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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림 Jan 18. 2020

칠링네 가족

라다크를 사랑하게 된 까닭

칠링네 가족과 첫만남

커다란 철문을 열고 모닝스카이 게스트 하우스 현관에 들어섰다. 그때를 돌이켜 보니, 게스트하우스라기 보다는 마치 친구네 집을 찾아가는 길 같았다. 아침이라 조용했다. 현관문 앞에 서서 사람을 찾아  "Hello"  하던 찰나, 하얗고 환한 미소를 지닌 여자주인이 나왔다. 작은 키에 아담한 몸집의 그녀 이름은 칠링이었다. 칠링은 거실로 나를 안내해주었다.


거실로 들어가는 순간, 내 눈앞에 또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겨울 특유의 길고 부드러운 햇살이 거실을 가득 채웠다. 아침햇살이 황금색 커튼에 드리워지니 마음까지 따사로웠다. 사람의 체온 같은 32.5 온도가 감돌았다. 거실 한 가운데에 난로가 자리잡고 있었다. 라다크 전기 사정이 좋지 않아 히터나 가스난로를 쓰는 집도 있지만, 야크똥과 나무를 연료로 한 난로를 보니 반가웠다.

모닝스카이게스트하우스 거실

가져고 온 짐이 따로 있는 건 아니었기에 바로 창문 밖 풍경을 보러 나갔다. 처음으로 가까이서 마주 본 라다크의 전경이었다. 너무 름다우면 그림 같다고 하지 않가. 이렇게 만년설이 쌓인 히말라야 설산을 마주할 줄이야. 신성(神聖)을 만나면 이런 느낌일까. 두 발을 땅에 딛고 있어도 비현실적이었다.


이내 칠링의 안내를 받아 3층 끝방으로 올라갔다. 일정이 어떻게 될지 몰라 하루만 예약했는데 라다크에 있는 3주 내내 머물게 될 줄 그 때는 몰랐다. 단순하고 소박한 방이었으나 사방으로 둘러싼 설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었다. 나무창틀 사이로 하얀 카닥이 소리없이 나부끼고 있었다. 문을 열 때 만(卍)자를 보고 이 가족들이 불교도인지 알았지만, 카닥을 보니 또다른 환영 인사를 건네 받듯 했다. 침대 위에 랑이 이불이 덮여져 있었는데 일명 할머니 담요를 보니 슬며시 미소가 번졌다. 새빨간 바탕에 화려한 모란꽃이 그려져 있는 그때  그 시절 덮었던 담요였다.

모닝스카이게스트하우스 내부


칠링이 차가 준비 되었다고 불렀다. 새벽 4시에 일어나 공항에서 애간장을 태웠으니, 내에서 간단하게 빵을 먹었는데도 허기가 졌 터였다. 칠링은 따뜻한 밀크티와 파운드 케잌 내놓았다. 아기자기한 찻잔도 예뻤지만, 난롯가 앞에 앉아 마시는 밀크티 맛은 일품이었다. 나중에도 식사 때 밀트티가 없으면 무언가 빠진듯 허전했다. 라다크 사람들 일상에서 밀크티는 빠질래야 빠질 수 없 차문화이기도하다.


라다크에서 처음 먹은 음식, 밀크티와 파운드 케잌

그립고 그리운 땅

칠링은 처음  사람 같지 않게 다정한 엄마 같았다. 그녀의 달 눈웃음 깊고도 빛났다. 빛과 달리 손은 고된 일을 해서인지 손가락 마디가 굵 거칠다. 그녀의 큰 딸 도커 방학을 맞아 뉴델리에서 온 작은 딸 라지스트가 집안일을 거들고 있었지만 내가 본 칠링은 아침에 눈을 뜨면 잠시도 앉아 쉬는 법이 없었다. 칠링은 간호사로 레 시내에 있는 병원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야간 근무를 마치면 아침에 집으로 돌아와 게스트하우스 손님 응대를 하고, 주간 근무면 마치고 와서 손님들의 저녁식사를 쉴새없이 챙겼다. 칠링의 남편 타쉬도 부지런했다. 부엌일도 마다하지 않고 요리하고, 장을 보고, 여기저기 집 수리를 하고, 빨래를 하고. 이들을 통해 자신의 일을 그냥 묵묵히 해내는 사람만이 주는 울림을 배웠다. 아름답고 숭고한 일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라다크가 척박한 땅이라 물질적으로 넉넉하지 않지만 내 눈에는 지금껏 보아온 어떤 사람들 보다 행복해 보였다. 소득이 많거나 여가 시간이 긴 것도 아니다. 다만 가족들이 쉬는 날이면 곰파를 찾아가 부처님께 공양을 빠지지 않고 올렸다. 또 아침을 시작하기 전에 불전에 향을 피우고 기도를 드렸다. 이런 신심만으로 감동을 받은 게 아니다.

칠링네 가족

내 집에 찾아온 손님가족처럼 대해주었다. 말로는 쉽지만 행동으로 실천하기에 어디 쉬운 인가. 저녁이면 온가족이 함께 저녁을 준비하고 둘러앉아 저녁을 먹으며 내음을 부대끼며 살더라. 속에서 내가 느낀 것은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다른 차원의 사랑이었다. 손님을 돌봐주는 자신의 일을 뛰어넘어서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꿈같은 시간이었다. 내가 라다크를 사랑하게 된 건 히밀라야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가족지도. 라다크는 내게 그리운 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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