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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지뉴 Nov 26. 2021

바쁜 것, 바빠보이는 것이 좋아보였는데

변호사로 일하면서 깨달은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

변호사가 되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저녁 10시가 넘어 퇴근하는 것이 나는 당연한 줄 알았다.


그 때에는 마냥 '할 일이 있고, 그 일이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고, 나 밖에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게 나름 뿌듯했던 것 같다. 이상한 얘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처음에는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 보다 오랜 시간 일을 하고, 늦게 퇴근하고, 주말에 출근하는 것이 나름 훈장처럼 여겨졌던 때가 있었다.



단순히 일이 많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일이 손에 익으면서 조금씩 빨리 처리할  있게 됐다. 문제는 연차가 점점 쌓이면서 나에게 배당되는 사건들이 단순한 사건들에서 지금까지는 법원에서 다뤄진  없는 복잡하거나 새로운 사건들로 바뀌었고, 이런 사건에서는 특히 내가 얼마나 시간을 쏟고 사건에 집중하는지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지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랜 시간 동안 '' 잊고 '변호사로서의 ' 집중하고 살았던  같다.


그게 나쁘지는 않았다. 개인적인 생활이라고는 전혀 없이 일(회사)<->잠(집)만을 오가는 생활이 나에게는 그렇게 나쁘게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집에 일찍 가면 뭐해, 티비나 보지라는 생각에 꽤 오랜 시간 굳이 할 일이 쌓여있는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랜 시간을 사건에 대해 고민하면서 회사에서 보냈다. 간혹 친구들 중에서는 어느 정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야 일할 때 필요한 에너지가 생긴다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나는 지금까지는 별로 그런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지내왔다.


어쩌다 중요한 사건이나 마음 쓰이는 사건이 생기면 나는 그걸 그냥 넘기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과 나눠서 하면 충분할 일을 나 말고 다른 사람이라고는 믿지 못하는 나는 굳이 혼자, 새벽 서너시까지 붙잡고 앉아 기어이 해결을 해내고야 말았는데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었던 이유는 대부분 내가 이렇게 기를 쓰고 애를 쓰고 공을 들인 사건들은 어렵고 힘든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백이면 백 선고 결과가 좋았기 때문이다. 선고형을 확인했을 때의 희열이 그동안 새벽까지의 고된 업무를 잊게 했다.


그리고 솔직히는 다른 어떤 말이나 변명보다 '일이 너무 바빠서 못갈 것 같아', '아, 이번 주말에는 출근을 해야 할 것 같아','오늘 좀 많이 늦게 끝날 것 같은데'라는 말을 나는 꽤 자랑스럽게(?)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아주 늦게까지 할 일이 있다는 것, 주말까지 출근해 해야할 일이 있다는 것은 정말 이상하지만 나에게는 변호사로서의 특권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그런 일들이 있다는 사실은 꽤 나를 중요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만 같았다.



요즘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한다.


맡은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아야겠다, 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내 생활을 찾아야 오랫동안 이 직업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차가 쌓인다는 말은 곧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는 말이기도 한데, 당연히 이렇게 수 년 간 몸을 혹사시키다보니 건강은 나빠질 대로 나빠져 있었다. 어딘가가 급작스레, 심각하게 나빠졌다는 건 아닌데, 그동안은 수족냉증이나 하루 종일, 또는 며칠 동안 계속 이어지는 두통, 어지럼증을 달고 살았고 항상 신경이 곤두서 예민해져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예민한 상태에서는 온전한 '나'로서 활동할 때의 에너지는 상당히 떨어져서 굉장히 별 것 아닌 일에도 짜증이 솟구치곤 하는데, 그동안은 그 무례함을 동반하는 예민함을 '일이 많으니까 당연히 그럴 수도 있는 것'이라고 나 혼자 합리화 하면서 살아왔던 거다.


나는 얼마전에 문득 이런 내 생활습관들이 '시행착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 될 거란 걸 알았다면 이렇게 열심히 일하면서 살지 않았을텐데.


요즘은 몸도 마음도 건강한 생활을 하려고 노력한다. 일찍 자고(정말 어려운 일이다) 일찍 일어나기(더 어려운 일이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기. 건강한 음식을 스스로 해먹고(배달음식을 안먹기) 커피를 줄이고 따뜻한 차 마시기(세상에나). 많이 걷고(추운데 하필이면 이럴 때) 책을 조금씩 읽기. 그리고 매일 조금씩 쓰기. 따뜻하게 여러 겹 껴입고 다니고 양말 꼭 신기.


혹시라도 사회초년생분들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열심히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당연히 좋지만 내 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 해야 할 정도로 중요한 일을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는 이미 신체적으로는 건강을 상당히 잃은 상태에서 정신적인 번아웃으로 갈피를 잡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한참을 헤매다 깨달았지만, 이제는 왜 그동안 어른들이 건강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 것이라고 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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