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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지뉴 Apr 13. 2021

굳이 변호사에게까지 거짓말할 필요가 있나요

의뢰인의 배신

처음 이 의뢰인의 사건을 맡은지는 벌써 4년이 다 되어간다. 


당시 문제되는 혐의들이 한두개가 아니었는데, 처음에 맡았던 고소사건은 상대방이 결국 기소되도록 해 잘 마무리 됐고, 지금까지 재판이 계속되고 있는 이 사건은 영장실질심사에서 피를 튀기고 싸워 영장이 기각되고 나서 2019년에 기소된 이후 1심재판에만 3년이 걸렸다. 사건이 대단하고 복잡해서가 아니라 어쩌다 보니 사건 진행이 늦어져 지금까지 늦어진 거다. 


95%정도는 구속영장이 발부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영장이 기각되니 일단 기분은 좋았는데 그 이후로 사건이 이렇게까지 오래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사건은 결국 지난해 말 경에 마무리 되었는데 의뢰인이 선고기일을 미루고, 판사의 인사이동으로 재판부가 변경되고 그러다보니 결국 지난해 12월에 예정되어 있던 선고가 올해 4월까지 미뤄졌다. 


처음에는 의뢰인에게 실형이 아니라 집행유예가 선고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일단 상범에게 선고된 형이 실형 1년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영장이 기각된 이 사건의 경우라면 집행유예도 노려볼 수 있다고 생각한 거였다. 그런데 지난해 12월부터 미뤄진 선고가 나를 점점 불안하게 했다. 





문제는 의뢰인이었다.    


선고가 내려지는 것에 대한 불안함과 두려움은 의뢰인만큼은 아니겠지만 나도 마찬가지이다. 의뢰인은 지난해 재판이 마무리되자, 선고기일을 몇일 앞두고 재판부에 변론재개 신청을 했다(심지어 나한테는 변호사님에게 미안하다고 말도 하지 않았다. 세상에나). 기존에 의뢰인이 신청한 증인이 꼭 출석하기로 했다며 제발 증인신문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1심 재판부는 가급적 피고인이 원하는 절차를 할 수 있도록 해준다. 


결국 연말에 변론이 재개됐다. 연말에 변론이 재개되면 인사이동 때문에 또 몇 번만 미루면 재판을 하염없이 미룰 수 있다. 변론이 재개되자 이번에는 의뢰인이 자신이 코로나에 걸렸다며 출석할 수 없다고 했다. 당시에는 약간의 감기 증상만 있어도 기일을 연기해줬기 때문에 처음 몇 번은 코로나에 걸렸다는 말로 재판을 미룰 수 있었다. 그리고 판사의 인사이동으로 재판부가 변경됐다. 그래서 또 한번이 미뤄졌다. 결국 의뢰인의 말도 안되는 요청으로 재판이 5개월이나 미뤄졌다. 


지난 달 재판에서 의뢰인은 자신이 신청한 증인이 다음 번 기일에 꼭 나오기로 했다며 제발 증인신문기일을 잡아달라고 요청했고, 덩달아 나도 읍소했다. 재판부는 달갑지 않은 티를 팍팍 내며 다음에 증인이 출석하지 않으면 바로 철회하고 재판을 마무리 하겠다고 했다. 


증인을 신청하면, 변호사는 가만히 앉아서 증인이 나오는구나, 하는게 아니다.

증인을 신청하려면 증인을 왜 신청하는지, 증인 신청을 통해 밝힐 수 있는 사실이 무엇인지 증인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법원에 승인받을 수 있도록 증인신청서를 제출해야 하고, 증인 신문 전에는 증인에게 어떤 질문을 할지 정리해서 제출하는 증인신문사항을 작성해야 한다.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증인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했고, 증인에게 어떤 것을 물어볼지 정리해 증인신문사항을 작성했다. 


보통 증인신문사항을 작성한 다음에는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의뢰인에게 신문사항을 보내주는데, 보통 증인이 출석하기로 한 경우 의뢰인이 자세히 신문사항을 보고, 변호사에게 질문도 하면서 내용을 수정해 가는데 이 의뢰인은 신문사항을 보내도 영 심드렁했다. 그 때 눈치챘어야 했다. 



증인신문 당일. 


불안한 마음에 의뢰인에게 오전부터 연락을 했다. 오늘 증인들이 꼭 재판에 출석해야 한다고.

의뢰인은 걱정하지 말라며, 첫번째 증인은 자가격리 중이라 재판에 출석은 못하는데 증인이 이미 법원에 전화를 해서 출석하기 어렵다고 말을 해놨다고 했고, 두번째 증인은 꼭 오겠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재판부에 약속한 대로 한 명은 출석하기로 했으니 면은 서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법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법정 앞에 도착했더니 증인은 없고 의뢰인만 있었다. 느낌이 싸했다. 


"무슨 일이에요? 증인 2는 어디있어요?"


"아, 증인 2랑 아까 통화했는데 온다고 했거든요. 조금만 기다리면 올거에요."


나는 내 사건 차례가 되어 변호인석에 앉을 때 까지 증인이 출석할 거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 재판장이 물었다. 


재판장 : "오늘 증인신문기일인데, 증인 출석했나요?"


나 : "재판장님, 증인 1은 코로나로 인해 자가격리 중이라고 재판부와 통화했다고 하고, 증인 2는 지금 오는 중이라고 합니다. 죄송하지만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재판장 : "실무관님, 혹시 증인 출석 못한다고 연락온 게 있나요?"


실무관 : "그런 전화 받은 적 없습니다." 


법원 경위 : "재판장님, 증인 2와 통화했는데 증인 2는 오늘 바쁜 날이라 출석할 수 없다고 미리 얘기 했다고 합니다." 


아이고야. 

결국 의뢰인은 선고를 미루기 위해 나에게는 증인 하나는 자가격리 중이고 다른 증인은 출석하기로 했다고 거짓말을 한거다. 왜 나한테까지 거짓말을 했을까. 나한테 거짓말을 하면 나도 법원에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는데. 게다가 저렇게 바로 탄로날 거짓말을 왜 하는걸까.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이런 의뢰인의 거짓말은 의뢰인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재판부에 인상에 큰 영향을 준다. 가급적 그래서 변호사는 변명은 변호사가 해 줄테니 변호사에게만큼은 사실 대로 말해줄 것을 의뢰인에게 부탁한다. 


이번에는 내 완패였다. 왜 좀 더 의뢰인을 추궁하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이미 오랜 기간 동안 선고기일을 미룬 것으로 내가 제발 거짓말을 하면 안된다고 의뢰인에게 부탁했던 게 오히려 나에게까지 의뢰인이 거짓말을 하도록 한 것 같다. 으. 선고기일이 하나도 기다려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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