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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지뉴 Feb 10. 2021

아동학대와 우리들의 온도

쏟아내는 시대에서 글쓰기, 그리고 글 읽기의 소중함


‘그것이 알고싶다’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본 것은 아니었다.


변호사로 일을 시작한 이후, 시사프로그램이나 사회 고발류의 프로그램을 그다지 챙겨보지는 않는데, 아무래도 큼지막한 형사사건을 자주 맡다 보니, 아무리 큰 잘못을 한 가해자, 피의자, 피고인이라 하더라도 큐시트의 몇 글자, 기사의 몇 줄로는 도무지 전달하기 어려운 복잡다단한 사정과 그걸 설명하기 위한 구구절절한 배경사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알고, 그걸 이해하는게 내 직업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우리는 너무도 다른 생각을 가지고, 각자 너무도 다른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그런 우리가 다같은 목소리를 낸다는 것, 그건 요즘들어서 더 어려운 일 중에 하나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 이후 우리는 모두 다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정인이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법원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법원 앞에 근조 화환을 세우고, 공판기일에는 수많은 사람이 법원으로 몰렸다.


지난 2021. 1. 13. 정인이의 양부모의 첫 번째 공판기일에서 검사는 ‘아동학대 치사’로 기소했던 정인이 사건을 주위적으로는 ‘살인’으로, 예비적으로 ‘아동학대 치사’로 변경했다.


아동학대 사건에서 부모가 살인죄로 기소되는 것은 흔하지 않다. 대개, 부모라면 자신의 자녀를 죽일 살인의 고의를 가지기 어렵고, 자신의 자녀가 ‘죽을 것을 알면서’, ‘죽어도 어쩔 수 없다’는 미필적 고의 또한 가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동학대 사건은 대개 생명에 위협을 줄 수 있는 가해행위 자체가 cctv등 증거자료를 확보하기 어려운 폐쇄적인 공간인 ‘집 안’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아이가 결국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에 대한 사정은 가해자(부모)의 진술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데, 가해자가 자신이 아이를 죽일 생각으로 어떻게 아이를 가해했는지 사실대로 진술할리는 만무하다. 이 사건도 결국 다른 아동학대 사건과 비슷하게 양부모가 ‘아동학대 치사죄’로 기소되었지만, 정인이의 췌장이 절단될 정도로 외부에서 힘이 가해지려면, 결국 아이를 죽이려는 정도의 고의가 있었던 것으로 보았는지, 전문가 3인의 의견을 받아본 후 검사는 정인이의 양부모의 행위를 우선적으로는 ‘살인’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을 먼저 해 줄 것을 법원에 요청한 것이다.


공소장 변경이나 공판 절차 등을 조금 더 설명하자면, 형사사건은 민사사건과 다르다, 원고 / 피고가 나뉘는게 아니고, 검사와 피고인이 대립한다. 그러니까 형사사건에서는 피해자는 사건의 당사자가 아닌 것이다. 특히 형사사건은 피고인을 어떤 내용으로 처벌해 줄것을 요청하는지(이를 ‘기소’라고 한다) 검사가 정하는데, 판사는 재판의 과정이나 기록에서 다른 범죄 혐의가 발견된다거나, 검사의 기소 내용(어떤 법령으로 어떻게 처벌받을지)이 잘못됐다 하더라도 검사가 기소한 범위 안에서만 판결을 내릴 수 있다.


