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시언니 Jan 21. 2020

직업에는 귀천이 있다.

선생님께 <나에게 폭력을 가르친 건 다름 아닌 당신이었다>(1)







<6학년 3반 담임 선생님께>



참 이상하지요. 초등학교 때 선생님 중 그 누구의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데 당신의 얼굴만은 또렷이 기억합니다. 하얀 파우더가 곱게 먹은 피부와 항상 화 나있던 눈, 빨간 립스틱을 바른 입술.

그리고 그 빨간 입술로 하던 말.  



"직업에는 귀천이 있다!"


선생님 말이 하늘의 뜻인 줄 알았던, 고작 13살 먹은 아이들을 앉혀 놓고 교단에 서서 단호히 말씀하셨죠.

학기초 나눠 주는 가정통신문에는 `아버지` 직업을 적어야 하는 칸도 있었어요. 그것도 모자라 공개적으로 손을 들어 `아버지` 직업군을 나누어 놓기도 했었죠. 그 무례한 방식에 노출되어 있던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쐐기를 박았어요.

"직업에는 귀천이 있다!"

우리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쟤네 집은 연탄 땐데."

"아니야 우리 집 보일러 때."

따위로 말다툼을 하기도 했고요.


방학 때 해외여행을 다녀온 아이 주위에는 친구들이 늘어났어요.

반장을 하려면 반 아이들에게 햄버거 세트를 돌려야 하는 건 물론이었지요.


학교를 중심으로 아랫동네에 사는 아이들과 윗동네에 사는 아이들은 암묵적으로 조금씩 멀어졌어요.




나는 이상했어요.

직업에 귀천이 있다면 선생님이란 직업은 귀와 천사이 어디쯤에 있는지 묻고 싶었어요. 꿈이 뭐냐고 물으면 왜 의사, 교사, 과학자 중에서 택 1해야 하는지 묻고 싶었어요. 그럴 거면 씨발 뭐하러 남의 꿈을 묻는 건지 궁금했어요. 그까짓 거 없으면 뭐 어때요. 그놈의 귀한 직업이 대체 뭔지 꿈 꾸기도 부담스럽네.




그나저나 선생님, 그래서 그렇게 항상 눈이 화가  있었구나.

  자식이 귀한지 천한  가려내느라.











<2학년 4반 담임 선생님께>

 

나는 교실에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누가 뒤에서 내 교복 상의를 위로 훅 들춰 올렸어요. 그리고는 맨살이 다 드러난 내 등짝을 아주 세게 후려쳤어요. 나는 깜짝 놀랐어요. 왜 벗겨요? 왜 때려요? 가만있는 사람을.

그리고는 반 아이들 앞에서 나한테 막 악을 썼어요.


 

" 속에 나시   입었어? 브래지어가  비치잖아!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교복 속에 나시  입고 다녀! 알았어?"


아 시 진짜 놀랐네.. 나는 또 내가 깜빡하고 브래지어도 안 하고 온 줄 알았잖아요. 내 속옷이 비치는 게 선생님을 되게 속상하게 했나 봐요?

아니, 그렇다고 그게 반 친구들 앞에서 옷까지 벗겨가며 할 짓이에요?

아 뭐, 수치심 같은 걸 줘서 다시는 그러지 못하게 하고 싶었다고요?

대단하다 진짜.












<3학년 2 담임선생님께> 



3학년 새 학기, 처음으로 담임 선생님을 만나는 날!

아는 얼굴, 모르는 얼굴의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느라 교실은 떠들썩하고

조례시간을 알리는 종이 치면 저 교실 앞문을 열고 어떤 선생님이 들어오실지 다들 두근두근 한 마음으로 문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키가 크고 강한 인상의 멋진 체육 선생님.

학교 일과 별도로 냉면집까지 운영하고 계시는 활력이 넘치시는 분!

낯설고 반가운 첫 만남에 조용히 선생님만 말똥말똥 바라보고 있는 우리들에게 선생님이 한 말씀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너희들 지금부터 열심히 하면 뭐든지   있고 뭐든지   있어!


 남학생들, 너희들 열심히만 해봐 충분히 대통령   있어.



 여학생들, 너희들도 열심히 하면 충분히 영부인   있어."






이건  뭐야.


P.S 당시 체육선생님으로는 드물게도 여선생님이셨다는 것도 밝혀두지요.
















글/ 그림 : 두시 언니







작가의 이전글 모든 창문의 불이 켜지길, 그 빛이 서로를 지켜주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