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께 <나에게 폭력을 가르친 건 다름 아닌 당신이었다>(1)
<6학년 3반 담임 선생님께>
참 이상하지요. 초등학교 때 선생님 중 그 누구의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데 당신의 얼굴만은 또렷이 기억합니다. 하얀 파우더가 곱게 먹은 피부와 항상 화 나있던 눈, 빨간 립스틱을 바른 입술.
그리고 그 빨간 입술로 하던 말.
"직업에는 귀천이 있다!"
선생님 말이 하늘의 뜻인 줄 알았던, 고작 13살 먹은 아이들을 앉혀 놓고 교단에 서서 단호히 말씀하셨죠.
학기초 나눠 주는 가정통신문에는 `아버지` 직업을 적어야 하는 칸도 있었어요. 그것도 모자라 공개적으로 손을 들어 `아버지` 직업군을 나누어 놓기도 했었죠. 그 무례한 방식에 노출되어 있던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쐐기를 박았어요.
"직업에는 귀천이 있다!"
우리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쟤네 집은 연탄 땐데."
"아니야 우리 집 보일러 때."
따위로 말다툼을 하기도 했고요.
방학 때 해외여행을 다녀온 아이 주위에는 친구들이 늘어났어요.
반장을 하려면 반 아이들에게 햄버거 세트를 돌려야 하는 건 물론이었지요.
학교를 중심으로 아랫동네에 사는 아이들과 윗동네에 사는 아이들은 암묵적으로 조금씩 멀어졌어요.
나는 이상했어요.
직업에 귀천이 있다면 선생님이란 직업은 귀와 천사이 어디쯤에 있는지 묻고 싶었어요. 꿈이 뭐냐고 물으면 왜 의사, 교사, 과학자 중에서 택 1해야 하는지 묻고 싶었어요. 그럴 거면 씨발 뭐하러 남의 꿈을 묻는 건지 궁금했어요. 그까짓 거 없으면 뭐 어때요. 그놈의 귀한 직업이 대체 뭔지 꿈 꾸기도 부담스럽네.
그나저나 선생님, 그래서 그렇게 항상 눈이 화가 나 있었구나.
뉘 집 자식이 귀한지 천한 지 가려내느라.
<2학년 4반 담임 선생님께>
나는 교실에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누가 뒤에서 내 교복 상의를 위로 훅 들춰 올렸어요. 그리고는 맨살이 다 드러난 내 등짝을 아주 세게 후려쳤어요. 나는 깜짝 놀랐어요. 왜 벗겨요? 왜 때려요? 가만있는 사람을.
그리고는 반 아이들 앞에서 나한테 막 악을 썼어요.
"왜 속에 나시 티 안 입었어? 브래지어가 다 비치잖아!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교복 속에 나시 티 입고 다녀! 알았어?"
아 시 진짜 놀랐네.. 나는 또 내가 깜빡하고 브래지어도 안 하고 온 줄 알았잖아요. 내 속옷이 비치는 게 선생님을 되게 속상하게 했나 봐요?
아니, 그렇다고 그게 반 친구들 앞에서 옷까지 벗겨가며 할 짓이에요?
아 뭐, 수치심 같은 걸 줘서 다시는 그러지 못하게 하고 싶었다고요?
대단하다 진짜.
<3학년 2반 담임선생님께>
3학년 새 학기, 처음으로 담임 선생님을 만나는 날!
아는 얼굴, 모르는 얼굴의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느라 교실은 떠들썩하고
조례시간을 알리는 종이 치면 저 교실 앞문을 열고 어떤 선생님이 들어오실지 다들 두근두근 한 마음으로 문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키가 크고 강한 인상의 멋진 체육 선생님.
학교 일과 별도로 냉면집까지 운영하고 계시는 활력이 넘치시는 분!
낯설고 반가운 첫 만남에 조용히 선생님만 말똥말똥 바라보고 있는 우리들에게 선생님이 한 말씀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너희들 지금부터 열심히 하면 뭐든지 할 수 있고 뭐든지 될 수 있어!
남학생들, 너희들 열심히만 해봐 충분히 대통령 될 수 있어.
여학생들, 너희들도 열심히 하면 충분히 영부인 될 수 있어."
아… 이건 또 뭐야.
P.S 당시 체육선생님으로는 드물게도 여선생님이셨다는 것도 밝혀두지요.
글/ 그림 : 두시 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