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봉산은 산청읍에 우뚝한 산봉우리로 마을주민들이 애용하는 산책로이다. 산꼭대기 전망대를 올려다 볼 때마다 왜 저런 곳에다 정자를 세웠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곤 했었다. 수년 째 산꼭대기를 바라만 보다가 마침내 오늘은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올라가보기로 했다.
산청읍은 지리산 줄기인 필봉산(858m)과 왕산(923m), 웅석봉(1099m)으로 둘러싸인 아담하고도 정감 넘치는 고을이다. 마을 옆을 경호강이 굽이쳐 흐르면서 한 폭의 그림을 연출한다. 어쩌다 산청을 찾는 여행객들은 산과 강이 어울어진 풍경에 감탄하지만 정작 이곳에 오래 살다보면 타성에 젖고 무뎌져서 좋은 줄을 잊고 만다.
꽃봉산 오르는 계단과 쉼터
급히 점심을 먹고 사무실을 나섰다.
지난주가 입춘이었다. 가까운 하동에는 황매화가 피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산청은 여전히 바람이 차고 밤낮으로 강물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했다. 그래도 하루하루 햇살과 바람내음은 달랐다. 머잖아 봄기운이 천지에 색색의 꽃망울을 터트리며 환히 퍼질 것을 알기에 가슴이 뛰었다.
이런! 등산로 입구부터 가파른 오르막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을 올려다 본 순간 잠시 흔들렸다.
'저길 어떻게 올라간담? 그냥 가지 말까?'
짧은 고민 끝에 일단 오를 수 있을 때까지만 올라가기로 했다. 몇 계단 오르고 쉬고, 다시 몇 계단 오르고 쉬고…,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골랐다. 인적이 드물어서 마스크를 벗고 걸어도 괜찮았다. 소나무숲에서 맡는 공기에 콧속이 시큰하면서 상쾌했다. 중간쯤 올랐을 때 작은 쉼터가 보였다.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경호강 물줄기와 마을 논밭
쉼터 벤치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올라갔다.
저만치 우뚝 선 꽃봉산 전망대가 나를 잡아끌었다. 그렇게 두어 번 오르락 내리락 하다보니 어느새 정상이었다. 정상까지 20분 남짓 걸렸다. 등산로가 가팔라서 그만큼 정상도 가까웠다.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에 입이 절로 벌어졌다. 붓끝처럼 뾰족한 필봉산이 선명하게 마주 보였고, 높다란 산봉우리가 물결치면서 구불구불 이어졌다. 경호강줄기를 따라 옹기종기 모인 집들과 누릿한 빛깔의 들판이 사뭇 정겨웠다.
내가 매일 출근하는 3층건물도 발 아래 조그맣게 보였다.
멀리서 보면 저렇게 작은데, 저 안에 있을 때는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속을 끓인 적이 많았다. 울적하거나 마음 복잡할 때면 여기 올라와서 저 아래를 내려다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