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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화 Jan 06. 2022

뷰(view)값이 삼천만원!

거실소파에서 바라보이는 원지강변 풍경

도시에서 살 때부터 아주 신물나게 이사를 다녔다. 주민등록등본(과거의 주소변동이 포함된)을 뽑아보면 무려 세 장이나 된다. 그것도 빼곡하게! 한 해에 세 번을 옮긴 적도 있다. 수도와 화장실이 밖에 있는 단칸방과 습한 반지하방에도 살았고 주택과 아파트를 가리지 않고 옮겨다녔다. 횟집과 피부관리샵이 맞붙은 상가건물에서 살 때는 밤마다 횟집 술손님들이 내지르는 소음에 귀를 틀어막고서 시들시들 말라갔다.    

 

여기 시골에 와서도 여섯 번을 옮겨다니고서야 내 집을 장만했다. 이사비용도 만만찮고 더는 옮겨다닐 기운이 없어 결국 집을 사고 말았다. 대출이자가 월세보다 저렴하기도 했지만, 지금 사는 집을 보러왔을 때 베란다창으로 보이는 뷰(view)가 끝내주게 좋았다. 같은 동 3층보다 8층이 3천만원이나 비쌌다. 사흘 밤을 고민하다 8층을 선택했다. 뷰 값으로 3천을 지불한 셈이다. 대출금상환기간이 15년에서 20년으로 늘었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아파트베란다에 서면 경호강과 양천강 두 개 강줄기가 굽이져 흐르다가 눈앞에서 합쳐지는 게 보인다. 내 집 거실소파에 앉아 강물을 바라보는 일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행운이 아닐 것이다. 강은 사계절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흘렀다. 희뿌연 안개에 휩싸이기도, 부신 햇살에 윤슬을 튕겨내기도, 시간이 멈춘 듯 적막하기도, 한겨울엔 꽁꽁 얼어 새하얗게 굳어있기도 했다. 해질녘 강물은 하늘과 하나 되어 붉었다. 선홍빛이 점점 짙어져 먹빛이 될 때까지 창밖을 바라보고 있으면 오래 잊었던 그리운 얼굴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벗들이 집에 와서 그런다. ‘이 집에 오래 살면 우울증이 도지겠다’고.     


그런데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우울증 같은 건 걱정 안 해도 되었다. 매월 나가는 대출금과 이자를 갚으려고 직장을 구했다. 주중에는 매일아침 출근해서 종일 직장에서 보내고 휴일은 밀린 집안일과 자잘한 행사로 나다니느라 창밖을 바라볼 시간이 없다. 

며칠 전 휴가를 내어 종일 집에서 보냈다. 한낮이 되자 햇살이 창으로 가득 들어와 봄날인 듯 따스했다. 커피를 내려 창가에 의자를 끌어다놓고 앉아 얼음이 풀리는 강을 바라보며 마셨다. 저 멀리 겹겹이 포개진 지리산봉우리가 이제야 또렷이 보였다. 문득 회의감이 밀려들었다. ‘이렇게나 멋진 뷰를 두고 밖으로만 떠돌아야하다니!’     


그렇다고 지금이 불행하지는 않다. 다시 이삿짐을 싸지 않아도 된 것만으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거기다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는 삼천만원짜리 뷰가 눈앞에 펼쳐져 있으니 이것만으로도 배가 부르다. 다만 올해는 삼천만원짜리 뷰를 야금야금 누리고 살아야겠다. 마냥 흘려보내기는 너무나 아까운 풍경이니까. 


안개 깔린 강
노을 지는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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