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가 되고 난 이후 내가 한 일은 100%가 '나쁜놈'을 변호하는 일이었다.
요즘은 수사기법이 정말 많이 발달해서 예전에 TV에서 보던 것처럼 정말 억울한 상황인데도 수사기관의 압박과 횡포에 못이겨 거짓으로 자백을 하고 처벌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유죄의 증거는 핸드폰, 컴퓨터, DNA, CCTV영상을 통해 쉽게 수집된다.
그러다보니, 변호사는 '결백한 사람'을 변호할 기회가 거의 없다. 특히 사선변호사(나라에서 선임해주는 국선변호사 말고 자신이 돈을 내고 선임하는 변호사)를 선임하는 목적은 대부분 자기가 100만큼 잘못했는데도 수사기관에서는 50정도의 증거를 찾아 처벌하려는 상황에서 10정도만 처벌받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나는 실제로 '나쁜 놈'이 아닌 의뢰인을 변호해 본 적은 거의 없다.
Q. 범죄자들을 변호할 때 어떤 생각을 해요? 범죄자를 왜 변호해요?
이 질문은 내가 같은 법조계에 몸담고 있지 않은 소개팅남을 만났을 때 빠짐 없이 들었던 질문이다. 어차피 이미 너무 나쁜 사람인데 변호를 해주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는 않는지, 왜 그런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변호를 해주는지, 너무 비윤리적이지 않은지 등...(한숨)
이런 질문을 받으면 맥이 탁 풀린다. 모범답안으로는 '아무리 죄를 지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유죄가 확정될 때 까지는 무죄로 추정되어야 하고, 심지어 죄를 지은 사실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변호인을 선임해 대응할 권리가 있으니까요', 등이 있지만 실제로 나의 내면의 진실에 가까운 대답은 '다들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와 '일이니까요'이다.
형사변호사로서 사건을 맡아서 진행할 때는 범죄자가 "나쁜 사람", "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나 의뢰인을 옳고 그름의 범주에 내려 놓고 사건을 맡지는 않는다. 진짜로 사실에 가까운 자세라고 한다면 적어도 형사사건을 맡은 상황에서는 의뢰인이 자신이 지은 죄를 넘어서는 처벌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때 부당하게 더 중한 처벌을 받지 않게 하는 것이다.
죄를 지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또는 아무리 큰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누군가는 마지막으로, 조금이라도 그 사람의 편을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주고, 아무리 말 같지 않은 말처럼 들려도 사실인 것 처럼 믿어주고, 세상이 다 자신을 미워하고 밀어낸다고 해도 누군가는 자신의 편이 되어준다는 사회적인 안도감을 주기 위한 제도와 사람이 사선 변호인이라고 나는 믿는다.
Q. 언론에 보도되는 사건들, 이른바 '악마들'을 변호하면서
변호사가 되고 지금까지 꽤 여러 번 어떤 사건인지 설명만 하면 다 아는 유명한 악마의 사건들을 수 차례 맡았었다. 가끔은 피해자들에게 신상이 털려 곤욕을 치르기도 하고, 사실과 다른 기사들이 도배되는 걸 보고 착잡한 때도 있었고, 국민청원 게시판을 보면서 한숨을 쉬던 때도, 재판에 출석하는 날이면 법정 문 앞까지 서있는기자들을 보면서 한숨을 쉬던 적도 있었다.
얼마 전, 언론에 쉼없이 오르내리던 사건을 맡았었다. 의뢰인은 이미 언론에서는 악마였다. 직접 만나본 의뢰인은 그렇게까지 악마라고 할 수 있었나 싶은 나름은 순박한 청년이었다. 사건이 일어난 것도 의뢰인이 잘못 대응한 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맞지만, 그 상황이라면 나라도 어느 정도는 화가 나고 당황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조금은 이해할 만 했다.
의뢰인이 100% 결백하다고 생각해서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도 실제 의뢰인의 잘못에 비해 여론 때문에 1심에서 너무 중한 형이 선고됐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내가 맡은 항소심은 정말 심혈을 기울여서 열심히 대응했다. 조금이라도, '너무 가혹하다'는 느낌이 드는 선고형만큼은 줄여주고 싶었다.
항소심 결과가 안도감이 들 정도로 만족스러웠던 것은 아니다. 다른 사건과 비교할 때 만족스러울 정도의 감형은 아니었지만 감형이 되긴 됐다. 의뢰인도 아마 조금은(많이) 실망했으리라.
하지만 언론은 달랐다. 언론과 댓글창에는 대한민국에서는 범죄를 저질러도 항소심에서 감형이 된다부터 시작해 의뢰인부터 재판부까지 통틀어 욕을 먹고 있었다.
속상했다. 분명 1심의 선고형은 가혹했다. 수사 과정도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에서 '나쁜놈'으로 찍히면, 국민청원 게시판에 한 번 오르면 쉽게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형을 선고 받기 어려워진다. 판사님도 '나쁜놈'이 되기 싫기 때문이리라.
결국 나는, 형사변호사는 이렇게 종종 사회에 홀로 남겨지는, 그래서 너무 외로운 나쁜 사람들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생각을 한다. 나쁘고, 잘못을 저질렀긴 했지만 그래도 그 사람이 세상에 아주 혼자는 아니라고, 가족이 아니라도 당신을 믿어주고, 당신을 위해 노력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그래서 아직 세상은 살만하니까 다음부턴 이런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고 만들어 둔 최후의 방어선. 그러니까 세상 나쁜놈을 변호하는 변호인을 보더라도 손가락질을 하거나, 위협을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도, 당신의 가까운 사람도 어쩌면, 누군가의 도움과 힘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오늘도 의뢰인 대신 검색창과 댓글창을 뒤진다.
댓글창이라고는 원래 한 번 보지도 않던 나인데 나쁜놈만 변호하다 보니 생긴 새로운 버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