정인이 사건에서 정인이 양부모가 ‘아동학대 치사’로 기소된 것에 많은 문제가 제기되었었는데, 실무적으로는 위에서 설명한 것 처럼 아동학대 사건에서는 ‘살인의 고의’를 입증하기 어렵고, 이를 입증할만한 증거(예를 들어, 흉기라든지, 결정적인 가해 장면을 녹화한 영상 등)가 부족하다 보니, 검사가 정인이의 양부모를 단순히 ‘살인죄’로만 기소하게 되면, 법원에서는 ‘살인죄’가 성립할 수 있는 입증자료에 따라 판단을 하게 되고, 결정적인 증거나 피고인의 자백이 없다면 이들에게 ‘무죄’가 선고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를 우려한 검찰은 우선은 혐의가 인정되고도 남을 아동학대치사로 우선 정인이 양부모를 기소했던 것이다. 하지만 기소 이후 전문가의 의견 등을 통해 ‘살인죄’를 입증할 수 있을 만한 증거들이 확보되었고, 이에 검사는 법원에 먼저 정인이 양부모가 정인이를 살해하려 한 것인지를 먼저 판단한 후(주위적 공소사실), 만약 그 혐의가 입증되기 부족하다고 판단된다면 아동학대 치사에 해당하는지(예비적 공소사실)라도 판단해 줄 것을 요청한 것이다. 이런 기소 방법은 주위적 공소사실에 대해 무죄가 선고될 우려가 있지만 예비적 공소사실로는 유죄가 거의 확실할 때 쓰는 실무적인 방법이다.


정인이 사건에 대해서는 여러 번 인터뷰도 하고, 나름대로 사건도 설명해왔다. 그러다 보니 이 사건을 보는 사람들의 표현방법(댓글 등)이나 사건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유심히 지켜보게 되는데, 놀라운 건 그 수많은 댓글들이 대개 분노를 표출하는데, 그 방식이 굉장히 감정적이라는 점이었다. 당장 정인이의 양부모를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글도, 원색적인 비난이나 욕설도 많았다. (그건 댓글의 특성일 수도 있고, 물론 그런 방식 외에도 정제되고 건설적인 방법으로 대응하는 분들도 많다는걸 안다.)



우리 모두 어떤 사안이나 나를 둘러싼 사회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모두 다 다르다. 어떤 방식이 맞다거나, 더 바람직한 것도 없다.


시절일기를 쓴 김연수 작가는 우리 시절의 모습을 글쓰기의 방식으로 받아들인다. 이 책은 김연수 작가가 2010년부터 2017년 까지 세월호 참사, 촛불집회, 대통령 탄핵 등 많은 사건을 지나쳐오거나, 또는 참여해오며, 받아들여오는 순간을 기록한다.


김연수 작가가 이 책을 쓰면서 담담하게, 친절하게 또는 적극적으로 기록해온 순간들은 나에게는 대부분 속보와, 인터넷 기사와 판결문과 그 밑에 달린 짤막한 댓글, 분노에 찬 댓글, 욕설과 비난이 난무한 짧은 글로 기억되는 순간들이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아프거나, 슬프거나 입 밖으로 꺼내기 조차 어려운 순간들, 나는 단순한 제3자라 무심코 지나치기만 한 순간들을 김연수 작가는 아주 따뜻하게 기록한다. 기록함으로써 기억한다. 어쩌면 정보가 그야말로 홍수처럼 쏟아지는 지금 이 순간에는 기억하는 것이 가장 큰 위로일지도 모르겠다. 지속적으로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이 글을 읽으면서 누군가에게는 형언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의 시간들을 단순한 제3자가 이렇게도 정성을 들여 기록할 수 있다는 것에 나는 위안을 받았다.



타자의 고통 앞에서 문학은 충분히 애도할 수 없다.
검은 그림자는 찌꺼기처럼 마음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애도를 속히 완결지으려는 욕망을 버리고
해석이 불가능해 떨쳐버릴 수 없는 이 모호한 감정을 받아들이는게 문학의 일이다.

그러므로 영구히 다시 쓰고 읽어야 한다.
날마다 노동자와 일꾼과 농부처럼, 우리에게 다시 밤이 찾아올 때까지.

- 김연수, ‘시절일기’ 중 일부 -


정인이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이, 그리고 입양제도에 대한 비판적이고 건설적인 시선이, 정인이 양부모가 끝까지 어떻게 이 사법 제도 하에서 처벌되는지 모두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충분히, 영구히 다시 쓰고 읽을 정도로 애도했으면 한다. 애도하기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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