시 밖에 안된 시간이었다. 체크인 하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만, 추운 겨울 날 다른 방도가 없었다. 커다란 철문을 조심스레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레 시내에서 1km 떨어진 모닝스카이 게스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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